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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9)-경찰에서의 회복적 서클 《위드 유(With You)》
임수희  |  sooheelim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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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4  10: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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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질문이 너무 어려워요. ‘당신이 그 행동을 했을 때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누가 무엇을 알아주기를 원하시나요?’라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답하기엔 너무 말이 어려운 거 아닌가요?”

“서클 안에서 말해야 할 사람,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행자가 던지는 그 질문의 의미를 정확히 압니다. 당사자는 잘 알아듣고 자기가 할 말을 잘 합니다. 질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어요. 서클 안에서 작동하는 질문이 갖는 힘이죠.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 줍니다.”

갸우뚱 갸우뚱하면서 열심히 질문하는 한 참가자에게 강사 또한 성심껏 답변해 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살금살금 들어가서 조용히 뒷자리에 앉는 순간, 둥그런 원 안에서 후끈하게 돌고 있던 토론과 배움의 열기가 훅 느껴졌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방해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한 순간에 날아갔지요. 한 사십 명쯤 둘러 앉아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워크샵 공간에서 그 서클 안에, 참관하러 간 저 마저도 금방 빨려들어 갈 것 같았습니다.

2.
지난 번 ‘회복적 사법’ 여덟 번째 이야기, ‘갈등을 선물로 바꾸어 주는 《회복적 서클》’편을 혹시 보셨는지요. <비폭력평화물결> 박성용 목사님의 회복적 서클을 소개해 드리면서 학교 현장에서 회복적 서클이 학교폭력 사안에 적용될 수 있고 교사들이 서클 진행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었지요.

그런데 교사 뿐 아니라 경찰도 회복적 서클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서 저는 박성용 목사님이 마침 경찰들과 회복적 서클 워크샵을 한다는 춘천으로 주저 없이 달려갔습니다. 대체 어떤 경찰들인지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경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형사! 정의감에 불타 범인을 잡으러 집요하게 찾아다니고 나쁜 범죄자를 반드시 잡아다 수갑을 채워 유치장에 넣으며 ‘이제 너는 응분의 죄 값을 치르라!’고 하는 영화 <강철중>의 설경구 같은 모습 아니던가요?

그런데 경찰이 회복적 서클을 한다니요. 형사 양반이 범죄자, 피해자와 함께 둘러 앉아 그 사이에서 질문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주선하는 모습이라니, 쉽게 상상하기는 어려운 장면이었으니까요.

청명한 어느 5월 오후 그렇게 저는 휴가를 내고 천안에서 춘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더 파랗게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강원지방경찰청의 ‘회복적 서클(Restorative Circle) 훈련 실습’ 워크샵 장소를 방문했지요. 감사하게도 참관 기회를 얻어 함께 한 자리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교육을 받고 연습을 하는 젊은 경찰들을 보며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3.
강사들과 참가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두 분이 있어 여쭤보니, 경찰이면서 워크샵 보조 강사를 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하더군요. 한 분은 속초에서 온 김광영 경위님, 또 한 분은 태백에서 온 김정식 경위님이었습니다.

어떻게 경찰이 이런 워크샵 보조 강사를 할 수 있냐고 여쭈니, 두 분은 이미 2014년부터 회복적 서클 진행자 교육을 받고서 현장에서 이를 적용하며 학교폭력 등 사건을 해결해 오고 있다는 놀라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2014년 3월부터 강원지방경찰청에서는 백두용 경정님이 주축이 되어 <너와 함께(위드 유, With You)>라는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경찰들이 직접 <비폭력평화물결> 박성용 목사님의 회복적 서클(Restorative Circle) 기법을 기반으로 한 진행자(Facilitator) 교육을 받고서, 현장에서 학교폭력 등 주로 소년 사건에서의 다양한 갈등상황을 회복적 사법 패러다임에 기반하여 해결해 오고 있다는 겁니다.

‘위드 유’라는 명명은 최근 미투 운동과 함께 새롭게 불리고 있는-미투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함께 연대하겠다는-사회운동과도 우연히 이름을 같이 하는데요. 강원 경찰들은 어떻게 미래에 ‘위드 유’가 유행(?)할 줄 알고 벌써 3년여 전부터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요.

어쨌든 2014년 한 해 동안의 위드 유 통계를 보니, 강원 지역 11개 경찰서가 총 111건의 대화 모임을 진행했는데 그 중 108건에서 관계회복과 화해 등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건 유형을 보니, 폭력, 모욕, 따돌림, 갈취, 상습괴롭힘, 가출 등 가족문제, 사이버폭력 등 다양했습니다.

4.
혹시 이 대목에서, 경찰이 개입해서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를 했다거나 갈등을 해결했다는 말이 긍정적으로 들리기 보다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대충 무마했다거나 적당히 합의를 시켰다는 말로 오해하는 분이 계실까요?

그것은 전적으로 ‘회복적 사법’의 이념 또는 그 기법 중 하나로써 ‘회복적 서클’의 진행자의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오해일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즉 ‘회복적 사법’은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내지 않은 채 대충 무마하고 사건을 덮는 것이 아니라, 가해행위자가 자신의 행위의 결과나 영향의 실질을 진정으로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처벌에 국한되지 않는 실질적 책임을 인수할 가능성을 여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응보적 처벌만으로 다할 수 없는 진정한 정의를 구현해 내는 것이거든요.

또한 ‘회복적 서클’의 ‘진행자’는 ‘상담’이나 ‘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간단하고 필요한 질문을 통해서 참가자들로 하여금 대화를 이어가고 이해를 확장시켜서 결국 마음을 이어 주고 그 공동체의 해법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할 뿐이거든요.

5.
“경찰은 수사를 하는 지위에 있는데, 피해자든 가해자든 수사를 받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과 사이에서 대화를 연결시키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 그것은 일종의 역할 갈등이 있을 것 같고, 어찌 보면 문제 해결을 할 당사자가 아닌데 개입한다는 균열이 있지 않은가요?”

워크샵이 끝나고 백계장님과 두 분 경위님을 모시고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허허 문제 해결이요? 우리가요?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서클이 열리고 질문을 하고 대화가 진행되면, 자기네가 다 말하고 자기네가 다 해결하는 걸요.”

세 분이 입을 모아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강원경찰은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당신이 열쇠를 쥐고 있어요(You Have the Key). 당신은 힘을 가졌어요(You Have the Power)!'라고 쓰인 뒷장을 보여주며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회복적 서클을 열면요. 그 공동체 안에서의 문제가 그냥 저절로 드러납니다. 진행자가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오롯이 드러나요. 대화가 진행되면 그 공동체는 스스로 문제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해결 방법도 스스로 찾아 나가는 거죠. 어찌 보면 그 갈등은 그 문제를 드러내게 하기 위해 생긴 건지도 모르겠어요. 갈등을 통해서 공동체가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한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거죠. 대화 모임인 서클 안에서 그 가능성이 열리는 거예요.”

그리고서 백계장님은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공동체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길이 있는데, 어찌 보면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포크레인으로 막고 있는 형국인지도 모르겠어요.”

6.
사건이 발생하고 입건되는 초기 단계, 즉 경찰 단계에서 회복적 사법이 시도되면 좋을까요? 나쁠까요? 아니,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사법절차 초기인 경찰 단계에서 회복적 사법이 적절히 시도되고 잘 작동되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요? 어떤 특별한 장점이 있을까요?

여러분이 쉽게 상상하실 수 있는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경찰에서의 회복적 사법, 위드 유 얘기에서 더 나아가서 좀 더 넓게, 좀 더 깊이 이어가 볼까요? 다음 회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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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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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낭화로 2018-06-26 13:37:20

    경찰에서의 회복적 사법이야기 자체도 일반국민들의 상식을 벗어나지만 ,놀라운 성과뿐아니라 스스로 찾아간다는 해결방법이 더욱 흥미롭네요.
    법정에서 출발한 회복적 사법이야기가 우리와 함께 실생활에서 살아움직이는 이야기가 될줄은 어느 독자도 예상치 못하였을 겁니다. 계속 GO 부탁드립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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