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담긴 변송문(辨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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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담긴 변송문(辨訟文)
  • 김영철
  • 승인 2018.07.20 10:3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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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변호사(법무법인 대종) / 전 건국대 로스쿨 교수

정약용의 목민심서 제3장 봉공육조(奉公六條) 중 제4조 문보(文報)편을 보면 “변송하는 문서는 반드시 그 글이 사리에 맞고 정성스러우며 간절함이 나타나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辨訟之狀변송지장 必其文詞條鬯필기문사조창 誠意惻怛성의측달 方可而動人방가이동인)”라고 쓰여 있다. 목민(牧民)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가 임금에게 백성을 변호하고 해명하는 내용의 공문서를 올려 임금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할 때에 작성자가 지녀야할 유의사항이다.

성군(聖君)이기를 꿈꾸는 임금의 입장에서는 백성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비천하기 그지없는 하찮은 존재지만, 그 민심을 얻어야 천하가 태평해지고 성군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측면에서 태산처럼 높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목민관이 백성을 위하여 정성스레 청하거나 간절하게 변호하면 임금도 결국 마음을 움직여 목민관의 소청을 들어 줄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말함이었으리라.

이 변송문 작성 자세는 그 대상이 전제군주가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된 오늘 날에도 그대로 본받을 만하다. 특히 변호사시험을 통과하여 변호사자격을 취득하는게 제1차적 급선무인 로스쿨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변송문을 작성하는 목민관의 입장에서 그 상대가 결정권자인 임금이라면,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로스쿨생의 입장에서 그 상대는 답안채점자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답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할 때마다 이 구절을 인용하곤 하였다. 장래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있는 법조인이 되려면 로스쿨 과정의 답안 작성단계부터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묻어난 문서작성 연습을 잘 해야 한다. 어떤 학생의 머릿속에 아무리 풍부한 법 지식이 저장되어 있다 해도 평가받는 부분은 저장되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분량으로 표현된 그 학생이 종이에 작성한 답안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면, 채점자를 설득할 수 있는 답안을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학문적인 논문이 아니라 법실무용 문서로서, 그 내용은 적합한 키워드(key word)가 들어 있되 법리와 판례 등이 잘 융합되어 논리적이며 사리에 맞는 것이라야 하고, 그 형식은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길고 짧음이 적절히 조절되고, 의사전달이 잘 될 수 있도록 적절한 제목과 함께 기승전결이 짜임새 있게 갖춰진 입체적인 작품이여야 할 것이다. 이래야만 사리에 맞고 정성스러우며 간절함이 묻어난 글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 채점자에게 전달하는 매개는 글씨이다. 상대에게 호감을 받아 마음을 움직이려면 잘 쓰여진 글씨도 한 몫 단단히 한다고 볼 수 있다. 답안에 정성과 간절함을 드러내는 데에는 글씨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보면, 무슨 내용을 기재한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마구 휘갈긴 글씨체의 답안지, 심지어는 “있다”, “없다” 등 긍정인지 부정인지 조차 파악하기 힘든 글씨체의 답안지를 가끔 접하게 된다. 이러한 글씨체의 답안은 소통의 상대방인 채점자에게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하려는 정성과 간절함도 엿보이지 않고 내용전달도 제대로 안되어 그 내용에 걸 맞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그래서 채점자에게 잘 보일 “고시체”를 익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글씨 연습하다 손목부상을 입는 등 글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컴퓨터 자판에 익숙한 요즘 학생에게 한석봉 같은 명필을 기대하는 채점자는 없을 것이다. 글씨에 관한 한 채점자들은 비록 악필(?)일지라도 의사전달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쓰여 지기만 하면 족한 것으로 너그럽게 생각할 것으로 본다. 역설적으로 악필 속에 정성이 담긴 글씨가 더 돋보일 수도 있다.

변호사, 검사, 판사 등 기성 법조인에게도 정약용의 “변송장” 작성요령은 유용할 것이다. 변호사는 자신을 선임한 소송당사자와 판사나 검사 등 결정권 있는 (준)사법관들을 설득해야 한다. 검사는 공소장과 의견서를 통하여 재판부를 설득해야 하고, 피해자나 피고인 등 당사자의 승복을 받아야 한다. 판사는 법대 밑에서 재판을 받는 당사자를 판결문을 통하여 설득해야 하고, 하급심은 또 상급심을 설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변호사, 검사, 판사는 공히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땅에 떨어진 사법신뢰도를 높여야 할 시대적 사명을 코앞에 두고 있다. 사법신뢰를 높이는 것은 “사리에 맞고 정성스러우며 간절한” 변송문의 작성자세로 각자의 문서를 작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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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소리 2018-07-21 00:48:08
합불을 걸고 장시간 글쓰느라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손목 부여잡고 겨우겨우 시간 내에 답안지 채우는 학생들입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글씨의 정성까지 논하십니까? 교수님은 악필로 인해 눈 아픈 걸로 끝나지만 답안지를 다 못채운 학생들에게는 합불이 걸린 문제입니다.

선의로 하신 말씀일테지만, 학생인 제 입장에서는 정말 한가한 소리로 들립니다. 차라리 학생들도 글 쓰기 힘들고 채점자도 악필때문에 눈이 아프며, 변호사시험이 또박또박 글씨쓰는 능력을 측정하는 것은 아니니 컴퓨터 시험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를 내십시오.

1111 2018-07-21 00:41:00
이런글을 읽으면 눈을 씻어야해요.

전관 2018-07-20 11:24:15
채점하는거 보면 자신의 철학과 사상 반대되는 의견이되면 감점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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