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터키 금융쇼크에서 보는 구조적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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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터키 금융쇼크에서 보는 구조적 권력
  • 신희섭
  • 승인 2018.08.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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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한국의 여름열기보다 더 뜨겁다. 터키 금융시장이야기이다. 터키의 리라화(貨)가 지속적으로 폭락하고 있다. 2018년 들어서만 터키의 리라화 가치는 달러대비 40%이상 하락했다.

터키의 통화가치 하락은 터키와 연관된 유럽 은행들에 대한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터키와 유사한 신흥국가들의 통화가치까지 동반 하락시키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페소는 작년 대비 35%가 하락했고 러시아의 루블화도 15%정도 하락했다. BRICS로 불리는 국가들 모두가 많게는 15%에서 적게는 7%가량 하락하고 있다. 터키발 금융 먹구름이 아시아도 덮치고 있다. 한국 코스피, 일본 닛케이, 중국, 홍콩, 대만의 종합 지수들이 일제히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의 원화의 경우 7월 13일 기준으로 1 달러에 1123.5원이었던 것이 8월 13일 1133.9원으로 10원가량 상승했다.

다시 한 번 금융위기가 오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경제가 저성장국면에 있는 한국에게는 이것은 단순한 걱정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게다가 한국은 전쟁터 바로 옆에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과 통화전쟁이라는. 그래서 한국은 터키 사태로부터 직접적인 유탄을 맞지 않을까 불안하다.

NATO의 일원이며 미국의 시리아문제와 IS문제 해결에 있어서 중요한 파트너 국가인 터키가 왜 미국으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으면서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제시되고 있다. 터키의 권위주의 체제의 문제점, 대통령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과 리더십의 부족, 시장 친화적 관료들 경질과 금융시장의 반응, 2016년 쿠데타로 대표되는 국내정치의 불안, 쿠데타 과정에서 체포된 미국인 브런슨 목사를 비롯한 미국인들의 석방을 위한 미국정부와의 교섭실패, 이에 대한 제재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배나 되는 고율관세부과, 2008년 미국 경제위기와 2010년 유럽 발 재정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양적완화를 통한 과도한 통화의 공급과 그에 따른 신흥국가들의 달러에 대한 지나친 의존상황, 미국의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통한 지지율 상승견인 정책 등등. 정말 너무나 많은 원인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보고 싶은 것은 이런 복잡한 원인들이 어떻게 서로 짜 맞추어졌는지가 아니다. 현재 상황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거대한 흐름 즉 힘에 관한 것이다.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서 그 권력 말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원리에 대해 단순화하는 것이 좋겠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또한 물은 많이 고인 곳에서 적게 고인 곳으로 흐른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힘이라고 부른 권력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은 많이 가진 곳에서 적게 가진 곳으로 행사된다. 권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권력은 목적을 달성하기 수월하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서 권력을 더 많이 가진 행위자를 움직이게 만든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권력이 없었다면 하지 못할 일을 자신감을 가지고 하게 만든다. 이것도 자연적인 이치이다.

국가들 간의 관계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이런 이치가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 바로 국제관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국가나 행위자는 더 적은 권력을 가진 국가나 행위자에게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고자 강요하거나 위협한다. 만약 더 적은 권력을 가진 국가나 행위자가 이것에 저항하면 강자는 이 저항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권력을 실제 행사한다. 강자가 자신의 목적이 너무나도 강렬하여 군사력까지 사용해서라도 이루고자 한다면 힘이 더 강한 강자는 약자를 상대로 전쟁도 불사한다.

그런데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자연의 이치와 다른 것이 있다. 물이 아래서 위로 흐를 수 없던 것과 달리 약자가 강자에게 저항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저항이 허황된 계산이나 판단 착오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치밀한 계산에 의해서 수행되는 전략적인 산물이 될 수 도 있다. 강자가 강요를 하고 그 강요에 대해 약자가 저항을 할 때, 강자가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약자가 판단한다면 그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강자를 먼저 공격할 수도 있다. 아이들 용어로 하면 ‘선빵’을 날리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으론 선제공격에 해당하는.

이것이 성공하면 약자는 사태의 초기 국면을 주도할 수도 있다. 약자가 국가라면 약소국의 국민들을 단합시킬 수도 있다. 강자가 당황하여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요구를 철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을 상대로 이 권력 게임에서 그런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왜? 현재의 권력 게임이 ‘구조적 권력’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조적권력이란 개체의 의지에 의해 작동하는 권력이 아니라 개체들을 둘러싼 사회구조가 만들어 낸 권력이라는 것이다. 현재 미국이 행사하는 것은 세계경제와 안보구조에서 가진 구조적인 권력이다. 다른 국가들은 내켜하지 않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권력이다.

실제 상황을 보자. 미국은 지난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 기간에 구조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먼저 세일오일과 세일가스를 통해서 에너지 부분의 약점을 극복했다. 다음으로 약해진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렸으며 해외에 나간 기업들을 미국 내로 불러들였다.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갈등에 따른 외부 충격을 줄일 수 있는 포석을 깔아두었다. 또한 통화시장에 개입하여 미국 달러가 가진 실질적 기축통화로서의 힘을 강화시켰다. 여전히 전세계 국가들은 무역 결제자금으로서 1/2을 미국 달러로 사용하고 있다. 레일건처럼 최신 군사 기술력을 가지고 더 강력해진 군대를 만들고 있으며 이것으로 동맹 국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처럼 동맹국가라도 관세를 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동맹 국가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력과 미국이 보여주는 경제력이 가진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무역, 통화, 금융, 안보, 4차 산업혁명으로 겹겹이 무장을 한 미국이 트럼프라고 하는 돌발적이면서도 국가이익에 솔직한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2020년 재선을 위해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위대한 미국’을 내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그다지 대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에너지 시장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으로 러시아와 이란 따위는 적수가 못 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힘이 약한 터키도 걸려든 것이다. 구조적인 권력을 무시하고 터키는 금융시장과 미국과의 외교전선에서 저항하고 있다. 실제 에르도안은 “애플 대신에 삼성이 있다”고 발언하였다. 또한 NATO를 떠나 러시아와 중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국민들에게 달러를 팔아 리라화를 사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판을 깔아둔 이 게임에서 금융자본들은 터키를 빠져나갈 것이고 터키를 무자비하게 공격할 것이다. 이들은 이 게임에서 누가 권력자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서 미국은 왜 국제사회에 비난을 받고 동맹 국가들의 원성을 사면서까지 터키와 신흥시장을 버리는 정책을 택한 것일까? 누구를 대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자신들이 얼마나 강력한 구조적권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과시하고자 한다. 전세계를 상대로. 특히 중국, 러시아와 같이 미국과의 경쟁을 고려하는 국가들을 상대로. 그리고 그 국가들과 유대를 강화하려는 국가들을 상대로 말이다. 이미 대선과정에서 또라이로 정평이 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욕 좀 더 먹는 것이 뭐가 대수겠는가! 미국의 보수파들이 그리고 자신의 지지자들이 열렬히 박수치고 있는데.

터키와 신흥국가의 금융위기가 그저 경제문제만을 아니라는 것이 한국에게는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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