신희섭의 정치학-기회비용과 시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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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기회비용과 시간의 가치
  • 이성진 기자
  • 승인 2018.08.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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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가을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미칠 듯이 더웠던 여름이 언제 지나가나 했지만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번 여름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딜레마였다. 너무 더워서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 그 시간만큼이 우리 인생에서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이니 아쉽기도 하다.

이번 여름만 그럴까? 아마도 많은 ‘시간’들이 이와 비슷했고 비슷할 것이다. 어린 시절에 학교 의자에 앉자 지루한 설명을 들을 때, 젊은 시절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시간은 남아돌 때, 평상시 무료한 시간을 그저 숨만 쉬면서 보낼 때. 기타 등등.

누구나 알듯이 시간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자원이다. 다른 가치들과 비교해보면 더 명확하다. 돈은 다시 벌수 있는 기회가 있다. 건강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명예 또한 다시 얻을 수 있다. 물론 이것들 모두 자신이 가지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이다. 되돌릴 수 없는 가치라는 점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자원이다.

언제부터 나는 시간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마 몇 해 되지 않은 듯하다. 시간이 너무 덧없이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고, 지나간 것이 아쉽다는 후회가 들고, 예전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는 시간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면서이다. 나이가 들고,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정신없이 바빠지고. 그래서 같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더 소중할지를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듯하다. 아니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경제학의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을 대입하면 ‘시간’의 가치와 의미는 명확해 진다. 기회비용은 무엇을 한다면 다른 무엇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죽어라 열심히 놀 때는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다른 사례를 들면 누구를 만나고 있으면 그 시간에 만날 수 있는 다름 사람과의 시간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생겼다. 로버트 라이시 전재무장관이자 경제학교수의 아이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함께 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바로 그때가 부모에게는 인생 중 가장 바쁠 때라 아이와 시간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석에 이어진 결론은 ‘나중에는 못내 아쉽게 되니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지당한 이야기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중요하다. 아이에게는 무엇을 하는지 보다 누구와 같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부모와 함께 하면 무엇을 해도 즐겁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부모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둘 사이에는 같이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를 키울 당시 부모는 함께 할 시간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이 바빠서. 해야 할 과제들이 많아서. 신경써야할 복잡한 일들이 많아서. 그리고 마음이 바빠서. 여러 이유로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때 기회비용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 쯤은, ‘아이와의 시간’ 쯤은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경우 부모는 아이와 함께 할 그 시간을 누군가에게 넘긴다. 미안한 마음이든 합리적 계산에 의해서든.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TV, 컴퓨터, 게임, 아이돌 그룹 등등. 그런데 시간이 제법 지난 뒤가 문제다. 시간의 기회비용이 달라질 때가 오는 것이다. 아이가 상당히 자라면 부모는 예전처럼 바쁘지 않게 된다. 일이 줄 수도 있고 마음이 덜 바쁠 수도 있다. 이제 자식과 시간을 가져보려고 하지만 이때는 자식의 시간 기회비용이 바뀌어있다. 자식이 바빠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부모에게 자녀와 함께 할 자신의 자리는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외로워진다.

라이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른 다른 생각 하나. 과연 아이에게만 같이 할 시간이 필요할까? 그렇지 않다. 자신의 부모와도 같이 할 시간이 필요하다.

기회비용으로 생각해보자. 기회비용으로 보면 ‘부모-아이’와의 시간 필요성 논리는 ‘부모- 부모의 부모’와의 시간 필요성 논리와 다르다. 먼저 아이는 시간이 많다. 그 아이의 부모처럼 바쁘지 않다. 아이의 부모는 다르다. 지금 무엇인가를 해두지 않으면 우리가족에게 다가올 ‘미래 위험’을 생각한다. 또는 더 경제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 ‘미래 기회’를 떠올린다. 아이에게 ‘미래’의 위험과 기회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이 중요하다. 즉 아이와 그 부모 간에는 시간의 지평(time-horizon)이 다르다. 그러나 그 아이의 부모가 자신의 부모에 대해 가지는 시간의 기회비용 논리는 다르다. 부모의 부모(즉 아이입장에서는 조부모)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나이는 점차 더 들어가고 건강의 문제도 하나 둘 씩 생기게 된다. 그러니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다. 그런데 자식은 바쁘다. 그리고 바빠야 한다.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자식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의 아이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자신의 부모와도 시간이 필요하다. 왜? 단순하게 생각하면 부모에게 자신은 그저 아이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리고 그 부모는 이제 아주 바쁘지 않다. 그래서 이제 자식과 함께 시간을 하고 싶은데 그 자식이 이번에는 바쁜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의 딜레마이다.

물론 모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다 이렇지는 않다.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부모들도 많다. 의식적으로 가족과 ‘현재’시간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좀 더 많은 부모와 자식관계가 시간의 딜레마에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딜레마에서 그나마 좀 다행인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현재’가 중요한 세대 간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기회비용으로 보자. 시간 쓰는 것에 부담이 적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미래’를 중요시 하여 바쁜 자신의 자식보다 ‘현재’ 시간이 많은 손자 손녀들과 함께 하기 좋다.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가족과 ‘현재’시간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현재를 같이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효(孝)나 도리의 차원이 아니다. 기회비용차원에서만 봐도 그렇다. 기회비용에 따르면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된다. 그러니 미래에만 매달리면 현재를 놓치게 된다. 물론 누구에게나 미래준비는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기 때문이다. 시간. 즉 돌아오지 않는 그 기회와 그 소중한 자산이 날아가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아쉬움에 한 글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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