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델피의 아폴로와 아데나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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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델피의 아폴로와 아데나 신전
  • 호문혁
  • 승인 2018.07.1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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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前 사법정책연구원장
前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
제1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2013년 9월에 IAPL(International Association of Procedural Law) 연차대회가 열리는 아테네로 향했다. 다음 해 10월에 서울에서 IAPL 연차대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어서 서울 대회의 프로그램을 보고하고 참가 독려 겸 홍보를 위하여 아테네 학회에 참석하기로 한 것이다. 본래 2001년 가을에도 그리스에서 IAPL 학술대회가 열렸다. 그때 프로그램이 세미나와 관광을 하루씩 번갈아 하는 환상적인(?) 것이어서 참가신청을 했다. 내가 보스턴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였는데 학회 두어 주 전에 9.11. 사태가 터져서 참가를 포기했었다. 그래서 2013년 아테네 학회는 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아테네 공항에 내려서 내 애기(愛器) FM2를 메고, 먼저 아폴로신전으로 유명한 델피로 향했다. 그 동네에 갔더니 팻말에 영문 표기가 Delphi, Delphoi, Delpi, Delpoi 등 다양했다. 어딘가에서 찾아보니 거기서는 ‘oi’라 쓰고 ‘i’라고 읽는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든 발음은 ‘델피’로 하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태양의 신 아폴로. 날마다 황금마차를 타고 하늘에서 이 세상을 한 바퀴씩 돈다고 했던가. 태양의 신이니 그래야겠지. 신전 아래 입구에 다가가 쳐다보니 우람한 기둥들이 깎아지른 절벽인 웅장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폴로의 마차바퀴 소리가 저 산 위 하늘에서 우르릉 우르릉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사진1). 산 아래 멀리에는 바다가 조금 모습을 드러냈다. 코린토스만이라고 했다. 이 분위기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듯했다.
 

▲ 사진 1

델피의 아폴로 신전은 신탁으로 유명하다. 고3 때 세계사 선생님이 세계 역사의 축소판인 그리스 역사를 잘 공부하면 세계사를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어느 날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소크라테스다”라는 신탁이 나왔다. 그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참 이상하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뿐인데 내가 가장 많이 안다니...’라고 생각하고는 아테네의 여러 지식인과 유명 인사들을 만나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었다. 그때에야 소크라테스는 비로소 신탁을 수긍했다는 내용이다. 나중에 보니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신전에 오르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아까와는 다른 각도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여섯 개의 돌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 신전의 대부분은 허물어지고 이 기둥들만 서 있지만 그 자체로 태양의 신 아폴로의 위엄에 걸맞는 듯했다(사진2). 올라가다 보니 도시국가 아테네의 보물창고로 썼다는 건물도 있는데, 당시 아테네의 힘을 가늠할 수 있었다(사진3).
 

▲ 사진 2
▲ 사진 3

델피의 신탁은 전래 신화를 바탕으로 쓴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에도 등장한다. 아폴로 신전에서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아들이 장차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비, 즉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이 나왔다. 이에 놀란 라이오스는 양치기더러 갓 태어난 아들을 산에 내다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 양치기는 아이를 코린토스의 왕에게 갖다 주었고, 코린토스 왕은 그 아이를 입양하여 키웠다. 자기의 출생을 모르는 오이디푸스가 장성한 뒤에 자기에게 걸린 신탁을 듣고는 아버지라고 알고 있는 코린토스 왕을 죽이게 될까봐 코린토스를 떠나 테베를 향해 갔다. 그런데 길에서 우연히 만난 라이오스를 강도라고 생각한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이고 만다. 테베에 다다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를 재난에서 구원한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되고, 라이오스의 미망인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하여 자녀 넷을 두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테베에 전염병이 돌자 델피의 신탁에 따라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찾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살인자가 남이 아닌 오이디푸스라는 것이 밝혀지자 이오카스테는 목매어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하고 만다.

비운의 오이디푸스를 생각하며 언덕을 올라가 신전을 내려다 보았다. 위에서 내려다 본 광경도 역시 아폴로의 신전다웠다. 신전과 그 아래 멀리 보이는 김나지움(학교) 터의 모습과(사진4) 신전 위에 있는 야외극장에서 내려다본 델피 신전 전체 모습은 장관이었다(사진5). 더 위에는 후대에 로마인들이 지었다는 경기장이 있지만 로마인들이 자기네들 취미를 살리느라고 델피를 훼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살짝 들었다.
 

▲ 사진 4
▲ 사진 5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480년에 델피 신전에서 아테네인들이 도시를 떠나 나무성벽으로 방어를 하라는 신탁을 받았다.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나무성벽을 전함이라고 알아차리고 해군을 키워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살라미스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델피인가? 어느 날, 제우스가 ‘세계의 중심’을 찾으라고 명하여 독수리 두 마리를 각기 동쪽과 서쪽으로 날려 보냈다. 세계의 중심을 찾아 떠난 독수리 두 마리가 만난 곳이 바로 델피였다. 세상의 중심을 표기하기 위해 옴팔로스(세계의 배꼽)라는 돌을 세웠다. 원본은 신전 부근의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데(사진6), 신화와 현실이 결합되어 있는 기이한 물건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와 독수리의 신화를 바탕으로 델피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 사진 6

아폴로신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 김나지움 터에서 가까운 곳에 지혜의 여신 아데나의 신전이 있다(사진7). 해가 저물어 대낮의 열기가 식은 뒤에 비로소 날개를 펴는 부엉이 눈을 가졌다는, 그래서 요새 유행어로 ‘쿨’한 지성을 상징하는 아데나 여신. 요새 같이 어지러운 세상에 더욱 그리워지는 여신을 위한 신전의 돌무더기 사이를 거니니 괜히 더 경건해지는 것 같았다. 본래 그리스 사람들은 아폴로신전을 참배하기 전에 먼저 아데나신전에 들러 참배하고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아데나신전에서 바로 아폴로신전이 올려다 보인다(사진8). 태양의 신 아폴로와 지혜의 여신 아데나가 서로 눈짓으로 교감을 하며― 때로는 늘 큰소리만 치는 제우스의 눈도 속여 가며^^ ―아테네를 번영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 사진 7
▲ 사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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