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이명기 시인의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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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이명기 시인의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
  • 오시영
  • 승인 2018.07.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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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며칠째 붙들고 있던 이명기 시인의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 시집을 읽었다. 참 좋은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더위는 차가운 머리를 집요하게 요구한다. 본능이다. 하지만 차가움에 접하는 그 찰나의 섬찍함이 낯설어, 아니 두려워 시집을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하였다. 정병근 시인은 이명기 시인을 일컬어 선비 정신이 깃든 시인이라 평하였고, 홍용희 문학평론가는 평이해 보이면서도 평이하지 않은 근원의 울림을 깊숙이 견지한 시인이라고 평하였다. 세상은 참으로 뜨겁다. 여름의 뜨거움뿐만이 아니라 인간 탐욕이 품어내는 열기가 세상을 불가마로 만들고 있다. 지옥불은 하나님이나 염라대왕이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이, 탐욕스런 인간이 만들어낸 현실이로구나 싶기조차 하다. 이 탐욕의 시대에 가진 자의 탐욕은 끝이 없다. 여기저기에서 전해져 오는 뉴스는 땀구멍 하나하나를, 털구멍 하나하나를 달구어 뜨거운 불꼬챙이로 만든다. 하지만 왜일까? 불꼬챙이로 데이면 뜨겁고 아프고, 얼얼해야 함에도 여전히 차가운 머리로 전해져오는 느낌은 슬픔뿐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도 슬프고, 누군가에 의해 목숨이 끊긴 자들도 슬프고, 엄청난 죄를 짓고도 이를 감추기에 급급한 이들의 초라한 말로도 슬프고, 그들을 단죄해야 한다고 떠드는 이들의 목청도 슬프다. 다들 슬픈 인생들이다. 하루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하루살이의 모습일 뿐이다.

이명기 시인의 눈에 비치는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의 소리와 형상을 보자. “소리는 허공을 밀고 가고/ 바람은 나뭇가지를 밀고 가고/ 물결은 햇살을 밀고 가고/ 눈물은 슬픔을 밀고 가고// 노래가 귓가를 스쳐/ 깊은 마음에 닿기까지/ 쓸쓸한 우리의 믿음은/ 낡은 노트의 행간을 밀고 간다// 나는 어설픈 나를 밀고 가고/ 너는 애꿎은 너를 밀고 가고/ 우리의 뒷모습이 밀고 가는/ 이 한없는 고독과 울렁임들// 창을 열면 어느덧 나는/ 바람결 속에서 가로등 불빛이/ 엷은 어둠을 밀고 가는 것을 본다// 아픈 몸이 병을 밀고 가듯/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은/ 잎이 질 때, 잎이 지고 날이 저물 때/ 우리의 오랜 저녁을 밀고 간다” (전문, 같은 제명의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에 수록, 천년의시작 간, 2018년)

우리 모두는 밂의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밀고, 또 누군가에 밀리며 새벽을 맞고, 저녁을 맞는다. 소리가 밀고 가는 허공, 바람이 밀고 가는 나뭇가지, 물결이 밀고 가는 햇살, 눈물이 밀고 가는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모두 부드럽다. 살아 있는 본질이다. 아,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밀고 밀린다. 노래가 귓가를 스쳐 깊은 마음에 닿기까지 그 짧은 듯한 긴 세월은 낡은 삶의 행간을 수없이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을 것이다. 노래라고 어찌 다 노래이겠는가? 마음에 닿아야만 비로소 노래가 되는 것이지, 무심히 귓가를 스쳐지나갔던 노래들이 얼마인지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언제 어떻게 그 무심했던 노래들이 마음에 닿느냐는 낡은 노트의 행간을 수없이 어루만지고 쓰다듬은 후에 경험되어지는 찰나의 영역인 것이다.

밀리지 않는 것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명기 시인의 눈에는, 어설픈 나를 밀고 가는 내가 보이고, 애꿎은 너를 밀고 가는 너도 보이고, 한없는 고독과 울렁거림들을 밀고 가는 우리의 뒷모습이 다 보이는데, 굳어 있는 강고한 탐욕의 담들은 여전히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과신에 사로잡혀 있다. 지난 주 문재인 대통령이 주제하려 했던 제2차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돌연 연기되었다. 전해지는 말은 “답답하다”는 대통령의 한숨이다. 어떻게 보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높이 쌓인 기득권층의 견고한 담벼락을 바라보며 “아, 강고하구나!” 하는 질림을 맛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시지프스가 되어 언덕을 오르다 구르고 또 오르다 구를지언정 언덕을 오르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듯하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철학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신에게 대적했던 시지프스를 부조리라는 측면에서 관찰한다. 시지프스는 신에게 대적하여 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인간을 구할 의지로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었던 자였다. 하지만 강고한 죽음의 신이 우연히 쇠사슬에서 벗어남으로써 시지프스 자신이 죽게 되었을 때, 시지프스는 지하세계로 탈출하지만, 다시 붙잡히게 되어 신으로부터 영원한 형벌, 즉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산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면 다시 바위가 굴러 떨어지도록 되어 있는 이 무한반복의 형벌로 시지프스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카뮈는 시지프스를 통해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어 인간이 죽지 않도록 한 영웅이었지만, 오히려 신에게 붙잡혀 영원반복의 바위 밀어올리기 형벌을 받는 죄수 아닌 죄수로 살아가야 하는 이중성, 사회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시지프스의 삶이야말로 끝남을 모르는 분업벨트 위의 현대형 인간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정부의 결단 아래 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주당 68시간이던 법정 한도 근무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었다. 비로소 저녁 있는 삶이 법으로 보장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 놓고 기업은 임금 인상 요인의 추가 발생으로 대외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아우성이다. 근로자들 역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소득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지속적 인상을 통한 임금수준 보장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근로 충족을 위한 추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게 되어,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이 된다면 실업률 감소를 가져오게 되어 고용증대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로 인한 가정내 가처분소득이 증대되어 총량면에서 소득주도경제성장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기업에 대한 규제 개혁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소득 불균형이 조금이나마 완화된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시지프스의 산언덕의 경사도가 조금은 완만해지지 않겠는가 싶기도 하다.

우리 국민의 최대 장점 중의 하나는 “적응기간의 최단기화 학습효과”이다. 어떤 이는 이를 혹평하여 국민들이 한 분야에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하여 들쥐떼 근성이라고 표현하여 국민적 공분을 산적도 있지만, 제도변화에 대해 우리 국민은 참으로 빨리 적응하는 학습 기능이 있다. 2003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 주 5일근무제가 도입되었을 때 금방이라도 나라가 거덜날것처럼 요란했었지만, 비교적 단기간 내에 주 5일근로제가 정착되어 안정되었다. 거의 50년 넘게 시행되어 온 주 68시간 근로 방식이었지만, 이제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면 노동시장에 어느 정도 충격이 가해지더라도, 이를 능히 극복하고 단기간 내에 이 역시 정착되리라 예상된다. “저녁 있는 삶”을 원하는 국민들이 많이 늘어났기에, 그러한 의식변화가 이러한 제도의 변화를 견인하게 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로도 역시 적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라는 통계가 이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계류 중이던 휴일연장근로중복할증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중복 할증하지 않아도 된다고 최근에 판결하였다. 즉 여태 기업이 지급해 왔던 방식대로 150%의 급여만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다. 휴일에 연장근로 할 경우 중복 할증 요건이므로 200%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근로자들의 주장 대신 기업의 주장을 받아들여 중복 할증 없이 50%만 추가 지급하여 150%를 지급하면 된다고 한 것이다.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움이 남겠지만, 주 52시간 근로제도의 정착과 저녁 있는 삶의 정착을 위한 사법적 타협책이 아닌가 싶다.

20대 국회는 후반기에 들어섰음에도 아직까지 국회의장과 상임위원회 위원과 위원장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원내 구성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완패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심각한 정치적 공황상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후 당의 진로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갈등과 당내 권력 다툼으로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수습하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첫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무슨 실패원인이 작동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가장 큰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친박들의 교만과 횡포에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잘못을 저지른 대표적 유책자들을 가려내 그들을 제명하거나 출당시키는 등의 인사적폐 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그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의 집단탈당이나 당해체 등의 근원적 해결책을 도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재 상태의 인원 분포가 유야무야하게 그대로 유지된다면 문제 해결의 근원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의 기사회생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둘째, 정강정책의 시대정신 포함이다. 자유한국당은 그 동안 낡은 이념논쟁과 지역분할주의의 최대 수혜를 누려온 정당이다. 특히 “종북좌파, 빨갱이 공산당이론”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시대에 맞지 않은 전쟁논리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향유하여 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낡은 이념의 외투가 통하지 않는 문명시대가 도래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체제로의 한반도 정세 변화가 급속하게 재판되고 있음을 직시하고, 새로운 정강정책으로의 대전환을 이루어내어야 한다. 더불어 대기업 위주의 부익부빈익빈의 이분법적 경제정책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 이미 폐기처분된 낙수효과이론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제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주52시간근로제에 대한 국민의 지지, 더 이상 일자리 창출을 해내지 못하는 대기업의 부의 축적에 대한 국민의 반발 등 경제시장 변화에 따르는 중소기업 보호 및 영세자영업자 보호, 특히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 및 고령사회와 저출산 사회에 대한 복지체제 가동 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정강정책 수립 등 실질적인 당 체질 개선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국민 집단 지성”임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이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허공을 밀고 가는 힘은 약한 것 같지만, 강하고 집요하다. 어떤 거대한 힘이 저항하면 안개처럼, 연기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태풍처럼 뭉쳐 묵묵히 전진할 뿐이다. 이명기 시인은 말한다, 아픈 몸이 병을 밀고 가듯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은 잎이 질 때, 잎이 지고 날이 저물 때 우리의 오랜 저녁을 밀고 간다고. 저녁을 밀고 가는 저 은밀한 힘들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설픈 나를 밀고 가고, 애꿎은 너를 밀고 가는 집단지성은, 허공을 밀고 가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 허공마저 밀어버리는 저 우직한 힘, 저 힘이야말로 촛불혁명 이후 이 시대를 지탱하고 있는 시대정신이다. 외면하려야 외면되어지지 않는 시대정신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묵묵히 허공을 밀고 간다. 이제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마라, 헛소리를 하지 마라. 너와 내가, 우리가 허공을 밀고 가겠다는데, 헛심 쓴다고 헛소리 하지 말라는 거다.

아시아나 항공이 바람에 밀려 하늘을 날면서, 그깟 돈 몇 푼 남겨 먹겠다고 기내식 제공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해 “기내식”도 싣지 않고 허공을 날아 승객들을 굶기고, 찬 밥을 주었다고 한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상속세 포탈 및 대한항공 비행기를 통한 밀수 등 여러 범죄사실로 인해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두 국적 항공사가 “허공에 밀려, 바람에 밀려 사는 신세”임을 망각한 채 바람을 아예 무시하고 살았다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도대체 얼마나 돈을 가져야 멈추어 설 수 있을까? 이제는 모든 것이 밀리고 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최대 권력을 누려온 최경환 전 재경부장관이 1심에서 뇌물죄로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밀리지 않던 권력도 밀리고 있다. 밀리지 않던 재벌도 밀리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국민이 촛불이 되어 그 불꽃으로 밝음을 만들어, 밝음의 힘으로 어둠을 밀어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들이다. 눈을 감고, 두 손바닥으로 그대 앞 장벽을 살포시 밀어보라, 밀리는가? 밀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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