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남북정상회담, 문재인, 김정은, 정주영, 윤이상, 삶은 달걀 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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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남북정상회담, 문재인, 김정은, 정주영, 윤이상, 삶은 달걀 반 개
  • 오시영
  • 승인 2018.04.2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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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필자는 열다섯 살 생일에 냉면을 처음 먹어 보았다. 50년 전 일이다. 아버지께서 막내 생일이라며 사 주셨던 함흥냉면은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나 싶을 정도로 어린 나에게 깊은 식감을 기억시켰다. 그때 갔던 식당 이름도 함흥냉면이었는데, 함흥냉면 이외에도 평양냉면을 함께 팔고 있었다. 사장님이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이라며 이 집 냉면이 맛있다는 아버지의 설명을 혀로 만끽할 수 있었다. 최고의 별미가 짜장면이었던 시절, 함흥냉면의 찐득하고 쫄깃한 씹힘 맛은 짜장면과 영판 다른 맛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먹었던 함흥냉면은 비빔냉면(북한 진짜 함흥냉면을 먹어보지 못해서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다)으로 굉장히 매워 따뜻한 육수로 매운 맛을 가셔가며 먹었지만, 그 매운 맛이 묘하게 혓바닥에 오래 남아 깊은 식감을 안겨주었다. 그날의 함흥냉면에는 지금의 비빔냉면처럼 삶은 계란 반 쪽에 소고기가 몇 점 올려져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에도 아버지께서는 함흥냉면집에 나를 데려갔고, 그날은 겨울엔 물냉면이 최고야 하시면서 평양냉면을 시켜 주셨다. 평양냉면 면발은 메밀가루와 전분을 7대 3 정도로 섞어 만들어서인지 함흥냉면보다는 덜 질겼지만, 역시 삶은 달걀 반쪽과 소고기 몇 점이 올려져있었고, 육수에 면발을 풀어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이후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은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고, 냉면을 먹을 때면 아버지 생각이 자주 난다.

오리지널 평양 옥류관 냉면이 오늘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장에 메인 음식이 될 모양이다. 이 냉면을 조리하기 위해 북측이 요리사까지 파견하였다고 한다. 지난 4월 1일 평양공연을 마친 우리측 연예인들이 평양 옥류관에서 진짜 평양냉면을 맛보고 그 맛에 감탄하였다고들 입을 모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 땅을 밟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급 영접을 받고, 우리 군의 사열을 받았다. 주적의 대상이었던 그가 우리 군의 사열을 받다니 경천동지할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만찬장에 면천 두견주와 문배주가 나왔다. 두견주는 진달래 꽃잎과 찹쌀로 빚는다. 김소월의 꽃, 바로 진달래꽃(두견화)으로 빚은 술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라는 바로 그 꽃이다. 하지만 그 꽃, 진달래꽃은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라며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는 꽃이다. 그러면서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오리다”라며 가시는 님을 사모하는 꽃이다. 두견주는 충남 당진의 면천면에서 생산되는 남한 고유의 술이다. 문배주는 또 어떤가? 밀과 좁쌀 등으로 빚어 문배나무 과실향이 나는 증류주이다. 평양 대동강 유역의 석회암층에서 솟아나는 지하수로 빚어졌다는 문배주는 남한으로 내려와 증류 및 숙성을 마치면 48.1도나 되는 독한 술이다. 두 술 모두 남쪽에서 현재 생산되고 있지만 남측 당진의 두견주와 북쪽 대동강 유역의 문배주 교합은 술 한 잔에 의미를 부여하는 탁월한 식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를 재료로 한 민어해삼편수가 나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쌀로 지은 밥과 쑥국이 나온다고 한다. 제1차,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두 전직 대통령의 고향에서 공수한 식자재를 이용한 음식을 만찬장에 올림으로써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확고히 함으로써 남북정상의 실천의지를 더욱 공고히 함과 동시에 쑥국을 올림으로써 한민족의 국조인 단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숨은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제왕운기, 동국여지승람 등은 환인(하나님)이 서자인 환웅이 인간세상을 사모하자 천부인 3개, 3천명의 무리를 주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 보내 사람을 다스리게 했고, 이때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곰의 소원을 들은 환웅이 쑥 한 자루와 마늘을 주어 100일 동안 굴속에서 지내라 했고, 이를 곰이 지킴으로써 여자의 몸이 되어 환웅과 하나 되어 낳은 이가 단군왕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고향 식자재 음식에 단군왕검신화 속 쑥으로 끓인 쑥국까지 하나의 조화를 이룬 만찬의 의미는 우리가 깊이 한 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가 얼마나 간절하고 진지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소떼를 직접 몰고 북한을 찾았던 고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의 소떼를 키운 충남 서산목장에서 키운 한우를 재료로 한 숯불구이가 올라오고,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통영바다에서 잡아 올린 문어로 만든 냉채요리가 나왔다. 고 정주영 회장은 1998년 6월 16일 자신의 서산목장에서 키운 소 500마리를, 1998년 10월 27일 501마리를 트럭에 각각 싣고 남북 분단의 경계를 허물었다. 아버지의 소 판 돈으로 고향 통천을 가출한 어린 시절의 빚을 갚고자 1001마리의 소를 몰고 방북하였던 것이다. 1000마리에 한 마리를 추가한 까닭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지원을 이어 가겠다는 염원을 담았던 것이었지만, 결국 그 이후 보수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계속 이어지지 못 하고 말았다. 보수세력은 왜 그렇게 비싼 돈(당시 소 값 및 트럭 가격 등 약 50억 원 정도)을 북한에 퍼주느냐고 항의하였지만, 당시 정주영 회장의 계산으로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으니, 미국 CNN을 비롯하여 세계 유수의 미디어가 이를 생방송 또는 중계방송 등으로 전 세계에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등 현대그룹을 홍보하는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광고비로 치면 그 몇 배가 남는 장사였다고 할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소 1001마리의 가격에 함몰된 우물 안 개구리 시각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정주영 회장의 마켓팅 홍보라는 사업가적 시각은 메워질 수 없는 간극이지만, 이를 계기로 현대자동차는 세계시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가난한 북한을 조금이라도 더 돕고자 1001마리의 소에 임신한 소를 많이 포함시켰다고 한다. 송아지를 낳으면 소 두 마리를 보낸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절한 마음이 금강산관광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끊겨 있으니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금강산 관광의 문도 열렸으면 한다.

윤이상 선생은 1967년 박정희 정권의 서슬 퍼렇던 시절 중앙정보부가 조작, 과장한 동백림(동베를린)간첩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유럽 등 해외에서 “동서양의 음악기법 및 사상을 융합시킨 세계적 현대음악가”라거나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고향 통영 땅을 밟지 못하다가 1995년 11월 베를린에서 타계하고 말았다. 윤이상은 음악을 통해 남과 북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고, 그는 우리 민족에게 바치는 절절한 호소와 충정을 담은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를 작곡하였다. 윤이상 선생은 1987년 3월에 이 곡에 대한 작곡을 완성한 후 고향인 대한민국에서 초연되기를 원했지만 대한민국에서 거부당한 후 1987년 10월 평양에서 초연될 수 있었다. 이 곡이 나온 후 20년이 지난 2007년 9월 16일부터 11월 10일 사이에 비로소 서울과 부산에서 연주됨으로써 그가 유언으로 남긴 한국 초연이 비로소 실현되었다. 재미지휘자 곽승의 지휘로 부산시립합창단과 부산시 3개 연합 합창단으로 이루어진 230여명의 연주단에 의한 남쪽의 초연이었다. 그의 아내 이수자 씨가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해 독일을 방문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약속한 대로 그의 유골이 지난 2월 23일 고향 통영 땅으로 돌아왔다. 살아서 오지 못한 조국에 유골로 돌아왔지만, 그의 고향 통영을 상징하는 문어는 흡반을 통해 목표물에 달라붙는다. 뼈가 없는 문어는 그만큼 유연성이 있다.

정주영의 소고기 숯불구이와 윤이상의 통영 문어 흡반은 또 다른 상징이다. 소떼를 통해 금강산관광사업이 개시되었던 것처럼, 한 발 한 발 천릿길도 묵묵히 무거운 짐을 지고 쉬지 않고 걷는 소처럼 민족 문제를 두 정상이 어깨에 걸머지고 풀어보자는 의지가 읽힌다. 어떠한 난관이 닥쳐오더라도 소등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집념이 보인다. 문어를 통해 문어가 오징어로 불리고 오징어가 문어로 불리는 남북 언어의 차이를 통일하자는 의미를 넘어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자는 의미를 읽을 수 있고, 뼈는 없지만 유연한 문어처럼 남북문제를 유연하게 풀어보자는 절충의 묘미를 엿볼 수 있고, 동시에 문어 흡반의 상징을 통해 달라붙으면 결코 떨어지지 않겠다는 집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음식이 어디 그뿐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유년시절 고향음식인 부산의 달고기구이와 김정은 위원장의 유년시절 음식인 스위스의 뢰스티(스위스식 감자전)를 식탁에 올려 두 정상이 어린 시절 회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순수한 동심의 마음으로 민족의 문제를 논의할 장을 마련해 보자는 상징성을 느낄 수 있다. 또 도미찜과 메기찜이라는 바다와 민물의 대표적 생선요리를 먹음으로써 강과 바다, 유구한 역사를 잇는 상징성을 유추해 볼 수 있고, 민족의 봄이라 명명된 디저트 망고무스를 단단한 껍질로 봉해두었다가 나무망치로 이를 깨뜨려 독도가 표기된 한반도지도 모양의 디저트를 내어 놓음으로써 한반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내외에 천명하는 효과를 통해 극일의 상징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백두대간 송이꿀차와 제주한라봉편을 최종 디저트로 내어 놓음으로써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됨을 상징하고 있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어떠한 형태의 종전선언이 있을지, 남북불가침선언이 있을지, 비핵화선언이 있을지, 남북합동연락사무소설치가 있을지, 경제협력교류와 이산가족상봉 등의 합의가 있을지 아직 명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중요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별스럽게 오늘 식탁의 메인메뉴를 살펴본 것은 그 식탁의 상징을 통해 배려의 마음, 정상회담에 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심중을 읽어보고자 함에 있다. 김춘수 시인은 그의 시 “꽃”을 통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속삭인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아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염원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고 마무리하고 있다.

만찬장에 나오는 음식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을 통해 속내를 고급스럽게 표출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속마음은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남북 간에 서로 의미가 되고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은 간절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진심을 아직은 인생을 알기에 인생 연륜이 짧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심조심, 한 자 한 자, 한 마음 한 마음씩 촘촘히 읽어내기를 필자는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진심이 통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어야 믿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만찬의 중심 음식은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에는 어김없이 삶은 달걀 반개씩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두 개로 쪼개진 삶은 달걀이 하나의 살아있는 달걀로 통합되기를 바란다. 두 개로 쪼개져 각각의 그릇에 담겨 있을 삶은 달걀이 하나의 살아 있는 달걀로, 통일의 물꼬를 트는 생명의 부화가 일어나기를 염원한다. 여전히 남쪽의 일부는 “이번 정상회담 역시 보여주기식 쇼”에 불과하다고 의도적으로 폄훼하고 남북정상회담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속내는 무망할 것이다.

오늘 저녁, 모든 국민이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에 행복하였으면 한다. 다들 야식으로 평양냉면을 한 그릇씩 먹으며 부강해진 국가경제와 통일조국을 염원하였으면 한다. 역사에 길이길이 기록될 참으로 행복한 하루가 될 것이다. 오늘은 참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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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7시 2020-10-04 22:01:42
전라도 사람들은 그냥 신안 섬노예가 제조한 천일염으로 간을 한 홍어삼합이나 생고기 설탕콩국수만 먹었으면 좋겠네요 ㅜㅜ
전라도 사람들이 뜬금없이 북한한테 잘보여 왕따 처지 벗어나려고 평양냉면 좋아하니까 평양냉면 좋아하는 저까지 전라도 취급받아서 너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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