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조인과 인문학적 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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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조인과 인문학적 소양
  • 김영철
  • 승인 2018.08.17 11: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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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변호사(법무법인 대종) / 전 건국대 로스쿨 교수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은 법의 운용에 관련된 전문직 집단으로서 한 나라의 사법운용을 책임지고 있다. 법은 인간의 사회생활 중 발생한 갖가지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내고 이를 집행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법조인들은 법을 운용함에 앞서 사회 구성원인 인간 및 인간의 존재가치에 관한 이해, 사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법조인은 법학 그 자체의 연구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폭넓게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인문학이란 자연을 다루는 자연과학에 대립되는 영역으로, 인문학법(약칭) 제3조는 인문학을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및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하여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언어학·문학·역사학·철학·종교학 등의 학문과 직관·체험·표현·이해·해석 등 인문학적 방법론을 수용하는 제반 학문 및 이에 기반을 둔 융복합 학문 등 관련 학문분야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 용어는 로마의 철학자이자 변호사인 키케로(Cicero)가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원칙으로 삼은 라틴어 휴마니타스(humanitas)에서 기원되었다 한다.

법학도 넓은 의미에서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으며, 법학은 사람의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과 상황을 정리하여 개념화하고, 표현에 있어서 장황한 군말을 줄이고 내용을 요약하는 논리적 표현력을 갖게 하므로 이러한 법학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법조인은 그 자체로서 어느 정도의 인문학적 소양을 겸비하고 있으니 별문제 없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법조인들은 가장 통과하기 어려운 시험인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엘리트로서의 자부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그 이전 사회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내면도 더 세밀하고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 현대사회는 지금까지 축적해놓은 과거의 법학지식이나 법기술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사건도 많이 발생한다. 인공지능, IoT기술, 유전자 기술, 비트코인 문제 등 과거에 생각하지 못했던 신생적 문제들 뿐만아니라, 청소년범죄, 이혼, 산업재해, 근로자의 권리와 의무, 성적 자기결정권, 존엄사, 핵 발전 등 복잡하고 심층적 접근이 필요한 문제에 합리적이고 공감가는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 법학외의 인문학적 성찰이 보태어져야 할 때이다.

연일 격무에 시달리며 자기 앞에 놓여있는 사건의 처리에도 버거운 법조인에게 법학이외의 인문학적 소양을 더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바쁘니까 이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법관이나 검사의 정원을 늘려서라도 업무부담을 줄여 이러한 소양을 보충할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적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과거 이조시대에 있었던 법조 전문직은 신분이 양반아래의 중인(中人)인 탓도 있었겠지만, 인문학에 해당하는 유교를 가르치는 경학(經學)을 배제한 채 법전의 암송과 기술적 훈련을 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율학(律學)만을 배워 업무를 집행한 까닭에 결국 경학을 배운 행정관 정치의 보조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요즘 주변의 원로법조인 중에 뒤늦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역사, 철학, 종교 등 인문학에 심취하는 분들을 보게 된다. 현역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는 원로법조인이 인문학을 수양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인격도야라는 측면 외에 현실사회에 기여하는 측면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필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열정적으로 일선에서 일하는 젊은 법조인들이 인문학적 소양강화에 적극 관심을 보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다행히 재판과정에 ‘심리부검’을 실시한다거나 변호사가 제출한 당사자의 심리분석결과를 반영하여 인종차별을 종식시킨 세기적 판결인 미연방대법원의 ‘브라운 판결’ 등을 내용으로 하는 판결역사서를 집필한 판사, 신참법관의 활약상을 그린 인기 TV드라마의 극본을 집필한 판사, 옛 기와 수집으로 전문가의 반열에 오른 검사, 재즈공연에 출연한 변호사 등 인문학 분야에서 선구적 활동을 하는 법조인들이 속속 등장하여 일반사회인에게도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풍성한 인문학을 반영한 판결들로 인해 국민의 깊은 공감을 얻고, 사법의 신뢰가 향상되는 그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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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공정 2018-10-28 19:42:52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창현 2018-08-28 09:14:20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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