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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10)-경찰 단계의 회복적 사법, 필요할까요?
임수희  |  sooheelim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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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8  16: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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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네, 필요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눌 회복적 사법 이야기의 제목인, ‘경찰 단계의 회복적 사법, 필요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답을 하시겠나요?

저는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고 깊게 이것저것 따져볼 필요도 없이 바로 “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경찰 단계’라고 말할 때의 의미는, 입건 전 단계 - 입건해서 수사하는 경찰 단계 - 검찰 수사 단계 - 법원 재판 단계 - 교도소 교정 단계 - 사회 복귀 단계로 이어지는 형사사건의 일련의 과정에서, 검찰이나 법원, 교도소와 대비되지만 입건 전 단계와도 대비되는 단계를 말합니다.

사건 발생 직후 입건, 즉 수사가 개시되면서 사건을 담당하는 초기 주체가 바로 경찰입니다.

경찰은 초기 수사를 담당할 뿐 아니라 사실, 사건 발생 이전의 여러 영역에도 관여합니다. 경찰법 제3조에 보면 국가경찰의 임무로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진압, 범죄피해자 보호, 그 밖의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경찰은 지역사회 내에 밀착되어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등의 일을 하다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입건하여 수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도소는 물론 법원, 검찰 보다 지역사회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사건 발생 직후, 때론 그 이전부터 피해자와 가해자를 직접 만나고 가장 먼저 접하는 국가기관인 경찰이 회복적 사법의 관점을 가질 필요성, 어떻겠습니까.

이러한 경찰 단계에서 회복적 사법을 구현할 필요성, 당연히 있지 않을까요?

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신속히 조기에 당사자간 분쟁이 해결되고 가해자가 책임을 인수하며 피해자의 피해가 회복되고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지역사회로 원만히 재통합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람직한 것은 없겠지요.

경찰 단계에서 검찰을 거쳐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나아가 교도소 단계로 가기까지 긴 시간이 흐르거나 혹은 사건이 지연되기도 하는데, 피해자에게 피해 회복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거나 가해자에게는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이해를 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단지 국가가 가해자를 처벌만 하는 경우와 비교해 본다면, 저의 답변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 지실 겁니다.

2.
지난 번 ‘회복적 사법’ 아홉 번째 이야기에서 소개한 강원지방경찰청의 <너와 함께(위드 유, With You)>와 같은 프로그램이 바로, 사건 초기 단계에서 경찰이 회복적 개입을 하여 피해자의 피해 회복, 가해자의 재사회화, 재범예방 및 커뮤니티의 평화적 재통합을 성공적으로 돕는 좋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싸우다가 상처를 입혔는데, 경찰이 형사사건으로 입건하여 증거 수집 등 수사를 한 후 검찰에 가해아이를 상해죄로 송치해 버리기만 한 경우를 상정해 봅시다.

이와 달리 만일 이 사안에 강원지방경찰청의 위드 유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면, 117(학교폭력) 신고를 접수한 학교폭력전담경찰관이 회복적 서클(Restorative Circle) 진행자로서 아이들을 면담하여 아이들과 선생님 등 관련자들 사이에서 회복적 대화 모임을 진행하고서, 상호 이해와 사과, 화해, 피해회복, 나아가 향후 평화로운 관계를 위한 실천적 약속까지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전자와 비교해 볼 때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만일 이 같은 성과가 가능하다면 비교할 수 없이 가치 있지 않을까요.

위드 유 프로그램을 도입한 백두용 경정님으로부터 얻어 본 사례 자료에서 저는 놀라운 내용들을 많이 발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 내에서 집단적 갈등을 빚었던 두 그룹의 아이들이 위드 유 프로그램을 통해 대화의 기회를 가졌고 그 결과 ‘우리의 약속’이란 제목으로 함께 서면을 작성한 것을 보았는데요. ‘서로 듣기 싫은 말이나 보기 싫은 행동은 하지 말기, 서로 부딪힌 경우 그 자리에서 사과하기, 서로 뒷담화하지 않기, 서로 헛소문 퍼뜨리지 않기, 우리만큼은 왕따시키지 않는다, 서로 욕하지 않기, 서로 시비걸지 말기, 상대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기’라는 실천적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누가 시키거나 제시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아이들끼리의 대화 결과 스스로 만들어 낸 약속들이었지요.

이러한 사례야 말로, 경찰이 전통적으로 해 오던 대로 사건 수사를 하고 결과를 검찰에 송치하는 역할에만 머물기 보다는 사건 초기에 회복적 개입을 함으로써 당사자나 공동체에 보다 큰 이익을 줄 수 있고 소중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예가 아닐지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위드 유 프로그램에서는 경찰관이 직접 회복적 서클을 진행하는 방식이지만, 향후 지역사회 내 자원이나 인프라가 갖춰지면 경찰관이 직접 대화모임을 진행할 필요까지는 없고(수사 주체라는 역할 갈등으로 인해 사건 유형에 따라서는 경찰이 대화모임을 직접 주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단지 경찰 단계에서 회복적 대화모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되, 실제 대화모임 진행 등의 지원은 지역사회 내에서 받는 방식으로 나아가도 좋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들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여러분께 지난 회 말씀드렸던 2014년 한 해 동안의 위드 유 통계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리고 싶군요. 강원 지역 11개 경찰서에서 폭력, 모욕, 따돌림, 갈취, 상습괴롭힘, 가출 등 가족문제, 사이버폭력 등 다양한 사건 유형에 관해 총 111건 진행된 대화 모임 중 3건을 제외한 108건에서 관계회복과 화해 등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내용 말입니다.

3.
이렇게 말씀을 드리다 보니, 마치 제가 경찰 홍보대사라도 된 것 같습니다만, 물론 그럴 리야 없지요. 이는 회복적 사법에 관해 법원의 판사로서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일반적인 수준의 말씀일 뿐입니다.

2002년에 유엔 경제사회위원회(the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uncil)가 채택한 ‘형사사건에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의 활용에 관한 기본원칙(Basic Principles on the Use of Restorative Justice Programmes in Criminal Matters)’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위 기본원칙 Ⅱ.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의 활용 중 제6항에 보면,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은 형사사법 절차의 모든 단계에 걸쳐 일반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Restorative justice programmes should be generally available at all stages of the criminal justice process.).’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유엔은 회원국들에게 이를 일반적으로 장려하고 있습니다.

형사사건의 모든 단계에 걸쳐서 회복적 사법이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께 전해 드리고 싶은 말씀이고, 그 일환으로 다른 모든 단계와 마찬가지로 경찰 단계에서도 당연히, 유용하고 적절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들이 적정한 방식으로 작동 가능하도록 제도화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2014년에 시도된 위드 유 프로그램은 아쉽게도 현재는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강원 지역 관내에서 회복적 서클 진행자 교육을 받은 경찰관들이 이를 활용하여 담당 사건에서 필요한 경우에 적절히 당사자들을 지원해 주고는 있지만, 현재 ‘위드 유’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프로그램이 예전처럼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좋은 프로그램은 지속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떤 이유나 사정이 있어 계속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위드 유’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종래에 시도되었던 경찰 단계의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만, 일시적인 시범실시사업에 그치는 등,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현재 경찰 단계의 회복적 사법 시도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고 있습니다.

필요와 당위가 있는데 왜 안 되는 것일까요. 경찰 단계에서 회복적 사법을 구현하는 방안을 마련함에 있어서 마주하게 되는 제도적, 현실적 어려움과 장애들. 다음 회에 계속해서 그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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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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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우 2018-06-29 14:46:43

    야! 이런 좋은 글은 책으로 꼭! 발간되야한다.
    참고로 저는 글쓴님과 어떠한 관계도 없습니다 ㅋ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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