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지지율와 민주주의의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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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지지율와 민주주의의딜레마
  • 신희섭
  • 승인 2018.08.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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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경제가 엉망이다. 최저임금인상 정책에 화가 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조선업의 상징인 울산과 거제는 지역 경제 전체가 죽어가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연일 기록경신중이다. 그런데도 고용을 위해 정부는 지난 2년간 자그마치 54조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100만 실업자 개개인에게 5,400만원씩 나눠주기만 했어도 상황이 지금 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라는 비판이 그저 비아냥은 아닌 듯 보인다.

더 걱정은 중기적인 차원에서 경제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적다는 점이다. 한국의 주된 먹을거리인 수출 분야가 대표적이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과 통화와 환율 전 분야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미국과 유럽의 유동성축소와 긴축모드는 한국의 수출시장에 빨간 불이다. 그런데 설상가상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관세인상과 환율조작국으로 때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수출시장 충격은 불 보듯하다.

장기적으로 더 나쁜 그림이 기다리고 있다. 장기추세는 절망적이다. 출생인구의 기록적인 감소. 빠른 초고령화 사회진입. 4차 산업혁명의 빠른 변혁압력. 적어지는 생산가능인구와 빨라지는 국민연금의 고갈연도. 이런 변화는 사회 전체적인 혁신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혁신방향을 한국 사회 체계(system)가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2년 수능개편안을 보자. 현재 고1, 고2, 고3 학생들은 수학의 경우 각기 다른 범위에서 시험을 치르게 된다. 변화에 대처할 상상력 교육은커녕 암기 위주의 시험마저도 이 모양이니 혁신은 그저 다른 세계의 일이다.

단기, 중기, 장기 어느 각도에서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희망이 없어 미치겠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이리 저리 굴려 수익을 내는데 몰두한다. 그래서 불황이지만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아파트 가격이 다시 오른다. 이런 와중에 옥탑 방에서 한 달을 보내신 서울시장은 하방(下房)하여 특이한 비책을 내놓았다. 강북에 돈을 들이 부어서 여의도와 용산을 강남처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거대한 부동산 계획이 발표되니 미래가 걱정인 사람들은 여지없이 부나방처럼 몰려든다. 그러자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국토부장관은 가격이 급등한 지역의 공시지가를 올려서 부동산시장을 잡겠다고 한다. 꼭 탁구를 보는 것 같다. 핑(ping)과 퐁(pong)을 서로 주고받는다.

“부동산 시장 좀 올려볼까요?” “부동산 바로 잡아 드릴게요.” 만담 같은 상황.

울고 싶은 사람도 달래고 웃고 싶은 사람 손도 들어준다. 지방정부와 중앙 정부가 각각 이러는 사이 부동산시장에서 배제되고 미래 노동시장에서도 배제될 것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서 미시적인 사치를 즐긴다. 먹방. 문신, 여행. 이렇게 현재는 미래를 대체하고 있다.

이 와중에 청와대 정책 실장과 정부의 경제수장인 경제부총리간의 갈등은 언론을 통해 연일 시장에 신호를 보낸다.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는 청와대는 주 52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인상안으로 지지자들을 모은다. 이 정책의 효과가 2, 3년은 지나야 나타날 것이라면서 기다려달라고 한다.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혁신주도 성장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면서 대기업들의 강력한 투자를 호소하며 다른 방향에서 지지자들을 모은다.

같은 정권 내에서 사격의 표적지가 다르다. 한쪽은 ‘현재’에 경제 포화를 쏟아 붓고자 하고 한쪽은 ‘미래’에 집중 포격을 하고자 한다. 지방뿐 아니라 중앙정부도 갈피를 못 잡은 모습에 현실 경제 주체인 가정과 시장은 돌아버리기 직전이다. 청년들의 경우를 보자. 어렵게 대기업에 취업해도 50세까지 직장에서 버티기가 쉽지 않다. 이 기업이 계속 유지될지도 불확실하다. 창업을 하자니 자영업자들의 높은 폐업률이 버티고 있다.

울화통이 터진 이들이 늘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문재인’이라는 지도자 개인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한국정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당이든 정당은 어차피 한국정치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지율에 있다. 민주주의에서 지지율은 사람을 홀린다. 지지율이 높아지면 지도자와 참모들 본인이 만능이라도 된 듯 여기게 된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하기보다 실망하고 원망하게 된다. 시민들이 자신의 본심을 못 알아주는 것에 실망하고 자신들의 진실함을 부정하는 것에 원망한다.

그렇다고 표를 통해 지배하는 민주주의에서 지지율을 무시할 수도 없다. 권력을 잡으려면 많은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에도 있다. 단임제도인 한국에서 일단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권력을 잡으면 그 대통령 자신에게는 다음번 기회가 없다. 대통령 입장에선 아쉬울 것이 없어 자신의 소신대로 정책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어디 대통령이 혼자되는 것인가! 당선의 일등공신인 킹메이커들과 적극적인 지지자들을 챙겨야 한다. 이들에게 대통령의 당선은 권력게임의 시작이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당선은 권력 게임의 종결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시간에 대한 지평이 작동하는 것이다. 지금의 권력자는 다음에 못 나온다. 그럼 누구에게 베팅을 해야 하는가! 지지율은 그렇게 단임제 대통령제도에서 권력을 저울질하게 만든다. 집권기간 동안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대통령입장에서도 지지율을 무시할 수많은 없다.

인기 때문이든, 제도 때문이든, 역사적 사명감 때문이든 지지율은 중요하다. 지지율은 더 많은 이들을 끌어 모으라고 압박한다. 적극적 지지자들과 소극적인 지지자들 그리고 마지못한 지지자들을 모아 적대세력을 무력화해야 한다. 여기에 정당정치가 가세한다. 현대 정당들이 ‘포괄정당(catch -all party)’이 되면서 거의 모든 주제(all)들을 끌어들이려고(catch)하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지도자와 참모들은 더 높은 지지율을 위해 상이한 목적을 가진 정책 패키지를 짜기 마련이다. 이런 정책과 저런 정책들이 뒤섞인다. 문제는 정책들이 꼬일 때이다. 정책들이 양립되는 않는 상황. 지지율은 이런 상황을 미쳐 못 보게 만들 수 있다. 더 문제는 상황이 나빠졌을 때도 정책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것이다.

본질은 권력에 있다. 단임제도인 한국은 대통령 당선 당일부터 차기 권력자를 찾는다. 현재를 지키려는 대통령과 미래 권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잠재적 대통령들 간 권력 경쟁은 지지율 경쟁으로 연결된다. 지켜질 수 없는 공약들이라도 말이다.

처참한 ‘경제’의 뒤편에 지지율이라는 ‘정치’가 똬리를 틀고 있다. 대통령은 지지율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주변이 그렇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에 편승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과실은 중요하지만 독배를 같이 할 생각은 없다. 현재 권력이 아무리 중요해도 미래 권력보다 중요할 수는 없기 마련이다. 경제 실정을 논하기에 앞서 정치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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