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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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
  • 송기춘
  • 승인 2018.06.2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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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5월 29일 KTX 해고승무원들이 대법원 대법정에서 농성을 벌였다. 자신들의 해고사건 재판이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만한 법원행정처 문서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법학교수와 변호사들도 대법원 앞에서 재판거래에 항의하는 농성을 벌였다. 법원노조원들도 농성을 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debet esse judex in propia causa)”. 불편부당 또는 편견 배제에 관한 원칙이라 할 수 있다. 공정한 청문에 관한 “양 당사자에게서 들으라(Audi alteram partem)”는 것과 함께 정의에 이르기 위한 절차에서 필수적인 원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재판하는 사건의 당사자와 관련이 있으면 재판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재판에서 제척, 기피, 회피 제도를 두는 것이 그러하다. 재판관은 어느 당사자로부터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재판관이 자신이 재판하는 사건의 당사자와 일정한 관계가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면 당해 사건의 재판에서 배제되는 것이 옳다. 제 아무리 훌륭한 재판을 한다고 해도 재판에 대해 초래되는 의혹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원칙은 재판관이 사건의 재판에 어떠한 이해관계가 있으면 재판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헌법에서도 법관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으니 공정한 재판은 재판관이 당사자로부터만 독립하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재판을 어떻게 하느냐가 법관과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그 재판이 결코 공정할 수는 없다.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지난 5월 25일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에 제출한 조사보고서에는, 법관이 자기가 재판하는 사건에 관하여 사건 당사자가 알지도 못하는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가 등장한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활동을 감시하거나 뒷조사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 사건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고, 심지어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해서는 “대법원 판결 조속한 시점에 선고. 상고심을 최대한 조속히 진행하여 만일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최대한 조속히 선고하는 것이 바람직함.”이라고 하고 “우병우 민정수석이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줄 것을 희망한다”고 기재되어 있으며, 이 사건은 실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고 전원일치 판결이 내려졌다. 통상임금에 관하여 신의칙까지 적용하여 소급적용을 제한한 판결의 경우에도 “재판과정에서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며, “판결 선고결과에서도 대법원의 정부와 재계의 고민을 잘 헤아리고 이를 십분 고려하여 준 것으로 받아들임”이라는 내용이 담긴 문건도 발견되었다. 대법관들은 법원행정처의 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하여 자신들이 재판거래를 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것은 적어도 대법원장이 정부와 재판을 가지고 거래를 하였을지 모르고 대법관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합리적이다.

이 조사결과도 충격적이지만, 이 조사결과가 사건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고 믿기에는 한계가 있다. 법원행정처의 재판관련 권한남용의혹을 법원 관련인사로만 구성된 ‘특별조사단’에서 조사하였다. 현 법원행정처장이 단장이 되고 지방법원장, 윤리감사관, 전국법관대표회의 당시 의장, 전산정보관리국장, 사법연수원 교수 등 6명이 참여하였다. 법원 내부의 문제에 대한 법원의 자체조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관이나 법원 나아가 대법원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사안에 관하여 조사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조사를 제3의 기관에 맡긴 것도 아니고, 내부조사단을 구성한다고 해도 좀 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신뢰받는 외부인사가 참여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였다. 조사대상인 컴퓨터의 디지털포렌식 작업을 담당한 곳은 의혹의 핵심에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친형과 관계가 있는 기관이었다. 공신력을 가진 기관으로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반론도 있으나 하필 임 전 차장의 컴퓨터에서 손상되거나 복구할 수 없는 파일이 유난히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원칙에서 보면, 조사 자체도 결코 공정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를 포함하여 대법관까지 수사를 받을 상황에 이르렀다. 디지털포렌식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검찰이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고 법관이라도 범죄를 범했으면 엄중하게 처벌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잘못된 재판도 바로잡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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