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11)-경찰 단계의 회복적 사법, 왜 어려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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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11)-경찰 단계의 회복적 사법, 왜 어려운가요?
  • 임수희
  • 승인 2018.07.19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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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사건을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회부하는 역할’
‘피해자, 가해자와 다른 참가자들에게 회복적 사법 절차를 설명하는 역할’
‘지역사회에 기반한 회복적 사법 절차에 참여’
‘회복적 사법 절차의 진행’
‘회복적 사법의 세션과 모임들을 주재’
‘일선의 갈등과 분쟁의 해결에 회복적 접근을 이용’
‘회복적인 합의의 이행을 모니터링하고 위반을 보고하는 역할’

자, 이러한 역할은 누가 수행할 수 있는 것일까요?

최일선에서 회복적 사법 절차에 사건을 회부할 수 있고, 피해자, 가해자, 그 밖의 참여자들에게 회복적 사법 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안내할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에 뿌리 두고 있는 회복적 사법 절차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직접 참여할 수도 있고 회복적 사법 절차를 진행 또는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직접 회복적 사법의 각 세션과 모임을 주재하고 진행할 수 있습니다. 현장의 갈등과 분쟁을 최일선에서 회복적 어프로치를 이용해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회복적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 그 이행 여부나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합의 위반이나 불이행시에 이를 보고하기도 합니다.

과연 누가, 어떤 기관이, 어떤 사람들이 이런 대단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는 유엔에서 발간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관한 핸드북(Handbook on Restorative Justice Programmes)에 회복적 절차의 참여자들 중 ‘경찰’부분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경찰이 회복적 프로그램에 개입함에 있어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들인데요. 지구상의 여러 나라와 사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회복적 사법 모델의 유형에 따라서 경찰의 역할은 위와 같이 다양하다고 합니다.

경찰이 단지 범죄 수사만이 아니라 회복적 사법의 과정에 관여하고 저렇게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니, 그리고 하고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요.

그럼, 우리나라의 경찰은 회복적 사법 절차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2.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경찰은 현재 회복적 사법 절차를 취한다거나 그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는 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경찰 단계에서 회복적 사법 절차를 취할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찰에게 회복적 사법적인 접근이나 해결을 도모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과 회복적 사법 아홉 번째와 열 번째 이야기에서 함께 나눈 경찰에서의 회복적 사법에 관한 노력, 그리고 제가 소개해 드린 강원지방경찰청의 <너와 함께(위드 유, With You)>와 같은 프로그램은 그럼 뭐란 말인가요.

여러분께 이런 의문이 드실 겁니다.

네, 위드 유 같은 프로그램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이 맞고, 경찰이 개입적으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설계하여 진행자(facilitator) 역할, 기타 회복적 조치에 관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한 지방경찰청 단위에서 마련한 자율적 프로그램의 하나였습니다. 그나마도 현재는 그러한 이름의 단일 프로그램으로 공식적으로 수행되고 있지 아니합니다.

단지 회복적 사법에 식견과 열정이 있는 경찰관들이 스스로 회복적 서클 진행자(facilitator) 교육을 받고 각자 담당하고 있는 사건들, 특히 학교전담경찰관(SPO, School Police Officer) 등 회복적 접근이 필요한 사건들에서 이를 설명하고 관여자들의 자발적 동의 하에 회복적 서클을 진행하여 사건의 원인된 갈등이나 분쟁 자체의 원만한 해결을 도모하고자 노력한 것뿐이지요. 그러한 경찰관들의 개별적인 노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이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나 시도는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제가 소개해 드렸던 위드 유 외에도 2007년도와 2012년도에 서울지방경찰청과 광주지방경찰청에서 실시했던 ‘가족회합 프로그램(Family Group Conferencing)’이라는 일종의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모두 일회적 시범실시로 끝나버리고 제도화로는 연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3.
‘제도화’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한 사건에서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건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유사한 사건에서는 유사하게 진행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정 기간에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꾸준히 안정적으로 실시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과 규정으로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고 그러한 절차가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인력이 배치되고 물적 뒷받침도 되어야 하며 이 모든 것들을 위한 예산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특정 담당자만 특정 시기에 특정한 방식으로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사건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그것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경찰 단계 회복적 사법의 ‘제도화’ 움직임 또는 시도가 없거나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찰의 노력이 부족한 걸까요?
국민들의 인식이 부족한 걸까요?
입법과 예산을 담당하는 국회의 의지가 부족한 걸까요?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지요.

현재로서는 일선 경찰이 어떤 사건이 나서 신고 등 입건이 되었을 때 회복적 사법적인 접근을 하여 다행히 그 원인된 분쟁과 갈등이 원만히 해소되었다고 해도, 그와 상관없이 후속 형사사법절차는 다른 사건들과 동일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따라서 당사자들도 계속하여 형사사법절차에 매여 있어야 합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또는 경찰관 개인이 자율적으로 현행법의 틀 내에서 어떠한 회복적 어프로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 형사사법법제상 경찰은 즉결심판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검찰에 송치(소년법상 촉법소년과 우범소년은 법원에 송치)해야 하는 전건송치주의(全件送致主義)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건송치주의라는 제도적 한계 내에서 경찰이 회복적 사법적 접근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권한이나 재량이 없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경찰 단계 회복적 사법의 도입에 관해 일회적 시범실시 또는 개별적 경찰관들의 노력을 넘어서서 ‘제도화’가 필요하고, 그에 있어서 현재 우리 형사사법절차의 경찰, 검찰, 법원 순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회복적 사법의 관점에서 재검토하면서 경찰 단계에서도 이에 관해 일정한 권한과 재량이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건 초기 경찰 단계에서, 적시에 필요한 회복적 사법적인 절차를 통하여 피해자에게 완전한 피해 회복과 가해자의 완전한 자성 및 책임 인수, 그리고 쌍방 분쟁의 원만한 해결이 이루어져 피해자나 가해자, 공동체 모두의 측면에서 형사절차의 필요성이 극감된 일정한 유형이나 종류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결과를 반영하는 어떠한 대안적 절차를 마련할 수 있을지 등을 검토하여 우리 형사사법시스템의 재설계를 고민해야 하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4.
위에서 언급한 유엔 발간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관한 핸드북에서는, 경찰관이 회복적 절차를 수행하면서 가해자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 가해자, 그 밖의 관여자들로부터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복적 사법은 전반적인 지역사회 경찰 정책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일 수 있고 지역사회와 경찰의 관계를 향상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더 이상은 경찰 단계 회복적 사법의 제도화를 미루어서는 안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는 우리 형사사법시스템의 전 과정을 짚어 보면서 제도의 재설계를 고민할 문제인데요. 이어서 검찰 단계에서의 회복적 사법에 관해서도 앞으로 이야기 나누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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