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55)-신언문판(身言文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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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55)-신언문판(身言文判)
  • 강신업
  • 승인 2018.03.3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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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당나라는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몸·말씨·글씨·판단의 네 가지를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소위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보아 풍채와 용모가 부족할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이 분명하지 못하고 말에 조리가 없을 경우 낮은 평가를 받았다. 글씨는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아무리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 즉 판단력이 부족하면 출중한 인물로 여겨지지 않았다.

비록 오래 전 당나라에서 시행된 관리등용 기준이라고는 하나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우리 일상에서 널리 통용될 정도로 예로부터 관리를 채용하고 등용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기준이 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인재채용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다만 현대는 붓글씨를 쓰는 시대가 아니어서 글씨 자체의 우미(優美) 보다는 글을 쓰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니 서(書) 대신 문장력을 뜻하는 문(文)을 넣어 신언문판(身言文判)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면접이란 것은 신(身)과 언(言)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고 필기시험은 문(文)과 판(判)을 시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신언문판(身言文判)은 오늘날 비단 채용뿐 아니라 승진이나 선거에서의 당선 등 모든 분야에서 인물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다, 아니 사업에서 성공하는 것도 신언문판(身言文判)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언문판(身言文判)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다른 무엇보다도 신중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신중한 몸짓, 신중한 말, 신중한 글, 신중한 판단이 먼저 요구된다. 사실 신중함은 인간이 가져야 할 무기 가운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다. 인간이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신중함이다. 모든 행동의 성공은 신중함에 달려 있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으로 나아간 인간은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때문에 이성의 최고는 신중함이고 분별력의 발판 역시 신중함이다. 신중함은 말의 전제이고 판단의 근원이며 행동의 기초다. 신중함은 처세의 근본이며 몸과 얼굴의 터전이다. 때문에 신언문판(身言文判)의 평가는 신중함에서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신중함이 발현되어야 하는 경우는 말을 할 때이다. 일단 말은 한 번 입에서 뱉어내면 회수할 수 없다. 때문에 신중함이 결여된 말은 자신을 베는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 물론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언변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침묵할 때와 말할 때를 아는 것이다. 대개 말을 잘한다는 평가는, 많은 사람들이 말 하려 할 때는 말하지 않고 아무도 말 하지 않으려 할 때 말하는 경우에 받게 된다. 말을 가장 못하는 것은 아무나 말할 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때 대중에 파묻혀가며 말하는 것이다. 특히 최악의 경우는 말로 다른 사람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이다. 말은 가능한 짧은 것이 좋다. 핵심만 찌르는 말이 세부사항을 잡다하게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로 상대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말의 신중함이 발현되어야 하는 경우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난할 때이다. 부득이 남을 비난을 해야 할 때는 특히 신중하게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침묵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과격한 단어, 화려한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한다고 해서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려 술수를 써서 말하는 것은 최악이다.

정치계에서 말을 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계는 아직도 막말이나 아무말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에게 이번에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의 일람을 권한다. 윈스톤 처칠(Winston Churchill)의 어록이나 연설문까지 찾아서 읽어본다면 물론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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