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이야기 7-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공동체 대화》
임수희  |  sooheelim2017@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12  10:18:38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학교폭력 때문에 학생들이 죽어 나가는 기사를 볼 때마다 미칠 것 같습니다. ‘나도 저렇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피하지 말고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지 말고 피해자들이 더 이상 죽어 나가지 않게 꼭 도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학창시절 초·중·고 10여 년간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폭행을 당했다는 한 청년이 청중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띄엄 띄엄 말을 이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해도 학교나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보복을 당했다, 수도 없이 자살 시도를 했었다, 후유증과 트라우마로 너무나 괴롭다는 청년의 말에 섞여, 장내에는 청중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2.
학교와 경찰에 대한 원망어린 말들의 여운이 아직 돌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말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피해학생 진술서를 읽으면 기가 막히고 마음이 먹먹해져서 돌덩이가 얹힌 듯합니다. 하지만 가해학생, 아니 ‘관련학생’이라고 해야죠. 최대한 중립적으로 대하고 사실을 밝혀야 합니다.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고 복잡한 학폭법 작은 조항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양쪽에서 격렬한 항의를 받으니까요. 나는, 나 같은 학폭 담당교사는 학폭 처리과정에서 학교에 서운한 것들을 받아내는 총알받이가 아닐까, 아프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목이 메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선생님은 다시 뜨문 뜨문 입을 엽니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피해학생 상처도 그대로, 가해학생 삶도 그대로입니다. 그러면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선생님의 탄식어린 말과 함께 청중들도 한숨을 토해 냈습니다. 옆에 앉은 아까 그 청년이 오히려 이 선생님을 위로의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3.
이어서 한 경찰관이 말을 시작합니다. “학교전담경찰관을 하면서 아무리 강한 처벌도 가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지 못한단 걸 알게 되었습니다. 처벌이 피해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도 않는단 것도요. 그런데 어찌 보면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상담전문가도 아닌 경찰의 오지랖이 선생님들의 역할을 침해하는 월권을 저지르지 않나 싶고, 또 어설픈 상담으로 오히려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나 우려도 됩니다. 학교 폭력 사건에 경찰이 개입하기보다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 학부모들 사이에서 교육적으로 아이들을 상담하고 지도하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어느새 그 경찰관의 말에 끄덕 끄덕 하고 있었습니다.

4.
지난 12월 어느 토요일 아침, 뺨이 탱탱 얼도록 찬 공기를 맞으며 찾아간 <공동체 대화> 모임 자리에서 저는 참을 길 없는 눈물로 얼었던 뺨이 벌겋게 부풀었습니다.

하기 어려운 얘기를 어렵게 어렵게 용기 내어 말해 준 이야기 손님들. 한 청년과 한 선생님, 한 경찰관, 그밖에 초대된 분들과 그 얘기를 들으러 와 주신 청중들. 그 속에는 선생님들, 학생들, 학부모들, 그리고 저 같은 참관자들도 있었습니다.

서로 상반되고 대립된 입장에 놓인 분들임에도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거기 모인 청중들 모두 마음을 열고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 갈등의 각 반대편 끝에 서로 멀리 있을 만한 입장이라 하더라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의 솔직한 마음을 내어 놓고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꺼내어 보여 주자, 입장 차이와 잘잘못, 옳고 그름을 넘어서서 그 아픔에 서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학교와 경찰을 원망하던 청년도, 무력감에 지친 선생님도, 역할 갈등으로 혼란스러워 하던 경찰관도,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학생들, 선생님들, 학부모들, 우리 모두가 서로의 아픔과 아픔에는 쉽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원인 분석과 대안 마련, 정책 제안 같은 논쟁과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오히려, 서로의 마음에 연결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새로이 함께 다시 시작해 볼 차분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한 어머니가 청중석에서 일어나, “눈을 마주치고 자세를 낮추고 피해자의 말을 잘 들어 주는 것부터 해 주세요. 사람의 고통은 논리로 해결되지 않아요.”라고 말하자,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 모두 반성 속에서 새롭게 잘 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같았습니다.

5.
‘대화는 세계를 창조한다’고 한 오토 샤머의 말에 영감을 얻고, ‘학교폭력 문제를 왜 당사자인 피해자를 빼 놓고 행정가들끼리 모여 얘기하느냐’는 피해자 어머니의 질책에 정신이 번쩍 들어 이 <공동체 대화>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박숙영 선생님은 말합니다.

박숙영 선생님은 <좋은교사운동> 산하 <회복적생활교육센터>를 맡아 일하고 계신데, 이런 <공동체 대화> 모임을 2016년 12월 무렵부터 시작해서 7차까지 해 왔다고 합니다. <좋은교사운동> 뿐 아니라, <갈등해결과대화>, <에듀피스>, <한국회복적정의협회> 같은 단체의 좋은 분들과 함께요.

6.
여러분들은 이런 단체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런 대화 모임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혹시 참여해 보시지는 않으셨나요.

우리나라에도 위와 같이 민간 시민사회 영역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마을에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활동을 하는 분들과 단체들이 있습니다. ‘Restorative Justice’라는 용어 자체는 서양에서 들여 왔는데, 회복적 사법(司法) 또는 회복적 정의(正義)로 번역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2000년대 초반 무렵부터 피해자학이나 형사법학 학자들에 의해 들여왔습니다만,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그와 별도로 평화운동 내지 평화적 갈등해결을 모색하는 활동가 단체나 조정가 양성 단체 등에 의해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라는 용어로 활동하며 네트워킹도 되어 있고, 지역사회나 학교 등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이 저와 만나 함께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주제, ‘회복적 사법’, 오늘이 그 일곱 번째 이야기인데요. 그동안 사법절차 또는 재판절차에서 피해자의 지위가 피해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얼마나 한계 지워 있는지, 또 가해자인 피고인 입장에서도 그 온전한 책임과 사회복귀(회복)라는 측면에서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회부터는 그 답답한 사법절차의 밖으로 나와서 이 사회 안에, 또 우리 공동체 안에 진정 회복의 마법이 일어나는 대화의 자리가 과연 있는지, 어떠한 모습들로 있는지 보기로 하였었지요.

그 첫 순서로, 학교폭력의 문제를 소통과 공감의 자리에서 풀고자 애쓰는 <공동체 대화> 모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박숙영 선생님에 의하면, ‘토론’은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끝나지만, ‘대화’는 그보다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신뢰를 가지고, ‘당신의 입장에서 당신의 고통을 이야기해 주세요’라는 주문에 따라,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무장해제를 하고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공동체 대화> 모임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십 명의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모여서도, 우리 자신의 취약함을 마주 대할 수 있는 환대의 공간을 마련해서, 피해와 그 고통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 올려 토로하고, 그 진실과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거나 위협받지 않는 안전한 울타리 내에서 마음 문을 열고 경청되어 질 때, 피해자가 받는 ‘사회적 공감’을 통해 깊은 치유가 일어나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마법을 목격하게 된다고, 박숙영 선생님은 말합니다.

8.
“그 ‘사회적 공감’이란 거요. 박숙영 선생님이 말하시던데... 그게 대체 뭔가요. 어떤 느낌이고 뭐가 다를까요.”

학교폭력으로 아이를 잃었다던 그 어머니에게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조단 조단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누군가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면 도움이 되지요. 그런데요. <공동체 대화> 같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들어 줄 때는요. ‘세상에 대고 얘기하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용기도 많이 필요하지만 막상 꺼내 놓고 얘기하면 오랜 동안 혼자 품고 있던 것들이 훨씬 명료하게 정리가 되요. 그제야 놓아 버릴 수가 있는 것들이 있어요...”

‘세상에 대고 얘기하는 느낌’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울컥하고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복받쳐 올라 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혼자 외로움 속에서 ‘세상에 대고 외치고’ 싶을까요. ‘제발 내 아픔을 들어 달라, 보아 달라’고.

(다음 회에 또 다른 대화 모임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실제 갈등과 분쟁 속에서 연결을 이루어 가는 회복적 써클에 대해 이야기 드리고자 합니다. 곧 또 만나요.)

임수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작게시작해서커지게 2018-04-14 22:19:07

    제일 오래된 학교가 5년 밖에 안되는 도시가 세종시여요
    우리 세종시도 관심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신고 | 삭제

    최근인기기사
    법률저널 인기검색어
    댓글 많은 기사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법률저널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2001~2013 LEC.co.kr. All rights reserved.
    제호: 법률저널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상연  |  발행인: (주)법률저널 이향준  |  편집인: 이상연  |  등록번호: 서울, 아03999  |  발행일: 1998년 5월 11일  |  등록일: 2015년 11월 26일
    주소 : 서울시 관악구 복은4길 50 법률저널 (우)151-856  |  영문주소 : 50, Bogeun 4-gil, Gwanak-gu, Seoul  |  Tel : 02-874-1144  |  Fax : 02-876-4312  |  E-mail :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