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눈에 밟히는 선한 사람들...” 시리아 여행기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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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눈에 밟히는 선한 사람들...” 시리아 여행기④
  • 제임스리
  • 승인 2018.07.0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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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리(Rhee James)
호주 사법연수과정(SAB), 시드니법대 대학원 수료
호주 GIBSONS 법무법인 컨설턴트 역임
전 KOTRA 법률전문위원
전 충남·북도, 대전광역시 외국인 투자유치 위원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고객위원
저서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 (KOTRA 발간, 2004)
‘불법체류자’ (꿈과 비전 발간, 2017)
현재 100여개국 해외여행 경험으로 공공기관 및 대학 등에서 강연

전편에 이어...

여행 넷째 날

시리아의 제 2의 도시 ‘알레포’는 수 천 년 전부터 번성한 상업도시로서 이슬람국가에서는 드물게 기독교인구가 약 30%나 되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그 이유는 20세기 초 터키에서 추방된 기독교인들이 이 도시로 피난을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알레포’는 ‘다마스쿠스’등과 함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에 볼거리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알레프 성’이 백미로 꼽힌다.

▲ 알레포 중심가…뒤로 세라톤 호텔이 보인다…

성 입구에서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 성 안으로 들어가니, 성 안에는 궁전 터를 비롯하여 원형극장, 사원, 목욕탕 등 많은 부대시설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성 관리인에 따르면, 이 성 안에서 모든 것이 자급자족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성 안을 다니다가 마침 견학을 나온 현지 여고생들을 만나 말을 건넸더니, 모두들 “까르르” 하면서 수줍은 듯 전부 도망가기에 바빴다. 아직도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알레포 성’에서 내려다 본 시내는 거대한 회색빛 도시로 나에게 다가왔다. 하늘은 자동차에서 뿜어대는 매연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또한 도시 지붕마다 위성TV 수신용 접시들이 빼곡히 밀림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서, TV 수신이 그다지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되었다.

‘알레포 성’을 돌아 본 뒤 건너편에 위치한 ‘수크(시장)’로 들어갔다. 긴 지하 터널 같은 곳에 거미줄처럼 미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곳은 한국의 재래시장 같은 상점들이 즐비하여, 오랜만에 고향에 온 것 같은 푸근함을 느꼈다.

마침 시리아 돈이 다 떨어져 수중에 있는 U$ 100달러짜리 지폐를 바꾸려고 상점에 들어가 “환전소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상점주인은 “내가 바꿔 주겠다”고 하면서 주머니에서 현지 돈 한 뭉치를 꺼냈다.

▲ 알레포 성 입구

환율은 환전소보다도 더 유리하게 계산해서 바꿔 주었는데, 아마도 상점주인은 미국달러를 금처럼 소유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수크’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후, 다음 이동경로를 체크하였다.

일단 레바논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라타키아’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간 후, 그 다음으로 레바논국경은 ‘쎄르비스(국경을 넘는 택시서비스)’를 이용하여 넘어가려고 계획을 세웠다.

기차 탑승시간이 남아 시내를 걷다가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었는데, 마침 대여섯 명의 한국인 남녀대학생 그룹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너무 반가와 “어떻게 이곳까지 왔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교회에서 단체로 이곳에 왔는데, 이슬람국가들을 다니면서 모스크에 들어가 한국에서의 ‘지신밟기’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땅을 밟으며 합동기도를 드리러 왔다”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 학생들을 카페로 데리고 들어가 커피 한잔씩을 사주면서 여행얘기 등을 들려준 후, ‘이슬람국가에서의 신변안전’을 몇 번이나 신신당부한 후 헤어졌다.

▲ 성 벽에서 만난 남학생들이 이방인을 반겼다...

나는 이 학생들과 헤어진 후, 해안가에 자리 잡은 ‘라타키아’로 가는 기차표를 끊으려고 ‘알레포 역’에서 현지인들과 같이 긴 줄에 동참하였다. 내 차례가 되자 매표소직원이 동양에서 온 나를 보더니 신기한 듯 다른 창구 직원들 모두를 불러, 갑자기 창구에는 다섯 사람이 몰려와서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떠듬거리는 아랍어로 “‘라타키아’가는 기차표를 끊고 싶다”고 말하자, 아랍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내가 그리 신기하게 보였는지 모두들 나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기차표를 잘 살펴보니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아랍어만 쓰여 있어, 어느 칸 어느 자리에 타야 할 지 몰라 기차 주위를 왔다 갔다 했다.

이 때 한 현지인 남학생이 영어로 말을 걸어 왔다.

“제가 도울 일이 있는지요?”

“아, 예 …이 기차 어느 자리에 타야하나요?”

그러자 그는 내 기차표를 보더니 앞장서서 기차에 올라, “이 자리에 앉으면 된다”고 말하고는 기차를 도로 내려 다시 자기 갈 길을 갔다.

▲ 성에서 내려다 본 알레포 전경

나는 고마움을 마음속으로 전달하며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같은 기차 칸에 있는 현지인들이 신기한 듯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계면쩍어 그냥 손을 살짝 흔들어 아는 체를 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마침 앞자리에 앉아 있는 현지 남학생이 시리아 전통악기를 가슴에 안고 있기에 내가 물었다.

“음악을 전공하세요?”

“예, 대학에서 시리아 전통음악을 전공하고 있는데 주말이라 ‘라타키아’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우리 서로는 음악얘기를 하면서 가고 있었는데, 야간기차는 중간에 갑자기 정전이 되어 30분 정도 섰다가 다시 떠났다.

나는 그 학생에게 물었다.

“기차에 이상이 있나 봐요?”

“아니에요...전력사정이 나빠, 기차가 가다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서는 것은 보통이에요...”

실제로 기차는 정확히 다섯 번이나 서고 가고를 반복하면서, 제 갈 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 때 건너편 쪽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내 앞에서 태권도 포즈를 취했다.

“태권도 배웠니?” 나는 물었다.

“아니요, TV에서 봤어요.”

나는 일어서서 군대복무 중 배웠던 태권도 기본자세를 살짝 보여 주었더니,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모두 내 자리로 몰려와 박수를 치고 난리였다.

“오늘 어디에서 묵으세요?”

내 앞자리에 있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 물었다.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요...”

▲ 기차 좌석으로 나를 안내했던 현지 청년이 포즈를 취했다…

평소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서, 숙소예약을 하지 않고 현지인들에게 물어가면서 숙소를 정하던 터라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면 내 숙소가 원룸인데 누추하지만 하루 밤 묵으실래요?”

나는 무슨 일이 닥칠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인샬라(신의 뜻대로)’라는 철칙이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현지인들의 지나친 호의에 ‘라타키아’까지 약 4시간 반의 긴 시간 동안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라타키아 역’에 내려 그를 따라 약 10분쯤 걸어 들어가니 그 학생 숙소가 있었는데, 한국의 허름한 빌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또 한 명의 룸메이트가 있어, 나는 인사를 하고는 같이 소파에 앉아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집 안을 휘둘러보니, 그 학생이 쓰고 있는 조그만 전자오르간과 악보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이들과 약 한 시간쯤 애기를 나누다가, 내일 새벽에 ‘레바논’으로 떠나야 했기에 소파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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