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냉면 영재 키우기와 정치 영재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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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냉면 영재 키우기와 정치 영재 키우기
  • 신희섭
  • 승인 2018.08.1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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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둘째 딸아이는 감히 냉면 영재라고 부를 만하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냉면에 대한 조예가 깊다. 정확하게는 평양냉면에 대해.

이 아이를 냉면 영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냉면 맛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냉면을 아주 빨리 배웠다. 둘째는 두 돌이 될 무렵 평양냉면에 입문했다. 다른 아이들이 이유식에서 밥으로 넘어갈 때 메밀의 세상을 본 것이다.

얼마 전 일이다. 둘째가 가장 좋아하는 냉면집인 B에 갔다. 늘 그렇듯이 둘째는 빠른 속도로 냉면 한 그릇을 완냉했다. 그러더니 냉면집 순위를 바꿔야겠다고 한다. 더 이상은 B가 가장 좋아하는 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전에 몇 번 우래옥과 필동면옥을 다녀온 뒤라서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하고 “왜 여기가 마음에 안 들어?”라고 물어보았다. 둘째 아이 답은 이랬다. “이 집 냉면은 면하고 육수가 따로 놀아. 우래옥은 면 사이사이에 육수 맛이 배어있는데 이 냉면은 그렇지 않아.”

사실이 그랬다. B 냉면은 면 자체도 나쁘지 않고 육수 자체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면과 육수의 균형이 잘 안 맞는다. 물론 개인적인 평가지만, 우래옥과 달리 면과 육수의 조화가 부족하다. 우래옥은 면이 굵어서 씹는 맛이 좋다. 그런데 이 면 맛을 강하고 진한 고기향의 육수가 잘 받쳐준다. 그래서 면과 육수를 한꺼번에 입에 넣으면 맛이 배가 된다. 필동 면옥도 균형이 좋다. 필동면옥은 면이 가늘다. 육수의 육향도 옅다. 그런데 면을 입에 넣고 육수를 함께 먹으면 그 면의 질감을 잘 살려준다. 우래옥의 면과 필동면옥의 육수 배합은 생각도 하기 싫다. 필동면옥의 면과 우래옥의 육수 배합을 상상하는 것은 끔찍하다. 그저 그 집들은 그렇게 몇 십 년을 자신들의 면과 육수를 이어서 팔고 있고, 많은 이들이 그 균형 잡힌 맛을 좋아해서 찾는 것이다. 그런데 B는 면과 육수가 입안에서 따로 논다.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니, 그 집에 가게 되면 냉면을 먹기는 한다. 그랬는데 둘째도 이제는 이 냉면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게 된 것이다.

냉면 영재다웠다. 이제는 다른 집의 냉면들과 비교를 하며 맛의 균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기특하게도.

이 아이가 냉면영재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어릴 때 냉면에 입문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이 집에 다니지 않는 3살에 나는 아이를 데리고 여러 군데 냉면집을 찾아 다녔다. 그때는 나도 평양냉면에 꽂혀 있었다. 서울시내와 송추를 다니면서 냉면을 먹었다. 첫째는 어린이 집에 다녀서 어린이 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둘째만 같이 다녔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면의 질감이 좋은 냉면이 둘째에게 잘 맞았던 듯하다. 그래서 네 살이 되어서 부터는 할머니에게 냉면을 해달라고 하거나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졸았다. 다른 아이들이 쌀과 고기국의 세계로 갈 때 둘째는 메밀과 육향의 세계에 입적한 것이다.

둘째의 냉면 사랑은 수시로 냉면을 먹으면서 더 강해졌다. 게다가 냉면인의 한 사람으로서 냉면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메밀과 육향의 세계에 입덕한 뒤에는 배움의 습관화를 실천하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냉면에 입문하게 한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내가 좋아하니 둘째와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서로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가르침도 있다. 아이들이 수학이나 영어 숙제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어볼 때가 가끔 있다. 간단히 몇 문제를 풀어주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숙제가 많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가르쳐 주는 것이 피곤해진다. 설명을 빨리 알아들으면 좋은데 아이들이 집중을 하지 않으면 한 번 설명한 것을 다시 설명해야 한다. 원리를 알려주었는데 다른 문제에 가서 다시 그 원리를 물어보면 마음이 갑갑하다. 간혹 이성의 끈을 던지고 아이에게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확실히 냉면을 가르칠 때와는 다르다.

무엇이 차이일까? 상대방에게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같은데 말이다. 두 가지 가르침의 차이는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있다. 냉면은 나도 좋아하고 딸아이도 좋아한다. 영어와 수학은 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딸아이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 다 해야만 하니 하는 것이다. 냉면을 먹는 것은 계속할만한 일이지만 수학과 영어는 계속할만한 즐거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 이 공부에 흥미를 더 가진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공부는 습관적으로 하되 내켜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간만에 찾는 냉면집처럼 설레지 않을 것이다. 공부법을 알려주는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지나온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아이에게 필요하니 예전 기억을 떠올리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아이가 배우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을 인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두 가지 가르침은 다르다.

냉면을 배우고 습득하는 것과 영어나 수학을 배우고 습득하는 것 중 정치 리더십 훈련은 어디에 속할까? 정치 리더십훈련은 후자에 속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어린 나이에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을 한 아이도 처음부터 정계에 입문하지 않는다. 다른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뒤 유명인이 되었을 때 ‘짠’하고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하기를 꿈꾼다. 그래서 리더십훈련을 다른 분야에서 받는다. 그것은 법조계이거나 의료계이거나 아니면 학계이거나 어떤 경우에는 영화나 음악분야일 수도 있다. 그렇게 다른 분야에서 스타가 되어 정계에 입문하면 가장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나를 보는 외부의 시선들이다. 나에 대한 지지자들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혹시 내게서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인지. 온통 이 생각뿐이다. 그런데 정치는 속성상 반드시 반대편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런 정치 생리에서 이편과 저편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이전 분야에서처럼 유명인으로 남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 정치리더십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원로나 선배들도 별로 없다. 이들은 아직 권력에 욕심이 있든지 아니면 이미 이 판에서 마음이 떠나서 자신들이 배운 원리를 어렵게 후배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좋은 부모로 남기 위해 공부는 전문가 선생님에게 맡기듯이, 좋은 선배와 원로로 남기 위해 정치는 전문가 선생님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그러니 정치 리더십을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링컨과 같은 위대한 스승들로부터 배우면 좋겠지만 책을 통해 이들의 리더십을 배우는 것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래서 어찌 하면 좋겠는가! 한국의 정치가 다른 분야보다 후진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향후 정치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공감한다면 차세대 정치리더들을 키워야 한다. 이들이 정치영재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냉면영재처럼 말이다. 어려서부터 정치를 배우고 즐겁게 경험하고 기꺼이 습관화하게 해야 한다. 지금의 유명인을 앞세우며 당명을 철마다 바꾸는 정당정치의 구조에서 이런 방식으로 정치영재를 키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재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대안도 생각하기 어렵다는 시민들의 인식구조 속에서는 정치영재들이 새싹조차 틔우기 어렵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은 정치영재들을 입문시키는 교육과 정치영재들이 세상에 나와 자신들의 현실 정치를 할 때 지지해줄 수 있는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를 데리고 우래옥을 향할 때 설레듯이. 미래의 정치영재들을 키우기 위해 정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설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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