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최저임금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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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최저임금의 정치
  • 신희섭
  • 승인 2018.07.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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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너무나 유명한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 이야기가 있다. 잘 알다시피 한 어머니가 소금장수를 하는 아들과 우산장수를 하는 아들을 두었다. 비가 오면 소금장수 아들이 걱정이고 해가 강하면 우산장수 아들이 적정인 어머니. 일상이 걱정이다. 이 어머니가 생각을 고쳐먹으면 상황이 달라질까?

“비가 오면 소금장수 아들이 하루 쉬어 좋고 해가 강하면 우산장수 아들이 하루 쉴 수 있어 좋네.” 큰 염전을 가진 소금장수와 이자수입으로 생활해도 되는 우산장수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그날 노동을 해야 먹고 사는 입장에서 그것이 쉬울까!

위의 우화는 비가 오느냐 안오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그 비는 아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늘이 결정해준다. 그러니 하늘만 바라보아야 하는 어머니 속이 오죽하겠는가!

다른 우화를 생각해 보자. 성별을 바꿔서. 두 딸이 있다. 첫째 딸은 컴퓨터프로그램을 만들고 둘째 딸은 해킹을 막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첫째가 만든 프로그램이 많이 팔려야 둘째가 만든 해킹방지 프로그램도 많이 팔린다. 거꾸로 둘째가 만든 해킹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고 많이 팔려야 첫째의 프로그램도 많이 팔린다. 이 우화는 우산장수와 소금장수와 다른 관계이다. 그렇다. 이 사례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의 관계를 보여준다. 한 측이 다른 한 측을 지지하거나 지원한다.

세 번째 사례도 있다. 굴뚝산업을 하는 한 명의 자식과 대기오염과 관련된 환경운동을 하는 다른 한명의 자식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첫째는 공장을 열심히 돌린다. 그런데 이 공장은 매연저감장치를 붙여도 매연이 계속해서 나온다. 그래서 환경운동을 하는 둘째를 괴롭힌다. 둘째가 열심히 일해서 명성을 높이려면 첫째의 공장 운영에 대해 주의와 경고를 주어야 한다. 이 사례의 경우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제로섬(zero-sum)의 사례이다.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부담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사례는 첫 번째 사례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첫 번째 사례에서 우산장수는 소금장수에 직접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에 따라 한 사람은 손해를 보고 한 사람은 이익을 보는 것이다. 즉 비라는 운이 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사례는 한 사람의 의도적인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한다.

이 3가지 사례를 가지고 요즘 한국을 한 번 들여다보자.

최저임금논쟁이 뜨겁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만들자는 노동계와 최저임금으로 인해 생계가 어렵다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운영자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양극화라는 시대의 문제 앞에서 최저임금인상을 통해 소득 재분배를 이루어야 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서 설득력이 있다. 한 편으로 낮은 수익률에서 최저임금마저 오르면 차라리 최저임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이 좋겠다는 편의점 주인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면 편의점주의 얼마 안 되는 소득이 더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편의점 주인은 아르바이트생의 고용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 대입하면 세 번째 사례에 해당한다. 제로섬의 관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될 것을 정부가 모르고 정책을 만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정부 입장에서는 최저 임금을 올려 소득을 높임으로서 경제를 선순환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정책을 만들었다. 양극화해결과 분배적 정의라는 명분에도 맞는다. 게다가 일자리 안정자금을 제공하면 사업주에 대한 부담도 줄일 수 있다. 2018년도에만 3조에 해당하는 자금이 지출되었다. 그러면 사업주의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고용을 줄이지 않고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3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정부의 계획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중심으로 심각한 최저임금인상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최저임금을 높이면 기업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750만이 넘는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실질적으로 큰 부담이다. 정부가 보전을 해준다고 해도 한 번 임금을 올리면 다시 낮출 수 없다. 또한 정부의 정책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정부 지원만을 믿을 수도 없다.

생존권. 그렇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는 생존권이 걸렸다. 물론 최저임금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높아진 주택가격 이에 따른 건물가격 상승과 임대료 상승의 압박, 경제성장율 둔화와 장기적인 경기 침체 상황, 막대한 대출과 높아지는 이자율도 이들에게는 폐업의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더해지니 고통이 가중되는 것이다.

최근 문재인대통령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달성이라는 공약을 못 지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저임금 정책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정부도 근로장려금으로 정책을 변화했다. 근로장려금(EITC)이란 근로를 하려는 계층 중 소득이 낮은 층에게 직접적으로 현금을 제공하는 방안이다. 현재도 시행되고 있지만 이 제도를 내년에는 더욱 확대해 334만 가구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근로를 하는 노동자 뿐 아니라 자영업자도 포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최저임금상승에 따른 노동자와 자영업자간 갈등이라는 약자간의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정부 정책 변경은 노동자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약속을 지키라는 노조측과 최저임금제의 탄력적 운영을 주장하는 사용자 측의 대립이 강화되고 있다.

이 문제의 정치적 본질은 무엇인가? 최저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 측이나 최저임금의 탄력적 운영을 주장하는 자영업자들 상당수가 문대통령에 대한 지지자들이다. 최저임금인상안은 노동자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지지를 많이 받는 방안이다. 정부가 생각한 이 정책효과의 대척점이 다른 것이 문제다. 엄청난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은 그 대척점의 일부이다. 오히려 고용이 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정책의 대척점의 중심에 있다. 그러다보니 극단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을’과 ‘을’의 전쟁이 된 것이다. 정부는 이 정도의 강도로 대립할 것을 몰랐을까? 정부가 대척점을 몰랐다기보다는 이 정도 강도로 대립할 줄 몰랐던 것 같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 즉 대표를 통한 민주주의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를 대표하는 이들과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인가? 그렇지 않다. 같은 지도자와 같은 정당이 이들 모두를 대표한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제로섬의 영역. 이 복잡한 관계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 왜 준비는 부족했을까? 이 부분은 아마추어리즘의 순수성과 높은 지지율이 답인 듯하다.

높은 지지율 속에서 분배적 정의를 달성하겠다는 순수함. 집권 초반기에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아야겠다는 사명감.

그렇다. 대의민주주의는 그렇게 아마추어 지도자의 순수함, 대중의 압박, 시점과 시한이 버무려지는 체제이다. 그렇게 해서 민주주의의 시간은 갈등의 통로를 타고 또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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