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국민에게 눈물을 주는 문재인 정부,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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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국민에게 눈물을 주는 문재인 정부, 가을이 왔다.
  • 오시영
  • 승인 2018.04.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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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누군가를 사랑하면 눈물의 참맛을 알게 된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지 않으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물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어찌 보면 눈물을 흘릴 때 인간은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은 유루증(눈물흘림증)이나, 결막염이나 각막염 같은 안질 또는 눈썹이 잘못 자라거나 비눗물 같은 매운 물질이 들어가는 경우가 아니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처럼 동물은 인간처럼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으로 인한 눈물을 모른다. 간혹 반려견이나 반려묘들이 주인을 빤히 쳐다보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 주인이 감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주인에게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니 착각은 금물이다. 신은 인간에게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눈물은 사랑해서 흘리는 눈물도 있고, 사랑받아서 흘리는 눈물도 있다. 사랑했기에 눈물 흘리는 경우도 있고, 사랑받았기에 눈물 흘리는 경우도 있다. 감정의 깊은 몸살을 앓을 때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된다. 눈물이 메마른 사람은 눈물이 메말라 있는 동안은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점차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적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웃고 즐거워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눈물은 공감능력을 가진 자만의 특권이다. 눈물을 흘려야 할 곳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일부 정치인 중에 “눈물의 감사”를 상실해 버린 이들이 있음은 어찌 보면 코미디 같은 비극이다. 아니 공감능력을 상실한 자들의 패악이다. 모두들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 시각에 험한 인상을 쓰며 비아냥거리거나 가슴을 후벼 파는 악담을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점점 민심에서 멀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이러한 민심이반현상을 깨닫지 못하니, 결론은 역시 공감능력 결여증이다.

아직 평가하기에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지난 1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잘 한 일을 하나 꼽으라면 “국민에게 진정한 눈물을 돌려준 것”이지 않을까 싶다. 지난 해 취임 직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행사장에서 병원에서 태어난 딸을 보기 위해 완도에서 광주로 나오다가 군인 총에 맞아 죽은 아버지를 추념하던 김소형 씨를 안아주며 많은 이의 눈물을 자아내더니, 지난 제주 4·3사태 추념식장에서는 빨갱이라는 누명 아닌 누명을 쓰고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은 수많은 영령들을 위로하며 제주도민과 유족을 눈물짓게 했다. 5·18의 비극으로 자신의 생일이 아버지의 기일이 되어 버린 유복자의 슬픔을 가슴 절절이 공감했기에 그녀를 안아 위로할 수 있었고, 이를 지켜본 많은 이들이 감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은 많은 국민들에게 기쁨의 웃음도 주었지만, 억울하고 서러운 일을 당하고도 주변 시선에 억눌려 평생 제대로 한 번 실컷 울어보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고 살아야 했던 슬픈 제주백성들에게 제대로 대성통곡하며 울 수 있는 “신원(伸寃)의 마당”을 마련해 주었다. 망설임이 없었다. 지난 70년 동안 가슴에 한을 안고 살아온 제주 4·3사태 피해자들에게 국가의 잘못임을 진정 사과하고 최선을 다해 신원을 복원시켜 주겠다고 약속하는 대통령 앞에 유족들이 어찌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주 4·3사태 추념식장이 눈물바다가 되어 버린 것이다. 눈물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하지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어깃장은 독설 수준으로 참담하다.

숭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채플 기도 중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한 다형 김현승 시인의 “눈물”이라는 시를 본다. 이전에 필자가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언제 보아도 가슴 찡하게 부정이 솟구치는 시라 할 수 있다.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는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전문, 1957, ‘김현승시초’에 수록). 김현승 시인은 아들의 죽음을 접하고 이 시를 지어 아들을 추념하였다. 철저한 기독신앙인이었던 시인은 아들의 죽음 앞에 자신이 하나님께 바칠 것은 자신의 눈물 한 방울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이라며 눈물 한 방울이 자신의 전재산임을 신 앞에 자백하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드릴 것을 더 챙기라 명하더라도 결국 눈물 한 방울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 다 이루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시인도 아들의 죽음을 통해 태어났을 때의 기쁨과 죽었을 때의 슬픔이 모두 신의 뜻임을 수용한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기쁨의 웃음, 아들을 준 기쁨 후에 거두어들일 때의 슬픈 눈물을 통해 신에 대한 자신의 절박함을 드러내고 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의 극한상황을 눈물 한 방울로 환치하며, 자신의 슬픔을 견디어 내고 있다. 만일 시인에게 눈물마저 없었다면 아들 잃은 고통을 어찌 감내할 수 있었을까? 우리네 삶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눈물이 없는 삶은 안구건조증에 빡빡해진 눈동자를 아프게 굴려야 하는 우리네 모습이 아니겠는가?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최류탄을 대부분 폐기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비상시에 대비하여 기동부대 400발, 경찰서 100발만 존치시키고, 10월까지 초과량은 전량 폐기하기로 하였다. 국민이 기쁨과 슬픔 중에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국가의 부당권력남용에 저항하며 정의를 부르짖었던 수많은 사람의 눈에서 강제로 눈물을 흘리게 했던 최루탄을 경찰이 앞장서서 폐기한다니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실감한다. 우리 정부도 김대중 대통령 당시인 1998년에 소위 “최루탄 무사용 선언”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실재 시위도 많이 잦아들었고, 최루탄 사용도 거의 없었다. 국가가 국민을 먼저 분노케 할 일이 적어졌으며,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최루탄 사용 역시 적어졌다. 하지만 박정희 유신정권시대이던 1970년대부터 최루탄을 거의 독점 제조생산했던 삼양화학 한영자 회장은 전두환 군부독재로 반정부시위가 격렬해졌던 1980년에 이르러 기업팽창 수준의 사세 확장을 가져왔고, 1987년에는 최루탄을 많이 팔아 번 돈으로 개인 납세 1위라는 황당한 진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근래에 와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 납품업체로 밝혀져 군납비리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1980년대의 눈물과 2018년대의 눈물은 같은 눈물이 아니다. 최루탄에 의해 억지로 강제되던 눈물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동하여 흘리는 눈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같은 대한민국 정부이지만, 대통령이 어떤 마음으로 국민을 대하느냐에 따라 국민이 흘리는 눈물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경찰이 기동부대 운영지침을 바꾸어 최소 수량만 남기고 대대적으로 폐기하겠다고 나선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독재권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부당한 권력남용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가 줄어 들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라 하겠다. 이러한 지침에 따라 경기남부경찰청이 기동부대와 30개 경찰서에 보관 중이던 최루탄 3만5천여 발을 폐기처분하였고, 다른 경찰청에도 10월말까지 폐기처분을 완료토록 지시가 내려갔다고 한다. 최루탄 없는 세상, 거기에 화합과 통합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국민의 눈물은 최루탄이 아니라 진정한 감동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많은 국민들은 하나 되는 기쁨을 맛보았고, 이번 4월 1일과 3일의 남북예술인합동공연을 통해 남북이 하나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남쪽을 방문하고, 김여정 북한 김정은 특사가 다녀갈 때까지 남북 간에 대화의 창이 진정 열릴 것인가 오마조마했었는데, 이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일정합의가 이루어졌고, 모든 현안을 협상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의제까지 합의가 되었으니, 며칠 후 남북 정상 간의 핫라인이 개설되고 “반갑습니다. 문재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은입니다.”라는 남북정상 간의 핫라인 대화가 이어질 것을 상상해 본다. 이렇게 남북 화해 협력의 시대, 새로운 길로 거침없이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물론 앞으로도 많은 방해물들이 여기저기에서 삐죽거리며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방해물은 우선 남한 내부에서 강력하게 돌출될 것이다. 감동의 울컥거림이 있어야 할 시간과 장소에 계속해서 “남북위장평화쇼”가 펼쳐지고 있을 뿐이라며 손끝의 달을 보지 못한 채 손가락 끝만 바라보고 있는 야당의 반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손가락 끝만 바라보고 있어도 밤하늘 휘영청 밝게 떠 있는 달을 어찌 감출 수 있을 것이며, 그 달을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꾸 뒤처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만 부각될 뿐이다. 대부분의 국민, 민족 모두가 남북화해협력열차를 타고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계속해서 자기가 서 있는 땅을 파면서 자신의 정치적 무덤의 깊이만 더해가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은 세상의 변화,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 두려운 것은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에서의 방해책동이다. 현재의 진행되는 상황으로 봐서는 무난할 듯하지만, 언제 어디서 마음이 삐져 방해꾼으로 나설지도 모른다. 살얼음판을 딛듯 조심하며 민족의 저력을 십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남북연예인합동공연을 통해 얻은 성과 중 가장 큰 성과는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사실의 재발견이다. 마치 북한을 뿔 달린 새빨간 도깨비가 사는 곳이라도 되는 양 북한을 이상하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주입식 교육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받아왔다. 부지불식간에 세뇌되어왔던 것이다. 몇 명의 탈북자들이 무슨 전승물이라도 되는 양 늘어놓은 과장되었거나 모순, 오도된 북한정보를 금과옥조인 양 받아들인 우리였다. 하지만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멋도 부리고, 노래와 춤도 추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물론 경제수준이 남한에 미치지 못하여 우리처럼 풍족하게 쓰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 곳 경제수준에 맞게 인간답게 살려고 하는 곳임을 우리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북한 사람들도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을 즐겨 부르고, 조용필의 “친구여”와 이선희의 “J에게”를 애창한다. 북한 지도자들도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좋아하고, 김정일의 애창곡이라는 “뒤늦은 후회”를 최진희를 통해 듣기를 원했다. 남북예술인합동공연의 부제인 “봄이 온다”는 그렇게 성공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에서 가을에 “가을이 왔다”라는 주제로 공연했으면 좋겠다는 진담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봄이 온다”와 “가을이 왔다”는 같은 듯 다르다. 봄이 온다는 미래지향적이지만 가을이 왔다는 과거완결형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속에 이미 과거완결형으로 “비핵화와 남북화해협력의 시대”가 도래하였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그의 마음속에 확고한 비핵화의지와 남북화해협력시대가 자리잡았기에 “가을이 왔다”라는 주제로 가을에 남한에서 남북연예인합동공연이 열리면 좋겠다는 농담성 이야기가 무심코 흘러나왔는지 모르겠다. 만일 가을이 왔다라는 주제로 또 다시 공연이 열리게 된다면 서울이 아닌 보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대구와 경북에서 열리면 좋겠다. 북한이라 하면 왠지 알레르기 증상을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심하게 보이는 대구와 경북에서 북한공연단의 단독 공연이 열리고 이어서 합동공연이 열린다면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는 상징적 의미 또한 더욱 클 것이다.

김현승 시인은 노래한다. 눈물은 하나님께서 나의 웃음을 만든 후에 지어준 새로운 선물이라고. 당신을 사랑하기에 나에게 웃음을 준 당신을 그리워하는 눈물로 또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사랑하는 이는 언제나 멀리 있다. 멀리 있기에 소중하고 그립다. 꽃이 시들어야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 거기에 그리움과 사랑의 눈물이 있어야 함을 기억하자. 김현승 시인의 시말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는 모두 뼛속 깊이 인식하고 있다. 사랑의 눈물, 오늘 품에 안고 잠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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