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노회찬의 염결성, 고영한의 몰염치, 김병준의 실패, 공지영의 조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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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노회찬의 염결성, 고영한의 몰염치, 김병준의 실패, 공지영의 조급성
  • 오시영
  • 승인 2018.08.0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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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도덕적 염결성은 시간 앞에 약하다. 도덕적 염결성이 엄격할수록 짧은 시간 앞에 쉽게 무너진다. 맑고 깨끗한 1급수에 먹물 한 점 떨어지면 맑은 물이 탁해지듯, 도덕적 염결성에 한 점의 티가 생기면 도덕적 인간은 스스로 이를 견디지 못한다. 스스로 염결성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겠다고 다짐했기에 그 맑은 십자가가 흐려지면, 맑은 눈동자가 탁해지면, 고운 영혼에 흠이 생기면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도덕적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 대해 자신이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자기심판의 길을 걷는다. 타인이 시키지 않은 길이기에, 강요하지 않은 길이기에 더욱 엄격하게 스스로를 단죄하는 것이다. 까닭에 도덕적 염결성이 강할수록 무너지는 시간이 짧다. 타인의 공격을 받기 전에 스스로 내부 양심의 창날로 스스로를 찔러 피 흘리며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무너짐을 자초하는 것이다.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2주가 되었다. 혹자는 4천만 원의 정치자금을, 그것도 아무런 대가성 없이 받은 것이 무슨 큰 죄라고 스스로 소중한 목숨까지 끊어야 했는가 하고 안타까워한다. 또 다른 혹자는 그렇게 청렴한 척 나대더니 그렇게 비난해 온 다른 탐욕적 정치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지 않으냐며 형사처벌을 받아 정치적 책임, 법적 책임을 져야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비겁하다며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안타까움과 비난이 교차한다. 그게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가장 강하게 책임지는 표현 방식은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라는 점이다. 까닭에 역사적으로도 대역 죄인에 대하여 사약을 내렸고, 형사벌도 결코 용서하지 못할 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했다. 사약을 내리거나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타율적 책임 추궁이다. 타율적 책임 추궁을 당할지언정 사형을 집행당한 자는 자기 목숨을 대가로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최종적 불가역적 책임을 진 까닭에 사형을 집행당한 자에 대해 세상은 더 이상 비난을 가할 수 없게 된다. 목숨 이상 그 무엇으로도 더 큰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앞서의 타율적 책임 추궁보다 더 무서운 자율적 책임 추궁이다. 세상형법으로 보면 겨우 벌금형이나 징역 1,2년에 집행유예 정도 나올 수 있는 형사 책임의 잘못에 불과한데도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으며 책임을 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기를 보면 두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정신적 질병이나 삶의 고달픔으로 인한 목숨 끊기이고, 다른 하나는 어떠한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서의 목숨 끊기다. 두 가지 모두 안타까운 일이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후자의 경우 그 타율적 책임 추궁이 사형이 선고될 수 있는 중죄의 경우에는 책임(결론)의 등가성으로 인해 그럴 만도 하다는 이해 가능 영역이 될 수도 있지만, 경미한 형사처벌이 예상되는데도 목숨을 끊는 것은 등가성에서 불균형이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 높아지게 된다.

지난 한 주도 폭염이 대한민국을 짓눌렀고, 다음 주도 마찬가지라는 일기예보이다. 참으로 덥긴 덥다. 더위를 더하는 것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한민국의 썩음이다. 썩음은 열을 뿜어내게 되어 있다. 양승태 사법농단사태의 주요 증거가 될 문건들이 세 건의 예외(개인적 비밀 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그러나 문건의 당사자들은 이에 대해 공개하라고 반발하고 있다. 핑계대지 말라는 것이다)를 제외하고 모두 공개되었다. 조선일보를 통한 여론 조작, 정치인, 국회의원들의 개인적 형사사건 및 민사사건 재판을 미끼로 내세운 정치적 흥정, 국가이익이라는 알 수 없는 프레임에 국민의 개인적 소송 결과를 꿰맞추려 한 박근혜 정권에 부역하는 재판 거래 흥정 등 대법원장이 미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법농단이 자행되어 왔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법농단 정도가 아니라 사법부를 아예 똥물에 말아먹은 꼴이다. 보통의 정신병자 수준을 넘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중증의 사이코패스 수준이다.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지난 1일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다. 그의 행정처장 재임 기간에 이번 사법농단 사태를 야기한 주요 문건들이 작성되었음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사법농단 책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밝힌 퇴임사의 가장 큰 핵심어는 “사법권위의 하락 방지”였다. 사법농단의 구체적 재판 거래 사건으로 거론되고 있는 “KTX 여승무원 판결”과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의 주심 대법관이기도 한 그는 당당히 말한다, “늦었지만 사법 권위의 하락이 멈춰지고 사법에 대한 신뢰가 더 이상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라고. 그의 절절한 퇴임사는 “꿩 떨어진 매의 심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를 보호하고 있던 “현직 대법관”이라는 보호막이 걷히는 순간, 그에게 절실한 것은 “사법부의 권위 회복”이라는 미명 하에 “사법농단 행위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책임 추궁 면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권 독립이 훼손될 우려에 처해 있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습니다.”라고 남 얘기 하듯 사법권 독립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그나마 “저로선 말할 자격이 없음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심정입니다.”라며 자신의 책임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듯한 한 마디가 다행이라면 다행일 정도이다. 사법권 독립을 스스로 훼손한 의심을 받는 자가 사법권 독립 훼손의 우려를 언급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어불성설이다. 후안무치함을 넘어 타인에 대한 책임 전가이다. 앞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목숨 끊기로 책임을 다한 누군가와 비교되기도 하다.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지 않는 자는 비겁할 뿐이다.

그는 퇴임했다. 일개 야인으로 돌아간 지금, 그의 재임 중 이루어진 사법농단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검찰은 그의 컴퓨터 하드 디스크 임의 제출을 법원에 요구하고 나섰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지켜볼 대목이다. 대법관으로서의 현직 보호막이 제거된 지난 1일, 대한민국은 첼로의 낮은 음이 위로가 되고 있다. 뜨거운 폭염 속, 낮은 저음의 첼로 또는 베이스 음률은 사람의 열을 식혀주고, 더위를 가시게 한다. 시간을 내어 첼로연주를 듣고 또 듣는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미국에서 SNS를 통해 노회찬 의원의 자살 미화는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런 바른 말을 하는 자기를 비난하는 것은 나치 독일의 괴벨스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였다. 국민은 자살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정치인의 자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인데도 책임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자, 책임지지 않은 자, 남의 탓만 하는 자의 무분별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의 정치개혁은 이미 실패했다. 지난 7월 17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불과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그를 향해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성급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고 시작을 보면 끝을 안다”는 옛 말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비대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은 개인적 욕심의 실패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 왜냐하면 속도가 극히 미미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방향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비대위원장이라면, 당이 비상사태에 놓여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하는데, 그의 행보는 너무 미기적거린다. 비대위원장에게는 “첫째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라는 문제 파악이 급선무이다. 한데도 보름 동안 무엇이 자유한국당의 문제인지에 대한 성찰이 거의 전무하다. 간간히 흘러나오는 단편적, 간헐적 이야기는 있지만, 근본적인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울림이 없다. “둘째로 누가 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인적 청산 의지가 있어야 한다. “셋째로 앞으로 어떤 이념 하에 정강정책을 수립해 나갈 것인가?”라는, 즉 구태를 벗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정당을 환골탈태시켜야겠다는 비전 제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가치 정립이 빈약하다. 그러면서 두 번째 문제를 세 번째 문제에 동참할 의지가 있으면 과거는 묻지 않겠다며 스스로 인적 청산 문제를 중요시 하지 않고 있음을 밝혀 잘못한 자들에 대한 사전 면죄부를 주어 버렸다.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면 낡은 부대에 담겨 있는 썩은 물이 맑은 정화수가 될 것이라는 발상은 순진함을 넘어 한심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면 그 맛인 것이지, 거기에서 신선함이 나오겠는가? 평생 맛보지 못한 별미의 달콤함이 나오겠는가? 그리고 문재인 정권을 향해 뜬금없이 국가주의라는 황당한 프레임을 덧씌우겠다며 자유한국당의 새로운 가치 중의 하나로 자율을 내세우고 있다. 자율의 한 예로 티비의 먹방 축소 필요성을 언급한 정부 의견을 타율이라 비난하며 말 그대로 먹방 정당이 스스로 되어 버렸다. 안보 프레임으로 국가주의를 지향해 왔던 자유한국당으로서는 국가주의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잘못을 극대화시켜 투영하는 역설적 단어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가장 큰 문제는 “통렬한 자기반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책임지는 자 없는 무책임정당”에 대한 국민 외면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 부재이다. 국민들이 노회찬 의원의 빈소를 찾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자신의 사소한 잘못을 견디지 못한 도덕적 염결성에 의한 죽음으로 사죄하는 책임정신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을 예찬하자는 것이 아니다. 4천만 원 수수라는 정치자금법 위반에 목숨을 내놓는 책임의식, 상대적으로 수십억 원의 횡령과 뇌물 등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자들이 다수 분포되어 있는 야당이 상대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공지영 작가가 “해리”라는 소설을 내놓았다. 출판 인터뷰 과정에서 “진보의 탈, 민주의 탈을 쓰는 것이 예전과는 달리 돈이 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체득한 사기꾼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면서 “향후 몇 십 년 동안 우리가 싸워야 할 악은 진보의 탈, 민주의 탈을 쓰고 엄청난 위선을 행하는 그런 무리가 될 것이라는 작가로서의 감지를 이 소설로 형상화했다.”고 밝혔다. ‘해리’는 공 작가가 9년 간 312명이 사망한 대구 희망원 사건을 주요소재로 하여 전주의 봉침 사건 등 5년 간 수집한 여러 실화들을 서로 얽어매어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한 소설이다. 착한 일-장애인이나 부랑아를 돌보는-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부나 장애인보호센터 대표 등이 오히려 피보호자들을 학대하고, 그들에게 사용되어야 할 지원금이나 후원금을 개인 치부에 이용하는 등의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공 작가가 이 소설의 출간의 변으로 “진보의 탈 민주의 탈을 쓰고 엄청난 위선을 행하는 무리”에 대적하여 싸우겠다고 내세운 일성은 지나치게 조급하다.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은 “사리사욕을 취하는 사기꾼”인 것이지 “진보와 민주”가 싸움의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진보와 민주는 아직 제 스스로 걸음마를 하기에도 힘겨운 미숙아 상태에 있다. 사기꾼은 진보와 보수, 민주와 독재 어느 영역에도 존재한다. 공 작가가 작가로서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싸워야 한다면 그 대상은 “사기꾼 그 자체”여야지 “진보의 탈, 민주의 탈”을 쓴 자들의 영역에서 사기꾼을 색출해 내는 싸움이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아직은 거악의 제거에 올인하기에도 힘겹다. 사법농단이 그렇고, 기무사내란모의 여부가 그렇다. 거대 재벌의 횡포가 그렇고 최저임금제와 52시간 근로제도의 정착이 그렇다. 거악의 거대한 해악에 비하면 조무래기일 수밖에 없는 민주와 진보의 탈을 쓴 사기꾼들은 그 영향이 미미하다. 물론 그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지 못하도록 감시와 견제를 강화해야겠지만, 아직은 주요 타켓의 방향을 섣불리 바꾸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조급하다는 것이다.

공 작가의 이러한 투쟁 정신은 역시 도덕적 염결성의 엄격함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강함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진보이면, 민주이면 사기꾼이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염결성이 위선의 탈을 쓴 사기꾼을 색출해 심판하겠다는 “조급한 용기”로 분출되고 있다. 물론 잘못된 것은 싹수부터 잘라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 싹잎 단계에 불과한 민주와 진보의 작은 허물을 너무 침소봉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보와 보수, 민주와 독재 어디에서도 기생하는 사기꾼을 색출하는 것, 그것은 작가의 보이지 않는 업보이기도 하다. 색출하라, 사기꾼을! 우선은 큰 것부터, 깊이 박힌 것부터, 넓게 퍼진 것부터, 높이 올라 가 있는 것부터, 단단히 굳은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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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8-05 00:38:50
염결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구라 2018-08-03 15:54:41
진보의 탈이 돈 된다는걸 체득한 사기꾼들을 감지했다라...진보의 탈을 쓴 사기꾼들 소재로한 소설이 돈된다는걸 감지했겠지. 남들이 이명박근혜 9년간의 악을 목숨걸고 까발리는 동안, 자신은 조용히 아닥하고 있다가, 이제와서 그 축에 끼어 주류행세는 못하겠고, 차려놓은 밥상위에 촐싹 올라앉아 정의의 감별사 행세를 하며 장사를 하는거지. 악이 선으로 위장하는데 진보의 탈만 쓰나. 보수의 탈, 페미니즘의 탈도 쓰지. 하지만 공지영은 진보의 탈만 물어뜯어. 그게 만만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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