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조삼모사의 인간들, 사법 농단 대법관, 당신의 정체를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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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조삼모사의 인간들, 사법 농단 대법관, 당신의 정체를 밝혀라
  • 오시영
  • 승인 2018.08.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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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모든 인간은 조삼모사(朝三暮四)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삼모사가 난무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인간은 오랜 경험을 통해 배울 것 다 배우고, 익힐 것 다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행함에서는 언제나 어리석다. 그 속에 탐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고, 시간의 무한성과 유한성의 한계를 구별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상영된 영화 “루시”의 명대사 - 존재는 시간 속에 존재할 뿐-가 떠오른다. 자신의 뇌를 100% 사용하게 된 주인공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닫게 되고, 모든 정보에 대한 통제를 자신의 의지대로 실행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주변 모두의 속도를 통제할 수 있게 되고, 시간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루시는 깨닫는다. 이 세상에 시간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간 안에서 존재하고, 시간 안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인간 뇌를 연구해 온 노먼 박사(모건 프리건 분)를 향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루시가 하나의 초거대 컴퓨터 용량이 저장된 USB로 변해버리는, 이 USB라는 내장메모리칩을 통해 축적된 정보가 시간과 결합할 때 무한성을 갖게 되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루시는 움직이는 사람과 자동차를 통제하여 빠르게도, 느리게도, 혹은 정지시키기도 하면서 “시간”이야말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장 최고의 신임을 우리에게 깨닫도록 암시한다. 자동차의 속도가 빨라지면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능력으로 직시할 수 있는 진실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시간 속에서 인간은 존재와 부존재라는 실존의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함을 깨닫게 만든다. 얼마나 많은 관객이 영화를 통해 감독 뤼크 베송이 주인공 루시를 통해서 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조삼모사의 세상이 여전히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영화 루시 속에서 노먼 박사는 인간의 평균 뇌사용량은 10%에 불과하다며, 24%를 사용하게 되면 인간이 자신의 신체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게 되고, 40%를 사용하게 되면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으며, 62%를 사용하게 되면 타인의 행동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서, 100%를 사용하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처 상상해 보지도 못했다고 고백한다. 주인공 루시는 마약범(최민식 분)에 의해 배를 개복하여 마약을 뱃속으로 운반해야 하는 마약 운반책이 되지만, 수술 과정상 실수로 인해 마약을 몸에 흡수하게 됨에 따라 뇌를 100%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초능력 소지자가 된다. 영화 속에서 시간을 통제할 수 있게 된 루시는 “시간만이 존재”하는 유일한 것임을 노먼 박사에게 알려주며 스스로 정보의 총화로 상징되는 슈퍼컴퓨터의 USB로 남는다. 시간의 존재에 남는 유일한 존재는 신뿐이다. 인간의 유한성 앞에 신의 무한성이 버티고 있다. 신의 무한성을 깨닫고,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는다면 조삼모사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역시 인간은 유한한 시간으로 무한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무지한 자이기에 어리석고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는지도 모르겠다.

송나라 열자(列子)가 쓴 〈황제(黃帝)〉에 기록된 조삼모사의 고사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가세가 기울어 자신이 키우던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양껏 줄 수 없게 되자 이를 줄일 속셈으로 처음에 “너희에게 도토리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면 어떻겠냐?”고 묻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내는 것을 보고, 말을 바꾸어 “그렇다면 아침에 도토리를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 주면 되겠느냐?”고 제안하자 모든 원숭이가 좋아서 엎드려 절을 하며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조삼모사의 유래이다. 두 제안 모두 하루에 일곱 개의 도토리를 주는 총량이 같았음에도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아침에 네 개 받는 것이 저녁에 네 개 받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빗대어 인간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공은 “物之以能鄙相籠, 皆猶此也. 聖人以智籠群愚, 亦狙公之以智籠衆狙也. 名實不虧亏, 使其喜怒哉(물지이능비상롱, 개유차야. 성인이지롱군우, 역저공지이지롱중저야. 명실부휴우, 사기희노재)”라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탓하였다. 다시 말해 “사물이 지혜로써 서로를 속이는 것이 다 이와 같다. 성인은 지혜로써 어리석은 군중들을 속이는데, 저공 역시 지혜로 원숭이들을 똑같은 수법으로 속였다. 이름과 실상을 훼손하지 않고 그들을 기쁘게도 하고 노하게도 한다.”라며 속이려 드는 자에게 욕심에 눈이 어두워 속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실체가 점점 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구체적 사례로 일본의 미쓰비시 전범 기업에 대한 징용노동자들의 임금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내세워 대법원과 뒷거래한 정황이 밝혀지고 있다. 기가 막힐 일은 이명박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다. 이 소송에서 1심과 2심은 원고 패소로 판결하였다. 우리 국민들이 미쓰비시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 대해 하급심 법원은 “1962년 1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의 특사인 김종필과 일본 외상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사이에 체결된 비밀협상 ‘김·오히라 메모’를 근거로 1965년 6월 22일 한 ·일 기본조약의 체결과 동시에 ‘재산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됨으로써 국민 개인의 청구권은 모두 소멸하였다며 우리 국민인 원고들을 패소시켰다(1심판결: 2007년 2월 부산지방법원, 2심판결: 2009년 부산고등법원 판결). 그런데 우리 대법원(주심 김능환 대법관)이 2012년 5월 24일 이 원심(2심판결)을 파기하여 부산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고들이 2000년 5월에 부산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지 12년 만에 내려진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이었다.

김능환 대법관은 어떤 분이신가? 2013년에 대법관에서 은퇴한 후 부인과 함께 조그마한 “편의점”을 운영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분이다. 물론 편의점 운영 몇 개월 후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는 말을 남기며 대형 로펌인 율촌의 고문으로 옮겨 갔지만, 다른 퇴임 대법관들과 달리 퇴임 직후 편의점 운영이라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항산, 무항심 –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맹자의 “왕혜왕” 상편의 이야기를 재변신의 변명으로 삼았지만, 그는 위 판결과 관련하여 당시 이명박 정부가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이를 정중히 거절한 후 위와 같이 억울한 피해 국민의 손을 들어 주는 명판결을 하였다. 위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과 관련하여 위와 같은 정부 대 정부의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를 한 미쓰비시 기업이 우리 국민에 대한 손해배상의무는 소멸하지 않으며, 대한민국이 자국의 국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대일청구권보상금의 성격은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의 손해배상문제일 뿐,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개별 가해 기업(미쓰비시)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므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등은 우리 국민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로 인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진 것이 사실이다. 국민 여론은 우리 대법원의 용기 있는 판결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만, 미쓰비시를 포함한 일본 기업과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파기 환송 당시 네 명의 대법관 중에 박병대 대법관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박병대 대법관은 자신이 파기 환송한 사건에 대하여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이 된 후 이 대법원 판결을 스스로 뒤집는 사법농단에 가담하여 청와대 및 피고 변호사들과 불법적인 접촉을 했다는 것이다. 자기 배신의 모순을 스스로 범한 것이다. 즉 대법원이 첫 번째로 손해를 배상하라고 파기환송 하자, 부산고등법원은 당연히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불복하여 미쓰비시가 다시 상고하자 이 재판을 뒤집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즉 대법원은 다섯 번째 재판이 되어 버린 두 번째 상고사건을 파기할 명분이 없자 청와대, 피고 측 변호사(로펌 김앤장)들과 협의를 거쳐(세상에 사법부가 구체적 사건에서 원고에게 숨긴 채 행정부인 청와대, 더군다나 소송 당사자인 피고를 만나서 이런 야바위 협잡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디어를 낸 것이 지금은 결국 죽은 꾀가 되고 말았지만, 바로 “민사소송규칙의 개정”이라는 편법이 동원된 것이다.

즉 두 번째 대법원 상고사건을 파기환송할 명분(손해배상을 하라고 자신들이 결론을 내렸고, 그 결론대로 부산고등법원이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므로)이 없는 대법원은 민사소송규칙(이를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대법원의 권한으로, 민사소송규칙은 이름은 법률이 아닌 규칙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민사소송법과 같은 엄청난 효력을 가지고 있어 모든 판사와 변호사들, 나아가 국민들로서는 이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을 개정하여 “정부는 정부와 관련된 사항에 대하여 정부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라는 규칙을 신설하였고(이 과정에서 미쓰비시 기업 쪽 소송대리인인 로펌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이 이러한 의견취합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 신설된 규칙에 따라 피고 변호사 김앤장이 “정부 의견을 듣자”라고 주장하도록 한 후(이 과정에 대법원과 청와대, 로펌 김앤장 사이에 협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닌가?), 대법원이 이를 마지못해 들어주는 것처럼 정부(외교부)에 의견을 제시하라고 공문을 보내고, 외교부는 얼씨구나 하고 “한일 간에 외교분쟁이 야기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일청구권 협상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대일본기업 청구권도 함께 소멸하였으므로 손해배상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접수했다. 대법원은 이를 근거로 두 번째 상고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한 후 5년 동안 재판을 하지 않고 기록을 내팽개쳐두고 있다. 아주 악질적인 방법이 동원된 것이다.

민사소송법 제1조는 “민사소송의 이상과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제목으로, 제1항에서 “법원은 소송절차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에서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천명함으로써 민사소송절차가 공정, 신속, 경제(비용이 적게 들도록), 신의성실의무에 의해 진행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난 5년 동안, 아니 소송이 제기된 때로부터 18년이 지나도록 재판서류를 서랍에 팽개쳐놓음으로써(아주 나쁜 놈들이라는 욕을 먹어도 싸다는 게 의식 있는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신속과 경제적 진행이라는 이상을 스스로 위반하였고, 재판에 관여할 수 없는 행정부(청와대)와 재판절차를 협의하고, 상대방(피고) 측 변호사들과 야바위 협잡을 하였으니, 이런 사법부, 이런 대법원을 어찌 대한민국의 대법원이라 할 수 있으며,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뤼크 베송 감독은 루시를 통해 말한다, 모든 존재는 시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저공은 말한다 조사모삼이나 조삼모사는 같은 것이니 결코 지혜로운 척하는 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고. 민사소송법 제1조가 천명한 “신의성실의 원칙”은 제1조가 상징하는 민사소송의 핵심가치임에도 대법원이 앞장서서 이를 위반하였다는 것은 수치를 넘어 몰염치의 극단적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그 수치를 모르는 대법관들(점차 양파껍질 벗기듯 벗겨지는 사실은 대법관이 한 둘이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법관들이 벌떼처럼 관련되어 있을까 봐 사실 겁이 난다, 너무 수치스러워서)은 여전히 뻔뻔하다. 통탄할 일이지만, 시간은 그들의 6년이라는 임기를 비웃는다, 너희는 6년짜리 권력에 불과해, 너희들의 거짓 연극도 6년이면 종 치는 거야라고. 시간 속에 존재하는 실존은 6년 동안은 진실을 감출 수 있을지 몰라도, 영겁의 시간 속에서 모두 들통나지 않겠는가? 아침에 네 개의 도토리를 먹는 것에 환호하는 불쌍한 원숭이들이여 조사모삼은 조삼모사와 같은 것이니, 아침이고 저녁이고, 일곱 개를 반으로 쪼개 세 개 반씩 먹도록 하시게나, 그게 루시가 우리에게 말하는 시간 속 실존의 진실이려니, 도토리 네 개를 아침에 먹으니 행복한가? 모든 것이 들통나고 있는 지금 불행한가? 아따 도토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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