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남북미의 3각 관계와 중매자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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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남북미의 3각 관계와 중매자 한국
  • 신희섭
  • 승인 2018.05.1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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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8년 5월은 대한민국에게 '중요한 순간(critical moment)'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판이 뒤집어 질수도 있는 상황이다. 판문점회담에서 만들어진 평화의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북미회담으로 이어지고 비핵화를 이루어 한반도 갈등의 역사가 전환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그것이 가능할지를 두고 우리는 논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각계각층의 지력을 최대한 모아야 한다. 자기 당파의 이익을 배제하고.

북한은 5월 16일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소함으로서 판을 흔들고 있다. 북한은 ‘맥스선더’훈련과 ‘태영호 공사’의 국회기자회견을 이유로 들었다. 기세를 올려서 북미회담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엄포도 놓았다. 북한을 들여다보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이 상황은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충분히 예상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의 외교행태의 재림 정도.

북한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몸값을 올리고자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근거로 쓰거나 판을 차버릴 수 있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빈자의 역설’ 때문이다. 너무 가진 것이 없어서 미래가 없다는 태도. 그래서 어떻게 극단적으로 나갈지 모른다는 협박이 상대방에게 먹히는 것이다. 만약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불 정도를 넘어선 상황에서 북한에 국제제재가 가해졌다면 북한 인민들이 받는 고통은 지금(세계은행 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 1,074불)국민소득과 비교할 때 3배이상 월등히 컸을 것이다. 만약 북한이 국민소득이 6,000불을 넘어선 상황이고 국제교류로 먹고사는 상황이었다면 주민들이 느끼는 고통은 단지 6배가 아닐 것이다. 체제를 붕괴시킬 정도로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너무 가진 것이 없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이 북한을 무섭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신도 자신이 어떻게 할 줄 모르겠다는 태도. 마치 중 2병을 경험하는 아이처럼.

북한이 이렇게 판을 흔들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래도 북미간의 회담은 성사될 것이다. 북한이 처한 상황은 북한이 판을 깨고 다시 제재를 받으면서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협상-파국위협-보상획득’ 전략은 비핵화합의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이슈를 새롭게 정의하고 새로운 세부 이슈를 만들어서 보상을 받으면서 내부 주민 통제를 다질 것이다. 그래서 미국을 짜증나게 할 것이고 대한민국을 괴롭힐 것이다. 이 또한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천성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

현재 상황에서 문제의 본질은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구조가 남한이 주도하고 있는 남북미 ‘3각 관계’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3각 관계’를 풀어본 적이 별로 없다. 1994년 제네바합의는 북-미 양자관계였다. 1998년 대포동미사일 문제도 북-미간 문제였다. 2002년부터 불거진 2차 핵 위기는 처음에는 북중미 3자회담이었다가 이후 6자회담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남과 북은 1991년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1992년 비핵화선언을 할 때 양자해법을 모색했었다. 이후 미국을 끌어들여서 남북미 3자간에 문제풀이를 시도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3각 관계’의 복잡성이다. ‘3각 관계’는 남북관계 따로, 한미관계 따로, 북미관계 따로 각개 격파 식으로 진행되는 것과는 다르다. 물론 회담은 양자 간에 개별적으로 진행되지만 3자 관계는 ‘동적인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관계들의 결합과는 다르다.

‘3각 관계’에서는 국가 간의 쌍(dyadic relation)이 총 3개가 만들어진다. 즉 양자적인 대화가 3개 만들어지며 3자가 같이 하는 경우가 하나 있다. 양자적인 관계들의 조정과정을 거치면서 3자가 동시에 만나 합의를 이룰 수 있다. ‘3각 관계’가 어려운 것은 참여한 행위자들의 목적과 목적의 절박함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입장은 이 판을 조정해야 하는 주선자이다. 만약 소개팅을 주선해본 경험이 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만나게 해 주었는데 잘못되면 분노의 화살은 주선자 혹은 중매자가 맞는다.

현재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그렇다. 문재인정부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가장 위태위태하게 주시하고 있다. 북미간의 회담이 결렬이 되거나 판이 뒤집어지면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껏 격앙된 남북화해 분위기는 정부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만에 하나라도 일이 엎어지면 국내적 저항과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내부의 진보와 보수간 정치적 갈등은 더욱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6.13 지방선거일 하루 전인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은 북한의 행동 하나 하나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애가 타는 주선자가 될 여지가 높다.

그럼 지금 불안 불안한 3각 관계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자해지의 정신이 중요하겠지만 이미 북한과 미국이 만나도록 판을 열어주었으니 그 과정에 대해서는 “쿨” 해야 한다. 결과를 통제하겠다는 생각으로 조바심을 내면 북한에게 말린다. 게다가 미국에게도 말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협상도 탈퇴해버린 인물이다. 중동질서라는 거대한 판에서도 쿨하게 행동하는데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더 쿨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냉정하게 남-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판을 미국도 이용할 수 있다. “할 만큼 했으니 강경정책밖에 없다.”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상회담을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황이 틀어지고 파국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정부는 대비해야 한다. 현재는 북한이 급하기 때문에 결국은 북미정상 회담으로 가겠지만, 비핵화의 최종 결과는 알 수 없다. 리비아의 경우도 비핵화까지 22개월이 걸렸다. 북한처럼 핵 개발을 1980년대부터 주도한 상황에서 사찰하고 완전폐기로 가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중간 중간 도처에 암초들이 깔려 있다. 중매를 한 입장에서 당사자가 이혼하는 것 까지 어찌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경우의 수를 많이 가지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일관성 있게 정책을 만들되 평화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거는 자세는 피해야 한다. 로마인들이 말한 것처럼 준비된 자에게 평화가 오는 것이다. 중매자는 쿨해야 한다. 전호번호는 서로에게 건넸으니 잘 사귀어 보기를 바라는 것. 욕먹을 각오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은 담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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