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고결함과 현실정치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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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고결함과 현실정치사이
  • 신희섭
  • 승인 2018.07.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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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노회찬의원이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드루킹 사건과 특검의 조사과정에서 4000만원의 불법자금수수가 드러나자 그는 자신의 삶을 버림으로서 ‘깨끗한 정치인’이자 ‘진보 정치인’의 이미지를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버린 그의 비극적 선택에는 그가 속한 정의당과 당원들을 보호하고자 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죽음이란 비장한 선택을 한 정치인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렸다.

노회찬의원의 비극적인 선택은 한국정치의 비극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면 정치본연이 가지는 비극성이기도 하다. 그것이 더 마음이 아프다.

삶을 더 오래 영위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바람이다. 늘어난 삶이 비록 행복하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 누릴 시간을 늘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인간에게 주어진 ‘명(命)’을 스스로 버리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바람에 반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스스로 목숨마저 버리면서 이렇게까지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자살의 다양한 원인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불법자금이라는 악재를 마주한 그 순간 목숨으로서 사태를 최종적으로 돌파하고자 한 이유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세운 원칙과 소신이 강한 사람들만이 자살로 자신을 변호한다. 그러한 원칙과 소신이 없는 이들은 불법에 대해 관대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쉽게 용서한다. 아니 용서할 기준 조차 없을 수 있다.

원칙과 소신을 가진 정치인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까지 몰렸을 때, 원칙과 소신을 여전히 지킬 수 있다는 마지막 항변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자신의 원칙과 소신이 더 이상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낀 그 순간. 마지막까지 자신이 생각한 자신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킬 수 있는 이상과 원칙이 자신에게는 남아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비극적 선택으로 정치인생의 마지막 장을 쓴 이들은 원칙과 이상을 따르는 ‘고결한 삶’을 살고자 했을 것이다. 이것이 비극의 서막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결한 것들은 고결한 사람들로부터’라고 했다. 고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고결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구경에도 이런 말이 있다. “좋은 우정, 교우관계는 청정한 삶의 전부이다. 나그네 길에서, 자기보다 낫거나 동등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단호히 홀로 가라, 어리석은 자와의 우정은 없다.” 이 또한 더 나은 삶을 사는 고결한 이와 함께 살아야 우정을 이룰 수 있으며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정치란 어떤가? 고결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가? 그렇지 않다. 비스마르크가 일찍이 통찰한대로 “정치는 인격을 망친다.” 힘을 가지기 위해서 정치인은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른 이들을 모으고 이들로부터 자금을 후원받아야 한다. 정치자금의 압박을 받는 현실 상황에서 고결함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해관계가 크면 클수록 또한 그 이해관계가 정치적 지원을 받지 않으면 사라질 가능성이 높을수록 관련된 이들의 정치적 투쟁은 생사투쟁이 된다.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들, 저승의 아귀(餓鬼)처럼 달려드는 자들, 이들과 함께 하는 정치무대에서 고결함은 현세의 단어는 아니다.

그렇다. 고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의 욕망이나 가치에서 초연해야 한다. 주변의 유혹을 떨쳐내고 자신이 세운 원칙을 끈질기게 지키며 살 수 있어야 한다. 고결하지 않은 이들이나 고결한 이들 모두에게 고결한 삶을 살고 있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번인은 그런 인정 자체를 초월해야 한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고집스럽게 걷는 이만이 고결하게 살 수 있는 자격을 받는다.

그런데 정치는 본질적으로 다원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다름을 인정해야 하며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름과 틀림을 끊임없이 구분하면서 다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정치인은 고결하게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거부하거나 무시하고 자신의 덕망만을 고집하면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고결한 삶을 원하는 이들이 현실 정치판에서 인격을 망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모든 정치인은 고결한 삶을 살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링컨, 처칠, 루즈벨트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도 있다. 그들은 그들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원칙을 지켰다. 그들은 고결함으로 유지했으며 그로써 진정 역사를 만들었다. 특히 이들은 전쟁이라는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조차 이겨냈다. 그렇다면 인류의 스승이 된 이 지도자들은 고결한 삶과 현실정치를 어떻게 조합할 수 있었던가?

원론적인 말이지만 그 접점에 리더십이 있다. 현실에서 어떤 정책을 선택할 것인지와 그것이 어떤 원칙에 기초할지가 정치의 핵심이다. 고통스럽지만 올바른 결정의 본질에 리더십이 있다. 이때 리더십은 역사에 대한 인식과 미래에 대한 신념에 기초한다. 역사. 만들어져왔고 만들어가야 할 그 역사인식이 리더십을 이끌 때 정치지도자의 실패할 가능성은 적어진다. 리더십을 이루는 역사적 안목과 혜안은 추종자들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지도자 개인이 아니라 역사가 세상을 이끄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지도자의 욕심과 사심이 절제될 수 있다. 그 상황에서야 추종자들이나 반대자들 모두 존경심을 가지고 지도자를 따를 것이다.

고결함과 현실 정치. 이 어려운 조합을 해낸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정치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지도자와 리더십을 배우는 것이다. 한 정치인의 자살은 한국정치 리더십에 대한 큰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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