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독해 알고리즘 PSAT 언어논리'(7)- Ⅱ. 어떻게 풀까? -1. 정보 확인- 다양한 관점에 대한 쟁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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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독해 알고리즘 PSAT 언어논리'(7)- Ⅱ. 어떻게 풀까? -1. 정보 확인- 다양한 관점에 대한 쟁점 정리
  • 이유진
  • 승인 2018.05.1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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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남부고시학원 국어

다음 글에 나타난 견해들 간의 관계를 바르게 서술할 것은? (2013년 언어논리 인책형 7번)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자 데모크리토스는 자연의 모든 변화를 원자들의 운동으로 설명했다. 모든 자연현상의 근거는, 원자들, 빈 공간 속에서의 원자들의 움직임, 그리고 그에 따른 원자들의 배열과 조합의 변화라는 것이다.
한편 데카르트에 따르면 연장, 즉 퍼져있음이 공간의 본성을 구성한다. 그런데 연장은 물질만이 가지는 속성이기 때문에 물질 없는 연장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아무 물질도 없는 빈 공간이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데카르트에게 운동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움직임과 같다. 꽉 찬 물질 속에서 물질이 자리바꿈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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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에게 3차원 공간은 해체할 수 없는 튼튼한 집 같은 것이었다. 이 집은 사물들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비어 있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 ‘어딘가’가 바로 뉴턴의 절대공간이다. 비어 있으면서 튼튼한 구조물인 절대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체는 아니지만 ‘실체 비슷한 것’으로서, 객관적인 것,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라이프니츠는 빈 공간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와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뉴턴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정신과 독립된 객관적 실재로 보았던 반면 , 라이프니츠는 공간을 정신과 독립된 실재라고 보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동일한 장소’라는 관념으로부터 ‘하나의 장소’라는 관념을 거쳐 모든 장소들의 집합체로서의 ‘공간’이라는 관념이 나오는데, ‘동일한 장소’라는 관념은 정신의 창안물이다. 결국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관념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① 만일 공간의 본성에 관한 뉴턴의 견해가 옳다면, 라이프니츠의 견해도 옳다.
② 만일 공간의 본성에 관한 데카르트의 견해가 옳다면, 데모크리토스의 견해도 옳다.
③ 만일 공간의 본성에 관한 라이프니츠의 견해가 옳다면, 데카르트의 견해는 옳지 않다.
④ 만일 빈 공간의 존재에 관한 데카르트의 견해가 옳다면, 뉴턴의 견해도 옳다.
⑤ 만일 빈 공간의 존재에 관한 데모크리토스의 견해가 옳다면, 뉴턴의 견해는 옳지 않다.

③ 4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공간의 본성이 독립된 실재임을 부정한 반면, 데카르트는 공간을 독립된 객관적 실재라고 보았다.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되는 관계로, 라이프니츠의 견해가 옳다면 데카르트의 견해는 옳지 않다.

[오답해설]

① 4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턴은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공간을 독립된 객관적 실재로 보았기 때문에, 라이프니츠의 주장과 모순 관계에 놓여있다.
② 1,2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본성을 ‘연장’ 내지 ‘퍼져있음’으로 보았기에, 빈 공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1문단에 제시된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은 ‘빈 공간’을 전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그가 빈 공간의 존재를 인정함을 판단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가 공간의 본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지문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았으나, 빈 공간의 존재 여부에 관해 데카르트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므로 공간의 본성에 관한 데카르트의 견해가 옳다고 해서 데모크리토스의 견해가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④ 데카르트는 빈 공간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뉴턴은 빈 공간의 존재를 긍정하므로 뉴턴과 데카르트의 주장은 모순 관계에 놓여있다.
⑤ 데모크리토스와 뉴턴은 모두 빈 공간의 존재를 인정한다. 따라서 빈 공간의 존재에 관한 데모크리토스의 견해가 옳다면, 뉴턴의 견해 역시 옳다.

A와 B의 견해 차이를 가장 잘 기술한 것은? (2013년 언어논리 인책형 24번)

A: 진화론이 인간에 대해 설명할 때 동원하는 두 개의 핵심 개념은 ‘생존’과 ‘번식’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행동, 가치, 목표를 다 설명할 수 없다. 현대 생물학이 인간 존재와 그의 행동에 대한 모든 답을 가진 것처럼 발언하는 순간, 인문학은 생물학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물론 인간도 동물이고 생물인 이상 생물학의 차원을 떠날 수는 없다.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생물학의 차원을 공유한다. 인간의 심리, 행동방식, 취향과 습관도 생물학의 차원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의 관심 대상은 이런 차원 위에 만들어진 독특한 세계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문학의 핵심 관심사이다. 말하자면 인문학은 인간의 고유성을 말해주는 층위와 지점들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사회․정치․윤리의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가령 평등이나 인간 존엄과 같은 사회 원칙과 이상을 생각해 보자. 인간 사회에 이러한 가치와 규범이 유효해야 한다는 요구는 진화의 결과라기보다 선택의 결과이다. 그런 점에서 분명 인간에게는 생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물학 너머의 차원이 있다.

B: A의 생각은 ‘생물학’이라는 말에서 유전자 결정론을 연상하기 때문에 나왔다. 한 인간은 유전과 환경 사이의 관계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한다. 유전자에 의해서 발현되는 형질들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생물학에 포함된다. 그래서 생물학에는 생리학, 생화학, 분자생물학, 신경생물학, 생태학, 환경생물학, 우주생물학 등이 포함된다. 결국 우리 삶 전체가 생물학의 차원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생물학 너머의 차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법학은 인간의 법률 행위를 연구하는 인간 생물학이고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 행위를 연구하는 인간 생물학이다. 모든 학문은 인간 생물학의 일부이다.

① 한쪽은 유전자 결정론을 받아들이고 다른 쪽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② 한쪽은 생물학의 역할을 부정하고 다른 쪽은 생물학의 역할을 높게 평가한다.
③ 한쪽은 인간 삶에 대한 모든 탐구가 생물학의 영역 내에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이에 반대한다.
④ 한쪽은 인문학이 생물학의 차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사회과학의 차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⑤ 한쪽은 인문학이 사회․정치․윤리의 차원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인문학이 그런 차원과 구별된다고 생각한다.

A와 B는 ‘생물학 너머의 차원이 존재하는지의 여부’에 관해 견해가 대립된다. A는 생물학 너머의 차원이 존재함을 긍정하는 반면, B는 생물학 너머의 차원이 존재함을 부정하며,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은 ③이다.

[오답해설]

① A와 B의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입장은 지문을 통해 알 수 없다.
② B가 인간 삶의 전부를 생물학의 차원 안으로 포섭시킨다는 점에서 생물학의 역할을 높게 평가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A가 생물학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A 역시 ‘인간도 생물학의 차원을 떠날 수 없다.’라고 함으로써 생물학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④ B가 ‘인문학이 생물학의 차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문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A가 ‘인문학이 사회과학의 차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문을 통해 판단할 수 없다.
⑤ ‘인문학과 사회·정치·윤리의 차원 간 관계’에 대한 A와 B의 견해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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