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국제정세와 한국이 나아갈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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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국제정세와 한국이 나아갈 길 (2)
  • 신희석
  • 승인 2018.05.2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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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석 박사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하버드법대 법학석사(LL.M.)
연세대 법학 박사(Ph.D.)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1945년 유엔 헌장 제1조는 유엔의 목적으로 평화 유지와 함께 인권 존중을 제시하고, 1948년 유엔 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前文은 “모든 인류 가족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과 동등하고 빼앗을 수 없는 권리의 인정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라는 말로 시작한다. 국제법과 국제관계에서 평화와 인권의 관계는 무엇인가?

최근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4월 부임한 군 출신의 후안 파블로 로드리게스 주한 콜롬비아 대사에 대한 폭로기사를 냈다. 과거 휘하 부대가 민간인을 좌익 게릴라라며 학살하고 전공과 포상금을 챙긴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5.18 학살로 전직 대통령들까지 법정에 세운 나라에 전범 용의자를 도피성 대사로 보내다니 놀라운 일이다.

콜롬비아는 반세기 넘은 내전으로 사망·실종자는 30여만 명, 이재민은 700여만 명에 이른다. 전시와 평시의 인권침해는 양과 질이 다르다.

한국전도 사망·실종자가 200여만 명에 달한다. 북한의 조직적 포로·민간인 학살은 미군이 전범 기소까지 준비했다. 무고한 시민을 공비라며 죽이고 전공을 챙긴 자도 많았다. 거창 학살의 최덕신 장군은 외신 보도로 일이 커지자 해임되었다가 외무부장관, 서독대사까지 역임하며 동백림 사건을 일으킨 후 월북하여 천수를 누렸다.

이러한 전쟁의 악몽 때문에 북한과의 비핵화, 평화체제 논의에 기대가 큰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1972년 반공 매파 닉슨은 소련 견제를 위하여 문화혁명 광풍을 일으킨 모택동과 손을 잡았고, 이후 동아시아는 전세계에서 전쟁이 가장 적은 지역이 되었다.

평화는 체제 이완과 인권 증진에도 기여한다. 1975년 서방과 공산진영이 체결한 헬싱키 협정은 평화의 대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유리하게 그은 국경선을 인정해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헬싱키협정에 명기된 인권 원칙은 공산권내 민주화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미중 데탕트 이후 집권한 등소평도 정치·경제 개혁에 나섰다.

반대로 인권이 평화의 증진에 기여하기도 한다. 국제조약에 인권이 명기된 것은 유엔 헌장이 처음이다. 그러나 분쟁의 방지를 위하여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관행은 역사가 길다.
 

 

서양에서는 고대 다신교 시대에만 해도 종교 갈등이 흔치 않았다. 로마가 이집트나 시리아, 켈트족이나 게르만족을 정복했을 때 로마인의 신들은 속주민의 신들과 동거가 가능했다.

그런데 조로아스터교, 유대교를 시작으로 기독교, 이슬람교 등 일신교의 확산은 새로운 분쟁거리를 낳았다. 자신들의 신 이외에 신은 없다고 믿은 정복자들은 노골적 폭력이나 조세, 상속 법제를 통하여 정복지 주민들의 개종을 종용했다.

근대 유럽에서는 서방 교회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쪼개져 서로 광란의 학살극과 마녀재판을 벌이다가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 주권국가와 종교관용으로 평화를 되찾았다. 국제법학자 맬컴 에반스 교수에 따르면 유럽 각국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들을 비롯한 평화조약들에서 서로 따먹은 영토의 주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한편 시민혁명 이후 주권재민 원칙에 입각한 민족국가들은 국내에서는 소수민족의 동화, 국외에서는 동족 보호나 병합을 꾀하는 ‘내로남불’을 실천했다. 종교·민족 갈등은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래서 1920년 설립된 국제연맹은 조약의 보호를 받는 소수집단들로부터 조약 위반에 대한 청원을 받았고, 상설국제법원(PCIJ)은 조약위반 여부를 판단했다. 1945년 이후 유엔은 남아공 백인정권의 인종분리, 불가리아·헝가리·루마니아 공산정권의 종교탄압 등을 제재했다. 국제평화에 대한 위협이라는 논리였다.

이라크, 시리아, 예멘 내전은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충돌이다. 이에 따른 수백 만 명의 난민 유입으로 유럽에서는 극우파가 득세하고 있다. 한국도 재일교포 차별과 법적 지위 문제는 오랫동안 한일 관계의 쟁점이었고, 동북 3성의 조선족 동화를 노린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반중 감정이 고조되기도 했다.

자유와 인권의 증진은 갈등 방지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한 여건 조성이라는 적극적 의의도 갖는다. 칸트는 일찍이 항구 평화의 조건 중 하나로 입헌 공화정을 제시했다. 실제로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 사이에 전쟁은 거의 없다.

자유선거는 유권자가 호전적 정권을 심판할 기회를 준다. 또한 의사결정이 군주나 독재자 1인에 맡겨지면 전쟁 개시는 그만큼 쉬워진다. 그래서 헌법은 민주적으로 뽑힌 대통령의 선전포고와 해외파병도 국무회의 심의(제89조), 국회 동의(제60조)를 요구한다.

아울러 인간의 생명, 자유, 재산과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사회일수록 이 모든 것을 위협하는 무력사용보다 외교나 국제법을 통한 분쟁해결을 선호하게 된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베트남전, 이라크전 당시 미국 언론은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나 포로학대를 폭로했고, 전세계에서 반전 운동이 일어났다.

대북 대화에서 인권 의제가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미 판문점 회담에서 아베의 요구로 일본인 납치 문제가 논의되었고, 한국계 미국인 3명이 석방되었다. 당장 북한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되긴 어렵지만 최근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최춘길·김국기 선교사와 탈북자 3명을 시작으로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부터 진전이 있으면 신뢰 형성에도 기여할 것이다.

1951년 거창 학살 당시 영국의 더타임즈는 사설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길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제 5.18 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아 남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서 동전의 양면인 평화와 인권이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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