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대통령은 관용을 베풀 권한이 없다, 김종필 전 총리의 훈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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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대통령은 관용을 베풀 권한이 없다, 김종필 전 총리의 훈장 추서
  • 오시영
  • 승인 2018.06.2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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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관용을 베풀 권한이 없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법대로” 모든 것을 집행하라고 국민이 명령한 자리이지, 임의로 누군가를 용서하는 관용을 베풀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까닭에 국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법대로 주어진 상황을 집행하면 되는 것이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내세워 누군가에게 관용을 베풀거나 공과를 가벼이 평가해 상훈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죽음과 그에게 추서된 민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인 무궁화장의 적절성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을 유령처럼 떠돌던 지역패권주의의 악습이 드디어 소멸하게 되었다는 정치사적 의미를 갖는다. 지난 6·13지방선거가 망국병처럼 떠돌던 영호남 중심의 지역패권주의를 소멸시키는 외형적 현상이었다면, 김종필, 그의 죽음은 지역패권주의의 근원을 이루며 암덩어리처럼 남아 있던 종균이 최종적으로 제거되는 근원적 현상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인간의 평가는 명과 암이 있게 마련이다. 공과 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종필, 그의 죽음 앞에서 무궁화장을 받을 만한 조국 근대화 발전에 공이 많은 인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고, 5·16쿠데타를 통해 군부독재의 길을 열고, 유신독재시대와 전두환 5공 정권으로 상징되는 군부독재의 빌미를 제공하고, 나아가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지역패권주의를 공고히 함으로써 대한민국 현대사의 커다란 병폐가 된 지역 갈등을 조장한 가장 책임 있는 과를 만들어낸 자라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그의 충청권 맹주론은 경우에 따라서는 영남과 결합하여 3당 합당을 통한 군부독재를 강화하거나, 호남과 결합하여 DJP연합을 통한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포커페이스로 기능했다. 문제는 그의 충청권 맹주론은 한 번도 자신이 권력의 1인자가 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시 권력의 심장부에 존재하며 권력을 향유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항시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물고 살았다는 것이다.

한 인간의 평가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보이는 모습으로 평가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살아온 과정도 중요하지만 말이다. 까닭에 평소에 애국자로 살았더라도 마지막에 친일매국노로 변절되었다면 그는 매국노일 수밖에 없고, 평소 훌륭한 자선사업가로 살았더라도 마지막에 살인범이 되었다면 그는 살인범일 수밖에 없다. 죽음은 한 인간에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신의 최종적인 심판이다. 까닭에 지금 이 순간이 언제나 죽음의 순간일 수도 있기에 평소 삶의 모습이 아름답고 고결해야 하는 것이다. 김종필, 그는 2017년 5월 5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그의 지지를 받기 위해 그를 방문했을 때 “난, 뭘 봐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라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이가 얼마 전에 한참 으스대고 있을 때 한 소리가 있어. 당선되면 김정은이 만나러 간다고. 이런 놈을 뭐를 보고선 지지를 하느냐 말이야. 김정은이가 자기 할아버지라도 되나?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비난을 가하며, “(홍준표 당신이) 꼭 되어야겠어.”라며 홍준표 후보를 격려했고, 홍준표 후보 역시 “네 꼭 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김종필, 그의 의식 속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통일을 논의하고자 하는 문재인 당시 후보는 “빌어먹을 자식!”에 불과하였다. 아니 그의 생각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키던 반공이데올로기에 그대로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정치사적 등장과 퇴장은 결국 “반공이데올로기의 포로”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김종필, 그를 빼고서는 이야기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무엇보다도 군사쿠데타의 중심세력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잘못이 제일 크다.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불법연행과 고문, 가짜간첩양산 등 민주인사를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발판을 만든 죄 역시 대단히 크다. “김·오히라 메모”라는 비정상적 형식의 한일 협상을 통해 일본의 35년 식년통치지배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한일협상에 방해가 된다면 독도를 파괴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져 세상을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일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수많은 징병, 징용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죄 역시 적다고 할 수 없다. 중앙정보부장 재직 중에는 정치자금 등을 불법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 중앙정보부장직에서 쫓겨났고,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부정, 타락선거라는 이유로 그 이듬해 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하였다. 특히 국무총리로 재임하던 1970년대 초 유신헌법제정에 깊이 관여하여 이름하여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요상한 형태의 독재정치를 합리화하는데 앞장섰고,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밝은 곳에서 거한 듯하지만, 참으로 어두운 곳에 많이 잠복해 있던 음침한 삶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를 보고 있으면, 조선시대의 재상 한명회가 크로즈업된다. 세조의 장자방이라 불리며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기획하고 실행하여 세조대부터 성종 대까지 조선 정치를 움켜쥐었던 권모술수의 달인 한명회를 닮은 듯한 그의 삶은 결국 92세의 나이로 영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충청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현대정치에 잘 활용하여, 경우에 따라 영남세력 또는 호남세력과 결합하여 소수이면서 다수의 이익을 공유하는 정치적 재주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를 통한 통합과 화해의 정치에 기여한 측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남과 호남이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장기간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지역 간 대립과 갈등이라는 현대사의 질곡을 만들어 내었다고 평가될 것이다. 한명회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김종서를 비롯하여 단종 복위를 꿈꾸던 사육신을 죽였고,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이라고 읊은 남이 장군을 “평(平)”을 “득(得)”으로 바꾸어 그가 역모를 꾸몄다고 고자질하여 죽였다. 그러면서도 일인지하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을 수차례 역임하면서, 70이 넘는 나이까지 장수하면서 조선의 각종 정치제도를 정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니, 하여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김종필, 그의 죽음은 1961년도의 5·16군사정변의 최종책임자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는 5·16쿠데타에 소극적이었던 박정희 장군을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 자신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유신본당이 자신이라고 호언한 적도 있다.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박정희 대통령의 그늘에서 2인자로 살아남기 위한 처세를 펼치다가 강제적으로 외유를 당하기도 하였고, 부하였던 전두환 장군에게 정치활동금지자로 낙인찍히기도 하였고, 부정축재자로 찍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민주주의 신장에 기여한 바가 없으면서도 민주주의의 혜택을 많이 누려온 것이다. 그의 죽음 앞에서 특이한 점은 그를 대놓고 욕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그의 박정희 독재세력, 3당 합당을 통한 전두환 세력에의 부역 등을 비판하면서도 그를 주요 타깃으로 삼아 심하게 반발하지 않는 것은 그의 한학에 대한 깊은 조예에서 비롯된 문화적 퀄리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서에 능하여 적절한 곳에서 적절한 선문답 같은 수사를 한 마디씩 던짐으로써 상대방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상대방의 입담을 닫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의 마지막 공개발언은 그 인생의 초라한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고 말았다. 촛불혁명으로 새롭게 달구어진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여전히 1950년대식 냉전체제에 머물러 있는 그의 혜안은 결국 그의 전 인생을 관통해온 키워드가 조국의 평화통일이 아닌 진영논리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편향된 사고에 불과하였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관용을 베풀라고 대통령 권한을 국민이 위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순방하던 중 죽은 김종필 전 총리를 조문한 이낙연 총리와 김부겸 행자부장관이 훈장 추서를 가벼이 언급함으로써 이를 기정사실화하게 된 것은 참으로 성급한 언동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필, 그가 정치적으로 중요인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훈장이라는 것은 국가나 사회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국가에서 그 공적을 표창하기 위하여 수여하는 기장이다. 상훈법에 따르면 서훈대상자의 공적내용, 그 공적이 국가, 사회에 미친 효과의 정도 및 지위와 기타 사항 등을 참작하여 결정하도록 되어 있고, 동일한 공적에 대하여는 훈장을 거듭해서 수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훈장 수여 과정도 부처장의 추천을 통해 행정자치부 내에 설치된 상훈심의회의 공적심사를 거친 후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총리나 장관이 조문 길에 훈장추서를 가벼이 언급함으로써 훈장추서가 기정사실화되고, 러시아에 체류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총리와 장관이 언급을 했으니, 이를 대통령이 거절하게 되면 모양새가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공직생활을 2000. 1. 국무총리에서 물러나며 마감하였다. 공직 은퇴 후 18년 6개월이 지난 후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훈장을 추서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1971년~1975년)를 역임하였고, 총리를 그만 두던 1975년에 국무총리급에게 주어지는 적십자대장 태극장을 수여하였다. 즉 국무총리로서 받을 수 있었던 최고 훈장을 이미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 국무총리를 그만 둔 후 18년이 지난 지금 다시 국무총리였었다는 이유로 무궁화장을 수여하는 것은 이중적 상훈 수여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지 면밀히 검토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훈장을 수여할 것이었으면 물러날 때 수여하였어야 옳고, 한 번 수여되면 같은 공적으로는 훈장을 수여할 수가 없으므로 1975년 국무총리 퇴임 시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무궁화대훈장을 제외한 최고 훈장이라 할 수 있는 적십자대장 태극장을 수여받았으므로 이번 그의 죽음과 훈장 추서는 훈장 이름만 바뀌었을 뿐 같은 레벨의 훈장이므로 이중 훈장 수여가 사양되어져야 옳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참 시끄럽다. 그런 와중에서도 지난 28일 새벽, 대한민국 축구팀이 세계 랭킹 1위인 독일에게 2:0이라는 기적 같은 승리를 얻어낸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어떤 축구 도박사가 우리가 2:0으로 이기는 것보다 독일이 7:0으로 이길 확률이 훨씬 높다며 우리 축구팀을 비하하기도 했지만, 우리 팀은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승리를 일구어내었다. 땀이 있었고, 노력이 있었고, 집념이 있었고, 단합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각 부처가 보고하려 한 규제개혁 성과보고회의를 전격 취소하였다. 각 부처가 규제개혁하겠다고 내세운 계획서가 너무 안일하여 진정한 개혁을 실현하려는 실천의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무언의 질책을 가한 것이다. 무엇인가 개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구태에 절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현상유지가 좋은 것이다라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 축구가 독일을 이겼듯 비상의 배수진을 치고,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훈장 추서가 5·16쿠데타에 대한, 유신독재체제에 대한 역사적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신중히 고려하고 또 고려하였어야 했다. 정치적으로 3당 합당을 하고, DJP연합은 할 수 있다. 그건 정치적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가의 상훈은 과가 없는 공에 대한 평가에 주어지는 국가의 공인인증이다. 상훈심사를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상훈에 대한 공적심사 시 공에 대한 심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과는 없었는지?”에 대한 심사가 함께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교수나 교사 또는 공무원들의 정년 시 주어지는 훈장 심사 시 같은 기간 동안 그가 처벌받은 전력이나 사소할지라도 범죄 전과 등이 없는지에 대한 심사가 같이 이루어져 그러한 처벌 사례가 있으면 공도 상쇄되어 훈장 수여가 거절된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김종필 전 총재에 대한 훈장 추서 시 이러한 공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하였어야 함에도 이를 가벼이 처리한 것은 문제였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권한은 함부로 관용을 베푸는 자리가 아니다. 관용은 법이 허용할 때만 행사될 수 있는 참으로 조심스러운 권한임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상기하였으면 한다. 고인의 유족들도 고인이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칭한 대통령이 주는 상을 받음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은 것일까?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다,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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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수 2018-06-29 23:06:53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한 공적이 너무 크므로 아무나 다 받는 훈장 정도로는 부족한 분입니다 경남의 지역주의는 옅어졌지만 호남지역주의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와 포용에 노력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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