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이야기 8-갈등을 선물로 바꾸어 주는 《회복적 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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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이야기 8-갈등을 선물로 바꾸어 주는 《회복적 서클》
  • 임수희
  • 승인 2018.05.1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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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회복’의 의미는 단지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더 온전한 자아나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단순한 치유가 아니에요.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회복’을 통해서 더욱 온전하게 하고 서로를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이지요.”

토요일 늦은 오후, 효창공원 산책로를 걷다 말고 잠시 흙바닥에 시선을 꽂은 채 발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회복적 서클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요?”란 질문에 대해, 박성용 목사님이 위와 같이 답변하신 깊이 있는 말씀을 듣고서, 순간 그 단어 하나 하나가 영혼을 때려오는 것 같은 울림을 느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 하고 있는 ‘회복적 사법’, 오늘이 벌써 여덟 번째인데요. 지난 일곱 번째 이야기 :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공동체 대화》편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법 절차를 잠깐 벗어나, 학교 현장에서의 분쟁과 갈등 해결을 위해 매우 실효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 대화 모임인 회복적 서클에 대해 소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서의 회복적 서클 이야기를 하자면, <비폭력평화물결>의 박성용 목사님을 빼 놓을 수가 없지요.

그 푸르던 토요일 오후, 저는 회복적 서클에 대한 얘기를 청해 듣고자, 박목사님 사무실 근처로 찾아가 함께 효창공원을 걸으며 거의 5년 만에 더 깊어진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13년에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사업을 할 때 함께 작업했던 이래로 말이지요.

2.
제가 처음 회복적 서클과 박목사님을 알게 된 것은, 가사사건을 담당하면서 어떻게 하면 갈등과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를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었던 시절인 2011년 겨울이었습니다.

영국 사람이지만 브라질 빈민가에서 오랜 기간 마약갱스터 청소년들의 대화모임을 해 왔던 도미니크 바터(Dominic Barter)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회복적 서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진행자(facilitator)들이 한국에 왔는데 박목사님 그룹이 그 워크샵을 주관하였습니다. 저는 반나절 정도 참여하면서 처음 회복적 서클이란 것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무슨 종류의 서클이에요? 저도 가입할 수 있나요? 하는 농담을 하면서 워크샵을 참관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둥그렇게 둘러 앉아 진행자가 어떤 질문을 하고 그에 따라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인 회복적 서클, 그 공간 안에서 대체 무슨 갈등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생소하게만 보였습니다.

그 후 2013년도에 저는 부천지원에서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사업을 담당할 귀한 기회를 가졌고 당시 법원과 MOU를 체결하여 함께 했던 여섯 개의 회복적 사법 전문가 단체 중 하나가 박목사님의 <비폭력평화물결>이었지요.

그 성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 다음해인 2014년 가을에 도미니크 바터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서, 불과 3년 만에 비약적으로 한국 내 학교 현장 등에 퍼진 회복적 서클의 성과를 함께 축하하고, 서클진행자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워크샵이 열렸습니다.

그 때 도미니크 바터가 서울가정법원에도 잠깐 방문하여 강연을 했고 저도 함께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복적 서클이 단지 도미니크 바터만의 것은 아닙니다만, 그가 90년대 중반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마약갱청소년 집단과 대화모임을 해 오면서 구축한 대화 모델을 우리나라 회복적 정의 활동을 하는 실천가 그룹이 받아들여 실제로 우리 학교나 시민사회 영역에 적용해 온 짧은 역사는 바로 위와 같습니다.

그 대화 모델은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한 질문들과 대화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갈등 현장에서 매우 강력한 효과를 보이며 퍼져 갔고 그러한 실천가 그룹의 중심에 박성용 목사님의 <비폭력평화물결>이 있어 왔습니다.

3.
“2011년도에 제가 처음 회복적 서클을 접할 때만 해도 초기 도입 단계였는데요. 그동안 실제로 성과가 좀 있었나요?”

이 질문을 한 것을 저는 금방 후회하게 되었고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 하였나 좀 반성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박목사님은 <비폭력평화물결>을 통해 서클 진행자를 양성하고 또 그 분들과 함께 학교 현장 어디든 요청이 있는 곳을 방문하여 실제로 회복적 서클을 진행하고, 수많은 케이스에서 실제로 문제상황과 갈등의 해결 및 상상하지 못했던 좋은 결과의 출현을 목격하였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갈등과 분쟁 해결을 위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피해자-가해자 조정 모델(Victim-Offender Mediation, VOM)이잖아요. 그런데 이 모델의 문제는 훈련된 조정자(Mediator)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노련한 조정자를 배출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학교 현장에는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와 갈등 상황이 계속 발생해요. 선생님들이 바로 해결에 나서야 하고 준비할 시간도 없이 투입됩니다. 바쁜 학교 선생님들이 언제 수십, 수백 시간의 교육 및 훈련을 받을 수 있겠어요?

회복적 서클은 훈련된 조정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답은 공동체가 가지고 있다는 믿음 하에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진행할 진행자만 있으면 돼요.

회복적 서클의 대화 모델은 단순하고 몇 시간 그 진행방법을 익히는 것으로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를 요구하지 않아요. 그래서 학폭 담당 선생님들이, 또는 담임선생님들이 몇 시간을 배우고 바로 아이들 사이에서 서클을 진행할 수 있어요.”

회복적 서클 안에서 갈등과 문제는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도움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동체에 대한 신호이고, 공동체는 스스로 자기를 돌볼 수 있는 힘과 자원이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을 가지고 진행자가 구조화된 열린 질문을 하면서 서로 경청하는 안전한 소통 공간 내에서 통합된 진행 순서대로 나아가기만 하면 공동체는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 가고, 과거에의 회귀가 아닌 온전하고 건강한 새로운 모습을 갖추어 간다는 것, 결국 갈등이 선물로 뒤바뀌는 놀라운 서클의 역동(Dynamic)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박성용 목사님 목소리에서 저는 경쾌한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사들만 회복적 서클을 배우는 게 아니에요. 벌써 2014년경부터 경찰들도 이걸 배워서 대화 모임을 하고 있어요.”

“네에? 경찰이 회복적 서클을 한다구요?”

“그럼요. 강원지방경찰청에서 2014년부터 위드유(With You)라는 대화 프로그램을 학교 폭력 사안 등에 적용하고 있는데 그게 회복적 서클 모형을 기반으로 한 거죠. 5월에도 춘천에 가서 경찰들과 서클 진행에 관한 워크샵을 한답니다!”

(회복적 서클 이야기는 현장을 달리 하여 다음 회에서도 계속 됩니다. 회복적 서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께 책을 소개해 드리자면, <회복적 서클 가이드북> 박성용, 대장간(2018). <서클 프로세스> 케이 프라니스 저, 강영실 역, KAP(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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