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남북관계의 종착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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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남북관계의 종착점은 무엇인가?
  • 신희섭
  • 승인 2018.07.13 10: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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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8년 노벨평화상은 경쟁이 치열할 듯하다. 문재인대통령, 트럼프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막강한 후보자들이 있다. 만약 특정인물과 단체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면 ‘옥류관냉면’도 노벨평화상의 후보정도는 되지 않을까?

옥류관 냉면이 화제다. 압도적인 크기부터 그렇다. 평양 옥류관은 한번에 2,000여명이 식사를 할 수 있고 하루 평균 1만 2천 그릇의 냉면을 판매한다. 남한식 평양냉면과는 다른 면 색깔이나 먹는 방식도 이야기꺼리이다. ‘옥류관 서울 1호점’이라는 방송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옥류관의 인기는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폭발했다. 정상회담의 이벤트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북한은 옥류관의 냉면기계와 만드는 이들을 불렀다. 참가자들이 흡입하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옥류관 냉면은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3월 ‘봄이 온다’라는 특별공연에서 제공된 옥류관 냉면은 ‘평화의 전령’이었다. 4월에 ‘평화의 상징’이 된 옥류관 냉면은 7월의 남북 농구대회의 환영만찬에 다시 등장하여 평화의 깃발을 꽂는 ‘평화의 점령자’가 되었다.

남한에서는 몇 년 전부터 평양냉면이 먹방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평양냉면은 옥류관 냉면을 만나 유행의 정점을 찍고 있다. 평양냉면 신봉자들과 신도들에게 아직 가보지 못한 옥류관은 성지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평양냉면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것은 북한이란 존재의 특수성을 빼고 말할 수 없다. 다름, 두려움, 호기심. 복합적인 감정들로 버무려진 특수함. 거부하지만 또 한편으로 무턱대고 거부할 수 없는 특별함. 게다가 평양냉면은 정치와 경제 같은 복잡한 이념과 사상이 매여 있지 않다. 그저 문화이다. 문화 중에서도 먹는 것이 주는 부담이 적다. 많은 실향민들과 그 가족들이 있기에 북한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더더구나 적다.

그렇다. 문화는 부대낌이 상대적으로 적다. 왜? 한 끼 먹어보면 그만이다. 맘에 안 들면 다음에 다시 안 먹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북한의 특성상 북한 음식을 먹어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말도 생긴다. 동남아시아에 가서 옥류관을 찾아본 이들은 지금 같은 때 할 말이 많다. “내가 먹어봤는데 말이지.” “그거 맛이 달라.” 뭐 이런 저런 류의 이야기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우리 생활에 심대하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유로울 수 있다. 심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그러니 부담도 적고 거부할 때 죄책감도 덜하다. 그저 냉면 한 그릇. 대동강맥주 한 잔 정도에 뭐...

문제는 남북관계가 냉면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는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든 인위적인 현상이든 한반도는 변화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 모두 변화하고 있다. 먼저 북한을 보자. 장마당과 시장경제의 탄생, 500만대가 넘는다는 핸드폰, 젊은 세대들의 자유연애 등등. 오랫동안 가두었던 둑이 터져 물이 범람하듯이 김정은 시대 북한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것이 2018년 북한의 외교정책 변화의 주된 원인일 수밖에 없다.

남한도 변화하고 있다. 북한만큼은 아니지만. 인구감소, 청년실업, 초고령화 사회진입, 4차 산업혁명, 제조업경쟁력 약화, 이념과 정치적 갈등의 강화. 남한과 북한이 다른 각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두 체제가 서로를 마주하며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두 개의 변화하는 체제가 상호간 관계까지 변화시키려고 하니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그런데 이 상호변화의 목적지는 과연 어디인가? 그것은 한반도의 '안정(stability)'을 만드는 것, 그래서 남한과 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인가? 아니면 남한과 북한이 경제적 '통합(integration)'이 되어 상호 경제적으로 윈윈(win-win)하면서도 다른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것인가? 아니면 1947년 3월 1일 발표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곡처럼 궁극적으로 한 국가로 ‘통일(unification)’되는 것인가?

북한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기에는 올 해 시작한 협력의 기간이 너무나 짧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궁극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성급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를 주도한 입장에서는 그 변화의 끝이 무엇일지 정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정해갈 수 있다. 끌려 다니지 않고 주도권을 쥐려면 목적지가 명확해야 한다. 국가라는 두 개의 큰 배를 같은 방향으로 끌고 가고자 하면 목적지는 합의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행하는 방향과 속도가 맞추어진다.

최종 목적지는 대통령 혼자 정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남북한 관계 변화에 따른 부담과 책임을 모두 국민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관계 정립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간 차이 뿐 아니라 세대간 차이도 클 수밖에 없다. 최근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은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크게 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여론 조사기관 두잇서베이의 14세에서 99세까지 3,491명을 대상으로 한 6월 조사에서는 통일의 필요성을 주장한 사람들이 56.3%로 나왔다. 반면에 조선일보가 5월에 실시한 20대와 30대를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의 결과는 다르다. 1차 조사에서 39%가 통일을 반대했지만 2차 조사에서 반대자는 49%로 늘어났다. 통일반대의 이유는 ‘비용’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왔다.

문제는 우리만 의견을 나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주민들도 자신들의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정치체제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주민들 간의 의견이 비공식적으로 교환될 수 밖에 없다. 대규모로 의견이 교환될 수 있는 통로가 없는 북한에서 시민사회의 일체화되고 구체화된 의견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남북한 관계의 목적지는 기본적으로 반쪽짜리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남북관계를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다. 냉면처럼 한 끼 먹고 끝나지 않는다. 생계가 걸린 돈이 왔다 갔다 한다. 권력이 개입하고 정치가 끼어든다. 그러면 자연히 가치관이 걸리게 된다. 이성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진짜 우리의 소원이 통일일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통일의 롤 모델로 불리는 독일의 경우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우리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의 시작은 무엇인가? 목적지가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쪽의 준비를 위해서 단계별 접근도 필요하다. 우선은 탈북자들에게도 목적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겠다.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 반대가 걱정되고 지지가 줄어들 것이 겁나겠지만 그래도 빨리 준비해야 한다.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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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되는가 2018-07-13 18:54:57
또 다른 대북마케팅이 아닌가.. 전 정권이 공포를 이용했다면 지금은 평화를 이야기 할 뿐 바뀐건 없다... 모두 자기 이익만 차릴 뿐~ 결국 아무것도 확실한건 없다. 확실한건 서민들만 죽어날 뿐이다. 보여주기 임금인상 같은 정책을 백날 만들어봐야 물가를 못잡으면 결국 의미가 없는데.. 우리 국민은 모두 언제 발사될지 모르는 러시안 룰렛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건 나만의 쓰레기라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태어난 내 조국에서의 삶과 인생이 점차 두려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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