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백무산 시인의 “주인님이 다녀가셨다”, 도둑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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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백무산 시인의 “주인님이 다녀가셨다”, 도둑놈들
  • 오시영
  • 승인 2018.07.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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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피서철이다. 세상이 시끄러워도 놀 때에는 놀아야 한다. 산으로, 들로, 논으로, 밭으로 나가야 한다. 밖으로 나갈 때 해야 할 일 중 제일 큰일은 도둑맞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이다. 도둑맞으면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기분마저 나빠진다. 경찰이라는 분들이 나중에 도둑을 잡아 줄 때도 있지만, 막상 도둑을 잡아도 도둑맞은 물건까지 되찾아주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도둑이 이미 훔친 재물을 처분해 버린 후에 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둑맞은 피해자도 도둑맞은 물건 찾지도 못 하면서 조사 받으러 오라가라 하는 것이 귀찮아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도둑은 그 맛에 도둑질을 계속하게 된다. 도둑맞은 자가 100% 신고를 안 하니 잡힐 확률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둑의 꼬리는 긴 것이라, 자꾸 자라는 것이라 언제이든 잡히기는 잡히기 마련이다. 하여튼지간에 도둑은 조심해야 한다.

백무산 시인의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에는 “주인님이 다녀가셨다.”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좀 길지만, 전문을 보도록 한다. “도둑이 다녀가셨다 어지러운 흔적을 남겼다/ 가져갈 것 없어 더러운 놈이 화풀이했다/ 처음이 아니다 도둑 생각을 하고 밖에 나가면 종일/ 불안이 나를 구겨댄다 털린 놈이 안절부절이다/ 사실 도둑이 아니라 털린 놈이 감시를 당한다// 이 도시의 절반쯤은 도둑의 물건이다/ 신문의 절반쯤은 도둑에 관한 기사다/ 저 빌딩 절반쯤은 도둑의 장물이다/ 적당한 도둑은 대강 눈감아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좀도둑 정도는 웃고 말 일인데 종일/ 추행을 당한 듯 몸이 불결하다/ 이 불안 속에 세상이 구겨져 들어 있다// 도둑의 서열과 위계와 계급이 나라를 버티는 애국적 힘이다/ 억울한 사람 만들어놓고 법을 팔아먹고/ 감옥을 만들어놓고 자유를 팔아먹고/ 독식해서 모은 것으로 똘레랑스를 팔아먹고/ 병을 만들어 놓고 병원을 팔아먹고/ 위기를 만들어놓고 안보를 팔아먹고/ 착취한 돈으로 자선사업을 팔아먹고/ 파괴해놓고 녹색을 팔아먹고/ 도둑을 만들어놓고 치안을 팔아먹고/ 차별을 만들어놓고 평등을 팔아먹고/ 자신을 팔기 위해 진실을 팔아먹고/ 죄를 만들어놓고 종교를 팔아먹고/ 그래서 도둑을 잡으러 간 자들도 종종/ 도둑님이 되어 돌아오신다/ 좀도둑놈은 여비라도 줘 보내야 할 형편이다/ 감시당하는 자는 도둑이 아니라 털린 자이다// 도둑의 감시를 피해 자신을 은폐하고 암호화하고/ 익명화하고 의심증을 심화하고 자신을 위조하고/ 위조해놓고 자주 원본을 잃고 비밀번호를 잊어버린다/ 도둑만이 자유롭고 건전하다.” (전문, 창비시선 345에 수록, 2012년)

도둑이 다녀간 것을 보고 백무산 시인은 주인님이 다녀가셨다고 큰 절을 올리고 있다. 가난한 시인의 집에 진짜 도둑놈 소리를 듣는 도둑은 가져갈 것이 없어 화풀이라도 하려는 양 집안 천지를 뒤집어 놓고 갔다. 도둑의 자존심을 한껏 펼치고 간 것이다. 당연히 주인은 미안해 해야 한다. 도둑놈이 오셨는데 맨손으로 가게 했으니 말이다. 다 같이 없이 사는 처지에 동병상련이지 않는가 말이다. 하지만 도둑맞을 것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도둑맞은 사람은 집밖을 나서면 또 도둑을 맞을까 안절부절, 불안하다. 도둑을 맞은 자의 뇌리 속에는 또 도둑을 맞을까 봐, 자신이 없을 때 들어 올 도둑에 의해 자신의 외출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우리 모든 착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나 “1984년”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감시당하고 또 감시당하고 살고 있다.

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사장님 소리를 듣는 진짜 도둑들의 모습이 보여서, 그들을 어떡해야 하나 하고 힘들어 한다. 이 도시의 절반쯤이 도둑의 물건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신문이나 티비에 나오는 절반의 이야기는 도둑놈들의 이야기이다. 남의 집 담장을 넘는 진짜 도둑뿐만 아니라 사기질에, 횡령질에, 온갖 갑질에, 비싼 임대료에, 높은 이자에, 고액의 인건비 등등 모두 분수 이상의 도둑질이 횡행하는 이 세상사가 두루두루 보이는 모양이다. 저 높이 세워진 재벌들의 빌딩이, 졸부들의 빌딩이 도둑의 장물로 보이는 시인은 참으로 괴롭기도 하겠다. 그냥 적당히 “저렇게 높은 빌딩이 나에게도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하고 부러워하고 말 일이지, 그 빌딩을 소유한 자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지 못 했을 것이라는 삐딱한 시선에 사로잡혀 저 빌딩 절반쯤을 도둑의 장물로 바라보며 나라님도 잡지 아니하는 그 도둑놈을 어떻게 잡을까 노심초사하니 힘없는 시인으로서는 그것도 참 괴로운 일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시인은 눈 감아 줄 때 절반 정도가 장물이지, 깊이 파고 들면 거의 전부가 장물일 수도 있다고 상상을 하니 저 시인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피서철에 어디 피서 가지도 못하고 더욱 더 열이 받히기 시작한다.

시인은 좀도둑 정도는 웃어 주고 말겠다는데, 정말 좀도둑이라면 용돈 정도 주어 보낼 수도 있다는데, 종일 추행을 당한 듯 몸이 불결하게 느껴지고, 도둑놈들을 사장님이라 부르며 굽신거려야 하고, 도둑의 서열과 위계와 계급에 주눅 들어 도둑맞고서도 오히려 눈치를 보아야 하는 이 강고한 세상이 힘든 모양이다. 이 세상의 도둑들은 그처럼 위계질서를 강고하게 만든 뒤, 그 위계질서 속에 사소한 잘못을 이유로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 법을 팔아먹기고 하고, 감옥을 만들어 자유를 팔아먹기도 한다. 시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보이나 보다. 시인의 눈에 최고 도둑으로 보이는 정치가들도 요즘 제 정신들이 아닌 모양이다. 더위를 먹었는지,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제 갈 길을 모르고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면서 서로가 죽일 놈이라며 편싸움을 하고 있고, 당을 살리겠다고 모여서는 당 깨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으니 그것도 참 사람으로서는 못할 일이다. 자기들 나라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일 년 여 전까지만 해도 자기들 나라여서 자기들 마음대로 모든 것이 되었는데, 어느 날 손바닥을 펴보니 아무 것도 잡히지 않고 쥔 게 없으니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말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친문이니 비문이니 하며 한 달 여 뒤에 치러질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서로 당 대표가 되어야겠다며, 자신이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거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등의 소문 아닌 소문을 흘리며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물밑 거래를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세를 과시하려는 듯 줄을 세우고, 그 줄 몇 번째에 끼이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밀고 밀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서민들은 여기서 도둑질당하고 저기서 도둑질당하며 하루 종일 쥐어뜯기고 있는데,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4050대 조기 은퇴자들은 재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데,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경기도 크게 살아날 것 같지 않으니 큰 일이다. 하지만 가진 자들, 대기업들의 갑질은 세상천지에서 벌어지는 간접교육으로 자제될 만도 하건만 여전히 횡행한다. 사법부는 대한항공 한진해운 일가의 갑질이, 횡령과 배임과 탈세의 범죄사실이 여전히 다툴 만한 사실이라며 아버지에서부터 딸들까지 모두 구속영장 발부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고, 강원랜드를 비롯한 취업부정청탁 혐의를 받고 있는 권성동 전 법사위원장의 구속 역시 다툴만한 사유가 있다며 구속 영장 발부를 기각하였다. 사법부라는 게 묘해서 작은 도둑과 작은 주먹질에는 유독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자전거를 훔친 절도범이나 구멍가게에서 몇 만원 어치의 생필품을 훔친 사소한 절도범은 아주 쉽게도 구속하면서 어찌 하여 재벌 앞에만 서면 법리의 엄격함을 내세워 스스로 칼날을 무디게 하는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술집에서 치고받고 싸우다 조금 상처가 나기라도 하면 또 영락없이 구속하는 등 눈에 보이는 작은 범죄에 대하여는 단죄를 서슴치 않는 사법부는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려는 속성이 있다. 서민들의 범죄에 대하여는 일벌백계를 주장하면서 힘 센 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러저러한 핑계거리를 내세우고 있으니 이러다가 사법부마저 도둑놈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범죄, 커다란 기업과 조직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올가미처럼,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상태에서 사람을 질식시켜 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하면서도 겉으로는 상처 하나 내지 않는 범죄에 대해서는, 워낙 재물이 많아서 그 중 일부를 빼돌려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재물이 있는 유형의 범죄에 대해서는 단죄의 칼날이 무디기만 하다. 백무산 시인의 눈에도 보이는 저 교활한 도둑놈들이 전문가인 사법부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그것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독식한 것으로 톨레랑스를 팔아먹고, 병을 만들어 병원을 팔아먹고, 위기를 만들어 안보를 팔아먹는 자들에 대해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나라는 백무산 시인의 눈에는 도둑놈 세상일 뿐이다. 하기사 사법부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법원이 앞장서서 판사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약한 노조원들을 물 먹이는 판결을 자행하고, 국가 인권 피해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불법적 판결을 자행하였음이 밝혀져 세상이, 아니 법관들마저 백무산 시인의 눈에 도둑놈으로 보이는 자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도둑이 넘쳐나는 사회이기는 하다. 도둑을 처단하려는 법관들이 스스로 도둑이 되어 버린 사회, 그러면서도 주인님처럼 행세했던 세상이 점차 저물어가고 있어 좋은 현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주인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진짜 도둑놈들을 어찌해야 할지 알다 모를 일이다.

덥다. 더울 때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시원한 수박이라도 한 통 팍 쪼개서 서로 나누어 먹으며 잠시 더위를 잊으면 된다. 그러면서 차별을 만들어 놓고 평등을 팔아먹는 도둑놈들을, 자신을 팔기 위해 진실을 팔아먹고, 죄를 만들어 놓고 종교를 팔아먹는 도둑놈들을 함께 씹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듯도 싶다. 하지만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은, 진정 백무산 시인이 가슴아파하는 “도둑 잡으러 간 자들도 종종 도둑님이 되어 돌아오신다”라고 질타한 그 마지막 한 줄의 경구의 의미이다. 그냥 착하게 살자는 것이다. 백무산 시인은 ‘주인님이 다녀가셨다’라는 반의어를 통해 도둑이 감시당해야 마땅함에도 오히려 털린 자들이 감시를 당하고 있는 이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도둑의 감시를 피해 자신을 은폐하고 암호화하고 익명화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오히려 털린 자마저 자존감과 자신감을 상실한 채 자신을 감추다 보니 원본을 잃어버리고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유체이탈현상의 심화를 가슴 아파 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도둑만이 자유롭고 건전하다고 강변한다.

월드컵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4년마다 치러지는 월드컵은 새로운 축구스타를 배출해 낸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던 메시와 호날두의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이 각각 16강에서 탈락하고, 약체로 보였던 나라들의 젊은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새로운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 하였다. 월드컵을 지켜보며, 우리 정치 집단이 저렇게 멋지고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세대교체를 이룰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패자는 미련 없이 무대를 떠나야 한다. 패했음을 자인하며 그라운드를 스스로 떠나면 사람들은 그의 퇴장에 그나마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서로 물러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면 그 초라한 모습에 열광했던 관중조차 등을 돌리게 된다. 의원직을 내던지며 책임을 통감하는 자가 한 명도 없는 자유한국당은 “정신이 죽어 있는 정당”이다. 정신이 죽어 있으니, 거기에서 어떤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수 있겠는가? 축구공은 둥글지만, 정치판은 바둑판 모서리처럼 각이 져 패배해 쓰러지면 그 모서리판으로 내려쳐 죽인다 생각해서 그러는 것일까?

같은 시집에 실린 “난독과 오독”의 일부로 글을 맺는다. “(전략).../ 아무래도 혼자 걸어온 길은 난독과 오독의 길이었다. 난독은 습관이 되고 오독은 즐길 만했다 생물학을 읽으면서 정치적 문제를 고민하고 사회과학과 문학을 섞어서 읽고 물리학을 읽으면서 종교적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아무런 문제 생길 게 없었으나 목적 없는 독서라서 건성으로 갈 일도 없었으나 나는 모든 방향에서 갈증을 느꼈지만 어느 순간 열정이 꺾이고 말았다 치명적인 오독 때문이었다// 나의 생을 잘못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낯선 곳에서 낯선 곳으로 던져졌고 책은 나를 거듭 해체하여 텅 비게 하였으나 그런 나의 부재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존재의 마지막 텍스트인 ‘부재’를”

인생의 난독과 오독 사이에서, 주인님인 도둑놈이 다녀간 세상에서, 그래도 도둑 아닌 주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부재의 실존”을 찾아 피서를 떠나자. 이 더운 여름, 한 권의 시집에 빠져 땀 흘려 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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