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장영민 교수의 법철학 산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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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장영민 교수의 법철학 산책 (1)
  • 장영민
  • 승인 2018.04.2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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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장
前 한국법철학회 회장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의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진정한 공적 이성이 활짝 꽃 필 것을 고대하며

한 사회에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사회에 전(全) 사회적으로 결정해야 할 의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민주사회라고 해서 그러한 사회적 의제가 자동적으로 결정되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화가 될수록 그 결정을 위한 치열한 논의가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는 공론장에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행해져야 한다. 논의의 참여자는 (개인적 이해에 급급한) ‘사적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인류’의 삶을 고려하는 이른바 ‘공적 이성’을 사용하여야 한다.

<법조매거진 LAW & JUSTICE>라는 새로운 매체의 창간은 이런 의미에서 큰 뜻을 갖는다. 그것이 ‘법’에 대한 매거진이라는 점에서, 공적 이성의 사용에 누구보다도 익숙하고, 나아가 공적 이성의 사용에 의무를 가지고 있는 법률가들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그 소재가 법률에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이루어지는 논의의 효과가 법률사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헤겔은 그의 <법철학>에서 고사(古事)를 인용하면서 말한다: “자기의 자식을 어떻게 하면 가장 훌륭하게 성장하게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어떤 아버지에게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것은 그 아들을 ‘훌륭한 법을 가진 나라의 시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공적 이성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공론장의 구조변화>라는 책을 쓴 하버마스는 (칸트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한다: “공론장은 시민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을 연결하는 가교이며...공론장은 자유로운 이성의 공적 사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그 모델은 ‘순수한’ 이성의 활동에 전념하는 철학자들이다.” 우리는 여기에 ‘보편적으로’ 사유하는 법률가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류의 역사는 법률가보다는 철학자 내지 사상가의 예를 더 풍부하게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 예는 인류사의 위기 내지 전환기에 잘 나타난다. 계몽기라고 부르는 때가 바로 그 때이다. 인류사에는 두 번에 걸친 계몽기가 있었다. 한번은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의 계몽기이고, 다른 한 번은 17, 8세기의 근대 계몽기이다. 두 계몽은 모두 기성의 사고방식과의 ‘단절’을 추구하는 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그리고 두 운동의 중심에는 모두 ‘인간’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계몽기는 우주만물의 운행 법칙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폴리스 사회의 운행의 원리가 무엇인가로 관심이 전환된 시기이다. 자연의 운행법칙 속에서 인간 사회의 운행법칙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당시를 대표하던 사상가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선언은 자연의 운행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의사결정에 의하여 설정되는) 규범이 사회운영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인간’은 법률가들이 잘 알고 있는 말로서, 그 사회의 ‘평균인’을 의미한다(물론 이는 그리스의 ‘시민’에 국한된 말이었지만). 결국 이 말은 그리스에 다수결형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다는 뜻을 갖는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반격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회운영방식은 필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중우정치’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독배사건은 이를 실증해 주었다. 바로 이것이 공적 이성의 사용이 실종되었을 때 나타나는 참화이다.

근대 계몽기 역시 인간관의 전환에서 촉발되었다. 다만 이때에는 자연질서로부터가 아니라 신으로부터 인간에로의 시선 변화가 있었다. 중세적 인간관은 원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능력에 대한 저평가가 전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갈릴레이, 뉴튼(갈릴레이가 죽은 해에 뉴튼이 태어난 것은 역사의 우연일까?)으로 이어지는 근대 자연과학의 발달, 특히 만유인력의 법칙의 발견은 인간의 이성이 허접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근대적 계몽은 바로 이에 고무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계몽사상가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는 중세와 구체제의 어둠을 헤치고 당시로서는 첨단 지식(특히 기술)을 보급하기 위하여 그 정보를 담은 백과사전을 출간하였고, 볼테르는 구체제적, 봉건적 함의를 가진 말들을 야유하는 나름의 사전인 ‘철학사전’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계몽의 효과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공통적으로 민주화의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근대의 계몽사상가들의 이성의 공적 사용을 위한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계몽이란 “미성숙(=미성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보고, 그 방법으로 “너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고 역설하였다. 또 그는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실제로는 맞지 않는다는 속설에 대하여”라는 글을 써서 자신의 도덕이론 및 정치이론이 현실에서 소용이 없다는 비판에 응답하였다.

사실 우리는 숨가쁘게 지나온 발전과정과 민주화의 과정에서 이러한 기본적인 많은 문제들을 정리할 겨를이 없이 지나쳐 왔다. 이제 이러한 물음을 하나하나 던져 보면서, 공적 이성을 가지고 이 문제들과 계몽적 대결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법조매거진 LAW & JUSTICE>는 바로 이러한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념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이성을 사용하여’ 되새겨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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