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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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26)
  • 박준연
  • 승인 2018.04.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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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만일의 세계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예전 일에 대해 만약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지를 생각하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 늘 그렇게 되는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때 A가 아니고 B의 방향으로 갔다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미국에서 생활해 본 적도 없고 뉴욕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뉴욕에서 로스쿨을 다니고 또 일하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여러 고비가 있었다.

먼저 로스쿨 입학시험(LSAT)을 치르게 된 계기가 있다. 외교통상부(당시 명칭)에 입부하고 나서도 영어를 비롯한 어학 공부를 계속해 나가는 와중에 "영어 시험"의 일종으로 LSAT 기출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문제 일부를 몇 번 풀어보면서 특히 논리 문제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로스쿨 진학, 졸업 후의 장기적인 계획도 없이, 말하자면 어영부영 LSAT 시험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가지 다른 이유는 외교부 직무 연수인 해외 연수에 대한 준비라는 목적도 있었다.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외교통상부에서 첫 2년을 정무 분야 업무를 하며 보내면서, 해외 연수 때는 어떤 전공을 할 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막연히 법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정치학 공부와 정무 업무와의 균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학부생 레벨이지만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정치학의 전문가가 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었다. 국내 정치, 국제 정치, 그리고 미시 정치까지, 학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어느 정도의 이해와 의견이 있다. 이에 비해, 법학을 얕본 것은 아니지만, 법조문이나 판례를 이야기하면 그 자체에 큰 힘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두 학문분야를 조금씩이나마 공부해볼 수 있다면 큰 행운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때 학부 전공을 살려 국제관계를 해외에서 좀더 공부해야겠다는 결정을 했으면 어땠을까.

흥미 본위에서 점점 본격적으로 LSAT공부를 시작하면서 점점 자신을 잃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미국 로스쿨에 지원할 준비를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여 회사 근처 카페에서 졸음과 싸우면서 시험 공부를 했다. 주말에는 시간을 정해두고 기출문제를 풀기도 했는데, 실제로 시험을 처음 칠 때도, 치고 나서 시험장을 나올 때도 전혀 확신이 없었다. 기출문제를 풀어서 채점을 해보면, 점수는 그렇게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어찌어찌 구할 수 있는 기출문제를 다 풀고 나서는 무슨 공부를 해야할지도 잘 몰랐다. 시험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긴장이 되는 분위기였다. 진땀을 흘린 순간도 몇 번 있었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시험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로스쿨 지원은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12월이 되고 시험 결과를 알리는 이메일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점수가 좋게 나온 것을 발견하고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막연히 그런 가능성도 있겠구나 싶었던 분야가 구체적인 선택지로서 다가오게 되었다. 그리고 2월 지원 마감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어쨌든 가능한 범위에서 지원 서류를 준비해보기로 했다. 이후 혹시나 해서 LSAT을 한번 더 응시했는데, 그때는 생각만큼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내 나름대로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시험에서 우연이나 그날의 컨디션이라는 변수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첫번째로 응시한 LSAT시험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랬으면 로스쿨 지원은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고, 외교통상부를 그만둘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예전 생각을 하면서, 오늘의 특별한 일 없는 일상도, 나중에 돌아보면 갈림길 사이의 큰 변화의 고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 작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회는 언제 찾아올 지 알 수 없지만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 “출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오늘도 변함없이 출석 체크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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