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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단순함의 미학이 준 지혜
신희섭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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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7  19: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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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벌써 6월이다. 무엇을 했나 싶은 데 6월이 되어 있다. 바닥만 보고 분주하게 지내던 일상에서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계절이 바뀌어버린 느낌이다. 30도를 넘는 여름이 와있다.

4월과 5월. 한반도의 상황만큼이나 쏜살같던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숨을 고르며 조금 여유를 가지고 몇 권의 책들을 읽어본다. 그동안 쫓기던 일상의 번잡함이 사라진다. 간만에 느껴보는 독서의 즐거움.

문득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그동안 배우고 가르쳤던 정치학 모델들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다는 것. 그리고 그 단순함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것. 그 대상이 정부형태이거나 정당이거나 선거제도이거나 관계없이.

맞다. 모델들은 단순하다. 과거에도 그 모델들은 단순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모델들의 단순함이 깊이 와 닿는 것일까?

모델들이 원래 단순했고 그래서 명확하게 설명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학문하는 즐거움이 새로워진다. 전에도 지금처럼 정치학이 재미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래서 세상의 빈자리를 채워간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무엇인가를 읽을 때마다 하나하나가 새롭고 그래서 다음 것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그 즐거움을 게을리 하게 되었다. 그저 필요한 정보들을 채웠다. 그렇게 간단히 정보만 채우면 완성되지 않은 세상의 그림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리 하면서 정치학을 처음 공부할 때의 즐거움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기계적인 공부.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읽어서 앞선 사람을 추격하고 그리고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봐야겠다는 생각.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 빨리 빨리 끝내고 다음 것을 손대보고 싶다는 생각. 바쁜 일상을 핑계로 이런 생각들은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런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러던 중 예전에 쓰인 정치학자들의 글을 보았다. 왜 이 양반들은 모델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자 답이 너무 쉽게 떠올랐다. 복잡한 세상의 단순화. 그렇다.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어서 작동원리를 알고 싶은 것이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이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물리학처럼 규칙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 작동규칙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파생된 규칙을 찾고 이례적인 사안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이 작동되는 큰 그림이 있고 그 그림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피사체들이 있게 된다. 규칙과 변이.

개인적으로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것을 지금 처음 발견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 스승님들에게 많이 듣고 배웠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 지혜로운 조언들이 이렇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글자와 지식으로 그 이전에도 머릿속은 채워져 있었다.

지금 그 지식들이 생생하게 살아 올라온다. “어때 재미있지 않아?”라고 말을 걸면서. “그래 재미있네.”하고 살펴보니 그 전까지 봤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도가 보이고 민주주의의 모델들이 원리는 이런 거야 하면서 보인다. 사상가들이 고민한 시민도 그리고 자유도 이해가 된다. 왜 정치경제는 그리 돌아가는지도 그리고 국가들이 행동하는 이유들도 보인다.

지금 경험하는 이 경험은 지혜로워지는 과정일까? 아니면 원래 알고 있던 것으로 퇴행하는 것일까? 정확히 알지 못하던 것들의 규칙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퇴행은 아닐 것이다. 책속 정보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지혜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혜가 맞는다면. 어쩌면 약간 도가 트이고 있는 것이라면 지나칠까?

이 경험은 낯설지만 두렵지만은 않다.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다는 느낌은 부족한 것을 메우는 것이기에.

그런데 왜 “지금” 이런 원리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적용되는 동일한 질문이기도 하다. ‘찰나의 순간’은 비슷하게 오는 법일 테니.

먼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남겨준 인류의 스승인 공자가 불혹과 지천명과 이순을 이야기 한 것을 보라. 나이가 가지고 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오직 나이 들어가는 것만으로 지혜로워 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갈망도 지혜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열망과 갈망은 시련을 통해 단련을 시킨다. 잘 해보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숨 돌릴 틈 없는 일상은 열망을 갈망으로 바꾼다. 그러나 그 갈망을 현실화할 여유를 주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생각같이 잘 안 풀려서 좌절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또 다시 의지를 가지고 열망을 다질 때가 온다. 이런 반복들을 거치는 그때. 그때 보상처럼 지혜를 받는다. “그래 애썼다. 지혜라도 주마”하고.

복잡함을 풀어나가는 힘. 단순화와 규칙. 이후 찾아오는 심적인 평화.

그리 보면 지금 한국 사회도 지혜를 찾기 위한 고통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하는 법조 비리. 대기업 일가의 소위 ‘갑질’로 대표되는 계급 대립. 미투 운동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일상성 속의 젠더문제. 최저임금의 우산 아래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자영업자들과 노동자의 고통. 주 52시간의 일률적 기준이 과연 마음이 바쁜 한국 사회를 쉬게 할 수 있을 것인지.

이렇게 폭발하고 있는 갈등과 이런 갈등을 풀기 위한 사회적 노력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사회도 얼마 뒤 “그래 애썼다. 지혜를 주마”하고 선물을 받지 않을까. 절박함이 있으니 잘 해보고 싶을 것이고 그러면서 더 많이 좌절할 것이고. 이런 단련의 과정이 사회에 더 넓게 볼 수 있는 관용과 단순하게 그러나 담대하게 세상을 볼 용기를 주지 않을까. 그렇게 개인들처럼 사회도 나이를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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