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고독한 독서록 - 남아있는 나날
상태바
[LAW & JUSTICE] 고독한 독서록 - 남아있는 나날
  • 정재민
  • 승인 2018.04.21 23: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 재 민
소설가 / 前 판사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창간호(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고독한 독서록 : 여기서 ‘고독’은 중의적이다. 孤讀과 苦讀. 남들이 잘 안 읽는 책일지라도 홀로 읽겠다는 뜻과 깜냥에 버거운 책도 읽어보겠다는 뜻이 있다. [필자 주]

첫 ‘고독’의 대상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졌지만 진작부터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그 명성의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약 30년 전인 1989년 35세 나이에 출간한 이 소설이 부커상을 수상하고 앤소니홉킨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작가는 5살 때 가족과 영국으로 건너가 1980년대에 영국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래서 그가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일본이 수상한 것인지, 영국이 수상한 것인지 애매하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노벨상 수상자의 국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나도 글을 쓰는 입장에서 그의 ‘작가적 자아’의 국적이 일본인지 영국인지는 궁금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작가적 자아는 영국의 피와 일본의 피가 뒤섞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류는 일본인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이 영어로 영국의 이야기를 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본 소설을 읽는 것처럼 차분하고 절제되고 정돈된 분위기와 일본식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분명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향과 맛이 일본식 녹차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할까. 아마도 작가가 비록 5살에 영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계속해서 일본인 부모 아래서 자라는 가정환경의 영향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이어서 영국 명문가의 집사(butler)로 살아온 스티븐슨이다. 여기서 집사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가문의 모든 행정적인 일들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호텔의 총지배인 같은 존재이다. 영국의 국사에 큰 영향을 미치던 영국 최고 귀족가문 출신의 달링턴 경은 세계1차대전 직후 가혹한 배상금에 시달리던 독일의 처지를 이해해주려는 입장에 섰다가 세계2차대전이 끝난 뒤 나치 부역자로 몰려 몰락하는데, 그 흥망의 대조를 집사 스티븐슨의 시선에서 그린 것이 이 작품의 골격이다.
 

 

스티븐슨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엄(dignity)이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존엄은 주인에 대한 맹목에 가까운 충성과 멸사봉공의 헌신을 말한다. 일례로 그는 저택 안에서 자기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저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사를 챙기느라 더 바쁘다. 어느 전설의 집사가 호랑이가 저택에 들이닥쳤는데도 주인과 손님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호랑이를 제거하고 예정대로 만찬이 나오도록 했다는 일화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 정도로 우직하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존엄’을 지키면서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는 일을 하는 주인을 모심으로써 자신도 역사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산다.

문제는 자신의 주인이 결과적으로 나치 부역자라는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집사와 그의 삶은 존엄한가. 이 소설은 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고 집사가 감히 나서서 주인의 길을 막아설 수도 없고, 주인에게 어느 길로 가라고 말할 수도 없으며, 그 정도로 미래를 가늠할 능력을 가지기도 어렵다. 현실에서 그저 주인을 묵묵히 따를 뿐인 집사의 삶의 가치는 주인의 운명과 선택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집사이다. 총리도, 대기업 고용사장도, 변호사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의 인간은 자기 운명의 방향타를 대부분 주인의 손에 내맡기고 살아간다. 여기서 주인은 고용주일 수도 있고, 그때그때의 여건일 수도 있고, 사회와 역사의 흐름일 수도 있다. 나 역시 내 직장상사가, 내가 속한 조직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증진시키는 일에 복무하고 그 대가를 받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집사이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조직, 집단, 사회의 운명의 부침에 따라 나의 삶의 가치도 속수무책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다 스티븐슨처럼 불현듯 인생의 말년이라는 저녁놀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 직업을 내려놓고 그 석양을 바라보며 잠시 다리 뻗고 쉬는듯하다가 이내 죽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의 삶의 마지막에 남는 것들(The Remains of the Day)이다. 독서 내내 이 명백하고도 냉정한 삶의 진실이 석양의 붉은 기운처럼 내 가슴을 서글픔과 고독함으로 물들였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 모든 삶의 흥망성쇠에 그러한 마지막이 있다는 것이, 그 운명을 모든 인류가 공유한다는 것이 묘한 위로도 안겨주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