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향판(鄕判) 부활보다 원로법관제 도입이 더 시급하다
상태바
[사설] 향판(鄕判) 부활보다 원로법관제 도입이 더 시급하다
  • 법률저널
  • 승인 2018.05.25 1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는 회원 1천38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5%인 1천46명이 특정 권역에서만 근무하는 지역법관인 이른바 향판(鄕判) 제도에 대해 반대했다고 밝혔다. 반대 이유로 ‘지역 토호와 유착하여 법조 비리가 발생 가능함’(31%), ‘재판의 불공정 시비로 도입 목적과 달리 사법신뢰도가 하락 가능함’(26%), ‘향판이 해당 지역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될 우려 있음’(24%) 등을 꼽았다. 향판 제도는 지역법관으로 임명된 판사가 특정 지역의 고법 관할에서만 10년간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인사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2004년 도입됐다가 2014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노역’ 판결 논란 등 지역사회와 판사의 유착 논란이 불거지면서 2015년 폐지됐다.

하지만 지난달에는 일선 판사들의 협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법관 의사에 기초한 장기근무제도가 시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서 향판과 유사한 ‘권역법관제도’로 변경해 향판 제도가 부활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향판은 일정한 지역에 오래 근무하면서 그 지역의 실정에도 밝고, 그 지역의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여 올바른 정보를 통해 범죄자들을 제대로 징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또한 재판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고 판사들의 주거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에서의 정경유착과 토호(土豪)들과 유착해 봐주기식 판결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소위 ‘현대판 원님’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향판 제도가 폐지된 것도 지역유지와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법의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를 심각히 야기했기 때문이다.

향판 제도가 있는 지역에서는 재력 있는 사람들이 주로 신청하는 보석 허가 비율이 다른 지역 법원보다 높다는 통계도 있다. 향판 출신 변호사들이 맡은 형사 사건 2심 재판은 1심 때와 사정이 달라진 게 없는데도 1심 형량을 깎아 주는 비율이 일반 사건보다 훨씬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집행유예 기간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피해 가려고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내리는 사례도 있다. 향판 제도가 공정한 재판에 어떤 순기능이 있는지 일반국민은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향판 제도 부활보다는 미국식 원로법관제 도입이 더 합리적이다. 현재 법원이 시행하고 있는 원로법관제도는 법원장을 역임한 법관들에게 ‘원로법관’이란 명칭과 1심 법원의 판사와 동등한 처우를 제공하면서 정년까지 1심 재판업무를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원로법관에도 65세의 정년이 적용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원로법관으로서의 재직기간은 불과 몇 년 정도에 그친다. 결국 원로법관제 도입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잠시 머물다 가는 ‘정거장’으로 인식될 여지가 많다. 또한 법원장까지 지낸 경력으로 1심 법원의 판사와 동일한 처우를 받으면서 아무런 제도적 뒷받침 없이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지적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재 법원의 원로법관제보다 미국식 원로법관제다 더 바람직하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는 종신직이지만 65세가 되면 은퇴하여 연금을 받거나 원로법관직을 선택할 수 있다. 판사가 은퇴한 후 원로법관을 선택한 경우 비상근으로 재판업무를 수행한다. 미국식 원로법관제는 고질적인 전관예우를 예방하고 능력 있는 중견법관의 손실을 막고 사법서비스의 수준도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재판의 신뢰도를 높이고 전관예우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정년 이후에도 원로법관으로 활동할 수 있어 변호사 개업에 대한 유혹이 적어 중간퇴직과 그에 따른 인재손실을 막을 수 있다. 나아가 경륜이 쌓인 법관의 능력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 중요 상고사건 기록 검토를 실력 있는 원로법관이 해준다면 대법관의 업무는 경감되고 재판이 보다 신속히 처리되어 국민을 만족시킴으로써 사법서비스 향상에 큰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