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62)-‘재벌 갑질’, ‘재벌 오블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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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62)-‘재벌 갑질’, ‘재벌 오블리제’
  • 강신업
  • 승인 2018.05.1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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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인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의 정신에서 비롯된 말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 사회 고위층은 공공봉사와 기부·헌납 등을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여겼다. 특히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매우 확고해서 귀족들은 앞 다투어 전투에 참여하다가 너무 많은 수가 희생된 나머지 로마 건국 후 500년이 지날 즈음에는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초기의 15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기득권 지배층의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전쟁과 같은 총체적 국난을 맞아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역량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했다. 영국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최근 포클랜드전쟁 때는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미국의 경우 6·25전쟁에 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고,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아들은 육군 소령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6.25 전쟁 등에서 사회지도층이 특별한 모범을 보였다는 얘기를 별로 듣지 못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전통이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고사하고 소위 ‘높은 자’들과 ‘가진 자’들의 갖가지 갑질과 비리가 국민의 분노를 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급기야 갑질 중의 갑질, 악질 갑질을 우리 국민들이 목도하고 말았다. 바로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각종 갑질이다. 조현민 물벼락 갑질로 시작한 나비효과의 파장이 한진그룹 총수 일가로 번지면서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의 갖가지 기상천외한 갑질이 드러났다. 이명희의 갑질은 경제·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상대적 약자인 회사 직원이나 가사 도우미, 운전기사 등 사회적 약자에게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매우 불량하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비행은 비단 갑질만이 아니다. 상속세와 해외 소득세 탈루, 밀수와 관세포탈, 외환거래법위반 등 각종 범죄 혐의까지 나타났다. 국민들의 분노와 박탈감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오죽하면 까도 까도 끝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한항공은 조양호 일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주식회사는 대주주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많다 하더라도, 기업에 금원을 출자한 주주,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 기업에 대출을 해준 금융권, 그리고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 모두의 것이다. 더구나 대항항공은 국호를 사명으로 이용하며 마치 유일한 국적기와 같은 대접을 받아왔다. 그런 면에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갖가지 갑질과 경영비리는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천민자본주의 행태를 보였다는 질책을 면하기 어렵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은 간단하다.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만큼 되돌려주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으니 먼저 앞장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공익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인들에게 정치인이나 군인 등 공무원에 준하는 공공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말도 있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재벌이 갖는 사회적 위상과 경제 권력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본보기를 보여야 할 사람들은 다름아닌 바로 재벌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로마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격언이 되고 이윽고 긍정적인 의미의 세계적인 말이 되었다. 그러나 우린 ‘재벌 갑질’이란 말이 대한민국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인 언어가 될까 걱정이다. 그렇잖아도 ‘재벌’이란 말이 이미 오래전에 국제영어사전에 오른 데 이어 얼마 전에는 ‘갑질’도 국제영어사전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대한민국의 재벌들은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거울삼아 특별히 모범을 보여서 제발 ‘재벌 갑질’이란 말이 국제영어사전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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