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경찰 수험생들을 위한 바다이야기 - 배에서 생기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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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 수험생들을 위한 바다이야기 - 배에서 생기는 일들
  • 김용호
  • 승인 2018.07.17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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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캠퍼스 해양경찰 종합학원 
김용호 항해학 강사
 

◆ Maiden Voyage1), 성취의 시작

<Ocean Beauty>는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울산의 모 조선소의 선거(船渠, Dock)2)에 놓여있었다. 수많은 줄과 전선 등이 여기저기 걸쳐 있었다. 용접 불꽃도 번쩍거리고 있었지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치장과 미장은 거의 끝났고, 출거(出渠, Undocking)를 앞두고 마무리 작업 중인 거였다. 시험 운전은 벌써 끝난 상태였다. 내가 학교로부터 승선실습 배당을 받아 승선하기 전,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출항이 지연되었던 모양이었다. 선사로부터 출항을 독촉하고 있어서 관리자들은 작업을 서둘고 있었다.

선체 외판의 도장이 끝난 뒤, 1등항해사를 따라 선거의 바닥에 내려갔다. 거대한 황동의 스크루 프로펠러에 놀라고, 그와 마주한 선미 외판에 새로 부착된 은빛의 아연판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선저변(Bottom plug)3)은 완전수밀 방식으로 적절하게 닫히고, 밀봉이 되었다. 마침내 선거에 해수가 채워졌다. 마침내 용골(Keel)4)이 부상하고, 육지와의 모든 연결이 끊어졌다. Ocean Beauty는 선거를 빠져나와 Dock master5) 등을 하선시키고 자신의 처녀항해를 시작했다.

울산항 경계에서 벗어나자 선장은 북동 방향으로 선수를 돌렸다. 목적항은 미국 오레곤주의 포트랜드였다. 대양을 건너는 데는 대권항법6)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조금이라도 항주거리를 줄이기 위해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의 Tsugaru Kaikyo(쓰가루 해협)을 통과하고, 그 이후에는 대권을 따라 가는 것이다.

처녀항해인 만큼, 조선소 측의 감독 엔지지어가 동승한 상태로 항해가 이뤄졌다. 운항 중의 상태나 하자 등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수선, 조정, 개조 등의 작업이 따를 터였다. 그러나 항해는 순조로웠다.

갑판 견습사관(실습사관, Deck Cadet Officer)으로서 쓰가루 해협의 양편의 푸른 숲을 기억할 뿐 달리 항해를 즐긴 기억이 없는데, 그 이유는 그 해협을 통과하고 태평양으로 접어든 뒤 쓴물을 게워낼 때까지 약 일주일 정도 멀미를 앓아야 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곧 괜찮아질 거라고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통과의례라고 하는 것이었다.

태평양에서 대권을 따라 항해하다 보면 필히 만나는 북태평양의 알류산 열도 부근의 바다는 거칠었고, Ocean Beauty를 괴롭혔고, 나를 괴롭혔다. 게우고 게우다 쓴물이 속에서 올라왔을 때는 똥물이라고 여겼다. 훗날 안 것이지만, 검고 쓴물은 담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고 배멀미(Seasick)에 대한 호의는 생기지 않았다.

현장 적응을 위해 여러 업무를 경험하도록 계획되는 실습현장이지만, 신조선이어서 갑판상의 일과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눈으로, 또 몸으로 익혀야 할 것들은 쌓여 있었고, 흥미로웠다. 나의 실습교육을 담당하는 1등항해사는 우선 항해선교(Navigation Bridge, 보통 짧게 Bridge)7)에서 3등항해사와 함께 당직을 서며, 필요한 업무처리 등과 함께, 요령을 익히도록 주문했다. 대개 3항사란 직책은 선장이 <입과 머리>로 하는 일을 <몸과 머리>로 하는 업무이다. 고달프지만, 이때가 아니면 선장의 업무를 배울 수 없다. 견습항해사에게 유능이란 없다. 열심히 배우는 것뿐이었다. 교재라는 교재는 모두 갖고 승선한 터였다. 신조선이었으므로, 항해계기 등에서는 교과서의 내용이 현실을 따르지 못하는 게 많았다.

목적항이었던 오레곤주의 포트랜드가 아닌 아스토리아 항에 입항했을 때는 처녀입항이었으므로, 선장은 축하의 선상파티를 열었다. 항만관계자와 대리점원 등이 초대되었다. 내가 한 일은 정장 교복을 입고 그들을 파티장소로 결정된 사관식당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초대된 이들에게는 출항할 때 준비했던 선물이 주어졌고, 대리점에는 Ocean Beauty의 미니어처가 선물되었다. <아쉽게도 선원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화물은 대두(Soybean)였다. Ocean Beauty는 총톤 이만 톤이 넘는 크기를 가진 배였는데, 오로지 적재에 소요된 시간은 11 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갑판의 현측에서 수면을 내려다보면 선체가 물에 쑥쑥 잠기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2박3일을 머물렀다. 입항일에는 작업을 하지 않고, 하루 8시간 작업이었다. 과연, 잘 사는 나라는 달랐다.

강을 빠져나와 부산항을 향해 출항하자, 뭍 냄새에 멀쩡했던 속이 다시 뒤집어졌다. 곧 익숙해진다는 말이 며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적어도 그때는 똥물로 알았던 그 검고 쓴물이 올라오지 않도록 먹고 게우기로 했다. 혹시 선체의 운동 때문이라면, 몸을 물에 띄워놓으면 해소되지 않을까 싶었다. 욕조에 해수를 가득 채우고 몸을 담가 보기도 했다. 잠깐 괜찮은 듯싶어도 욕조의 턱에 손을 짚으면 멀미는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태평양을 다시 건너오던 어느 날, 선내의 TV수상기에 잡음이 심한 일본 TV 방송이 잡힐락 말락할 때쯤엔 벌써 먹고 게울 걱정은 하지 않을 때였다.

Ocean Beauty는 정부의 <계획조선>8)으로 건조된 선박 가운데 하나였다. 화물을 수배하기 위해 크게 바쁠 이유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두부파동>이 있던 때였고, 콩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유전자변형 콩에 의한 두부파동이 아니라, 석회두부파동에 더해 두부를 만들 콩이 흉작이었던 시기였던 모양이다. 덕분에 Astoria에서 Soybean을 싣고 부산항에 입항했을 때 많은 환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간지에 본선의 입항에 관한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쓴물은 쓴물로 반추되지 않는다. 돌아보면, 거기에는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보람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어떤 황천 하에서도 멀미를 하지 않고, 견습사관도 아니다. 그러나 해냈다는 우쭐함은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내 수고가 누군가의 즐거움이 되는 경험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해양경찰도 그런 게 아닐까? 입항은 정해져 있어도, 출항은 정해져 있지 않다. 출근과 퇴근 사이가 아니다. 출항과 입항 사이에는 절차의 완료와 함께 임무의 완수가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수동적 보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에 따른 보람이 있다. 긴 서사시의 한 장(章)을 넘기는 느낌처럼 내일은 그야말로 또 다른 날이다. 그들은 어디론가 어제와 다른 곳으로 출항하지만, 반드시 오늘 출항한 곳으로 돌아온다. 성취감과 함께.
 

◆ 즉물적인 사고, 이상과 현실 사이

인간이 여타 동물보다 나은 것은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에 더해 이상을 아는 덕분이라고 본다. 살지만,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생존과는 무관한 것에 몰두하기도 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상을 가진 게 아니라,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이에게만 허여된 사치가 아닐까 싶다.

3등항해사로 근무할 때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선미 갑판으로 나갔다. 숲으로 둘러싸인 정박지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열대의 저녁 바람은 의외로 신선했다.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가운데 먼저 식사를 끝낸 선원들이 하루 일과 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갑판원 A씨가 있었다. 그는 그 선박에 오르기 전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나보다 10여년 연장자인 그는 여느 선원과 달리 온화하면서도 지적인 맛을 내는 눈매를 가진 인물이었다. 평소 <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배에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서 좋아하고 있었다.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는 건 알아요? <갈매기의 꿈>이란 책에 나오는 말인데."

시작된 화제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가 물었다. 아마도 그 책을 읽었냐는 힐문이었을 터다. 자신의 논리를 세우기 위해 그가 내게 물었다는 건 기억한다.

그가 선생님이란 직업을 팽개치고 배를 선택한 까닭은 모른다. 어떻게 바다가 그를 유혹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선생님이란 자리에 대해 전혀 미련이 없었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의 가슴에는 낭만이 살아 있었다. 그는 바다가 품어주는 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가 가진 이상과 낭만에 초를 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가벼운 토론 비슷한 상태였으므로 내가 반격을 해야 했다. 그의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높이 나는 것만으로 멀리 본다고 할 수는 없지요. 시력이 좋아야지요." 

그러자 그가 내게 쏘아붙였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즉물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나는 머쓱해지긴 했다. 두 개의 명제,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있고, 그 갈매기의 눈이 좋아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있다. 그 두 명제를 연결하면, <눈이 좋은 갈매기가 높이 날 때, 비로소 멀리 본다>는 게 된다.

그대가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대가 그러기를 바란다. 누구나 선택하는 길이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상이 너무 높아서는 현실을 외면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을 살아내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로 하자. 삶은 사소한 것들의 집합이다. 당장을 즐기는 삶일 때, 꿈, 그리고 미래가 보이게 되지 않을까.
 

◆ Landfall, 부단한 설렘

선박 생활에 필요한 지식은 학교에서 배웠고, 승선 요령에 관한 모든 것은 견습사관으로 승선했던 Ocean Beauty에서 배우지 않았나 싶다.

지금과 같은 통신 환경이 아니었던 때였으므로 이 지구상에 우리-Ocean Beauty와 그 안의 선원들-만 살아남고 다른 모든 지구상의 것들이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는 유치한 생각을 하게 했던 장기간의 대양 항해를 배웠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뱃속에는 쓴물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 아닌 만남에 설렘을 가르쳐준 것도 Ocean Beauty였는데, 바로 육지초인(Landfall)9)이다.

항해가 계속됨에 따라 풍경은 점점 사소해졌다. 바다와 태양과 밤과 달과 별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 날 밤, 달은 구름에 가렸고, 어둠은 그래서 칠흑 같았다. 수평선과 하늘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불빛 차단용의 무거운 해도실 커튼의 깃 사이로 새어나온 빛이 견시(Lookout)10)를 방해했다. 웅크린 채 전방 견시를 하는 나 자신의 검은 실루엣이 Bridge 전면 유리창에 새겨졌다. 그때 뭔가 수평선에 보인듯했다. 별이 뜨나 보다 했다. 망원경으로 바라본 바다는 여전히 검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언제 보일까요?” 브릿지의 어둠 저쪽에 책임 당직사관인 3등항해사에게 물었고, 그는, “곧 보일 거야.”라고 어둠속에서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찾으며 대답했다.

“레이더를 틀어볼까요?”

“아냐.”

사실, 20시 당직을 올라오면서부터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었다. GPS 등의 통신이 상용화되지 않던 시기였으므로 육분의(Sextant)11)에 의한 천측에 의지해 항해 중이었다. 최근 위치는 지난 정오에 구한 위치(Noon Position)12)뿐이었다. 앞선 1등항해사의 당직(16시~20시) 시간에 측정이 가능한 Star Sighting13)은 없었다. 수평선을 볼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플로팅시트(Plotting Sheet)14)에는 정오위치와 20시의 DR 위치(Dead reckoning Position)15)만 표시되어 있었다. 어쨌든 정오위치로 볼 때, 3등항해사의 당직 시간 안에 수평선 저쪽에 무언가가 보여야 했다. 태평양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며 학교에서 배운 대로 수많은 태양을 이용한 위치선16)을 구했고, 가끔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밤하늘 아래의 수평선상에서 Star Sighting도 연습을 했지만 위치 또는 위치선이 정확한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있었다.

요즘의 항해는 통신 및 위치 결정용 장비의 발전으로 그 결과가 보장된 모험과 다를 바 없다. 한 순간도 같은 모양이 없는 바다로 가는 것이 모험은 맞지만, 그 결과를 거의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어떤 항로에 어떤 모험을 하던 귀항에는 또 다른 설렘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별이 뜨는가 싶었던 수평선 너머의 불빛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기상상태에 따라 빛은 표시된 도달거리 이상에서 관측되기도 한다. 반시간 정도 경과 후, 광망은 거의 지정된 명멸 주기를 가진 등화로 보이기 시작했다. 육지초인이다. 내가 한 선박의 구성원으로서 가장 설렜던 순간이었다. 생애 처음의 육지초인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와 같은 감동은 늙지 않는다. 당시에는 바다와 하늘과 태양과 별들에 갇혀 있다가 가까스로 현실로 탈출한 탐험자의 느낌이었다.

지구 위의 한 점을 <내>가 찾아가는 것이 항해이다. 주어진 길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에는 Landfall이 주는 <성취>라는 게 항상 따른다. 대개의 탐험자가 느끼는 희열이다. 그대가 원하면 설렘의 일부를 나눌 수 있다.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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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처녀항해. 선박이 건조되고 최초로 그 건조 목적에 따른 운항에 종사하는 항해
2)선박의 수리 및 신조선의 건조를 목적으로 건설한 설비
3)선체의 여러 잔류액체 등의 배출을 목적으로 탱크의 바닥에 구명을 뚫고 설치한 나사 형태의 마개
4)선체의 선수에서 선미까지 전통하는 중심재로, 이 용골을 기준하여 직각으로 늑골을 설치한다
5)입출거 선박의 선거에의 진출입을 담당하는 사람
6)동그란 구체인 지구상에서 두 지점의 최단거리는 지구중심을 지나며 지표면과 만나는 점의 집합인 대권 상에서 잰 거리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거리는 이 대권 거리이며, 그 대권 위를 항해하는 항법이다
7)항해를 위해 필요한 각종 장비와 도구가 완비된 구역으로 선박을 지휘할 수 있는 두뇌이다
8)1970년 대 오일쇼크 이후 국적선 적취율 제고와 해운불황 타개를 위해 세워진 국가적 조선공업 육성계획을 말한다
9)대양 항해에서 육안으로 접근할 때 목적항의 육지를 최초로 인지하는 것, 또는 그 육지
10)항해 중, 안전 및 효율적 선박 운항을 위해 해상 및 선박을 관찰, 점검하는 모든 행위
11)태양, 별 등 천체의 고도를 측정하는 항해용 계기(計器)
12)항해 중, 매일 정오에 작성하는 항해보고서. 운항 상 중요한 자료로 이용
13)대양항해 중, 항성 등을 측정해서 선박의 위치를 구하는 작업
14)대양항해 중, 천측 등에 의한 위치선을 작도할 수 있도록 구성된 시트
15)선박의 침로와 시간의 경과에 따른 추측 항정만으로 구한 위치
16)선박이 그 자취 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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