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생생한 형사법 사례와 해결- 유서대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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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생생한 형사법 사례와 해결- 유서대필 사건
  • 이창현
  • 승인 2018.07.2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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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교수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사건의 개요>

1991.4.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중에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이후에도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이 계속 이어졌는데, 그러던 중 1991.5.8.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이었던 김기설 씨도 서강대 본관 5층 옥상에서 분신하고 말았다. 이때 발견된 유서 2장을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기훈 씨가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하였다며 국가보안법위반죄와 함께 구속기소가 되고 말았다.

강기훈 씨의 부인에도 불구, “김기설 씨는 시골 고등학교 1학년 중퇴의 학력이어서 유서와 같은 내용을 작성할 능력이 없어 보이며 6세 때 생모가 사망한 후 주로 누나 손에서 자라나 생모에 대한 기억은 물론 계모에 대한 정이 없는데도 유서 1장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내용만 나와 이상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 결과 유서의 필적이 강기훈 씨의 것이 맞다”는 이유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이 선고되었다. 이후 상소가 기각되어 1992.7.24. 유죄가 확정되었다. 도덕성을 중요시하던 당시 운동권에서 동료에게 자살까지 선동하여 투쟁 열기를 올리려고 하였다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11.경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김기설 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이 새로 발견됐다. 국과수 및 7개 사설 감정기관에 필적감정을 의뢰하여 유서의 필적은 김기설 씨 본인의 것이라는 감정결과를 통보받아 법원에 재심을 권고하게 되었고, 이에 강기훈 씨가 2008.1.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다. 2009.9.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의 청구가 이유 있다며 재심개시 결정을 하였으나 검사가 이에 불복하여 즉시항고를 하였고, 대법원은 3년이 지나도록 결정을 미루다가 2012.10.19. 즉시항고를 기각하여 드디어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 심판절차가 진행될 수 있었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2014.2.13. “유서가 강기훈 씨가 아닌 김기설 씨가 직접 작성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면서 “국과수 감정인이 작성한 감정서 중 유서의 필적과 강기훈 씨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부분은 신빙성이 없어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강기훈 씨가 유서를 대필하여 주어 김기설 씨의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정도로 입증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며 자살방조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국가보안법위반죄에 대하여는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2015.5.14. 검사의 상고가 기각됨으로써 자살방조죄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

이 사건은 1894년 프랑스 군부가 가짜 필적을 증거로 유대인이었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를 간첩으로 몰아 종신형을 선고했던 사건에 비유되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법적 쟁점>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연 유서가 자살한 김기설 씨가 작성한 것인지, 아니면 강기훈 씨가 작성한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첫 재판에서는 유서가 강기훈 씨의 필적이라고 판단하였으나 재심에서는 유서가 강기훈 씨의 필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법적 쟁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자살방조죄에서 유서대필이 방조행위가 되는지가 문제이다. 우리 형법은 자살을 벌하지 않지만 타인의 자살에 관여하는 행위는 자살교사죄나 자살방조죄로 엄격히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자살방조란 이미 자살을 결의하고 있는 자에게 도움을 주어서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것을 말하며, 그 방법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은 첫 재판에서 자살하려는 정을 알고 그 유서를 대필해 주는 것도 적극적 · 정신적 방법으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유서내용에 의하여 자살의 동인과 명분을 주어서 자살을 용이하게 실행하도록 한 것이므로 자살방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단순히 유서대필만으로는 부족하고 유서대필을 통해 자살로 이어지는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판례 중에는 피해자가 피고인과 말다툼을 하다가 ‘죽고 싶다’고 하며 피고인에게 기름을 사오라고 하자 피고인이 휘발유 1병을 사다주었는데 피해자가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자살한 경우에도 자살방조로 보았다.

둘째, 공소사실 특정의 문제이다. 공소사실에는 일시, 장소가 “1991.4.27.경부터 같은 해 5.8.까지의 어느 날 서울 어느 곳에서”로 되어 있고, 유서작성의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기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소사실의 기재에 있어서 일시, 장소, 방법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범죄의 성격상 부득이 한 때에는 다른 사실과 구별할 수 있어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괄적으로 기재하여도 무방하다고 본다. 대법원도 “유서대필 여부가 문제로 되는 한 이는 자살자와 유서대필자 사이에 일어난 일이어서, 결국 그 유서가 대필되었는지 여부가 그 범죄성립의 핵심을 이루는바, 이처럼 자살이 이미 실행되어 버렸고 그 유서가 압수되어 특정되어 있는 경우, 그 일시와 장소는 범죄의 동일성 인정과 이중기소 방지, 시효저촉 여부, 토지관할을 가늠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 유서대필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도로만 기재되어 있으면 충분하다’고 보고 공소사실의 특정을 인정하였다.

셋째, 국과수의 필적감정결과와 그 판단의 문제이다. 이 사건으로 당시 수사와 기소를 하였던 검찰이나 재판을 담당하였던 법원은 국민들의 매서운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은 당시 수사와 재판에서 유서의 필적이 강기훈 씨 것이라는 국과수의 필적감정결과에 따랐던 것이다. 물론 다른 증거까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어야 했고 법원은 자유심증주의에 의해 반드시 국과수의 필적감정결과를 따를 필요가 없지만 과연 그것이 쉬운 일인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정식으로 요청하지 않았다면 국과수에서 다시 필적감정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처음과 다른 필적감정결과가 나왔다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라고 하겠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국과수의 필적감정결과 등이 ‘원판결의 사실인정을 변경할 만한 새로운 증거의 발견’으로 인정되어 재심개시결정이 가능하였던 것이고 결국 유죄에서 무죄로 변경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의 판단이 달라지면서 법원의 판결까지 사실상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서 점점 더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사와 재판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덧붙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그냥 묻혀버렸을 것임이 분명하고, 재심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한 제도이므로 이제 무죄로 완벽하게 확정되었다.

이 사건도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지만 실체진실발견의 어려움과 함께 ‘재판에서의 평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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