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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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25)
  • 박준연
  • 승인 2018.03.3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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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며칠 사이에 도쿄에는 봄이 찾아왔다. 집 근처의 벚꽃나무는 이틀, 사흘 사이에 연분홍색으로 뒤덥혔다. 겨울에는 행방이 묘연했던 공원에 사는 지역 고양이 "거북이" 도 날씨가 따뜻해지자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거북아, 오랜만이야. 말을 걸자 거북이 등이랑 모양이 비슷한 등을 햇볕으로 따스해진 공원 바닥에 대고 앞발을 들어올려 야옹, 하고 대꾸를 해주었다. 자원봉사자분들이 순서를 정해 밥 당번을 해서인지, 거북이는 겨울에 봤을 때보다 더 살이 찌고, 털에는 윤기도 흘렀다. 가방에서 캣푸드를 꺼내었더니 이미 배가 부른지 흘낏 보고는 얼굴을 돌렸다.

3월말은 본격적인 봄의 시작이기도 하고, 클라이언트들을 포함한 많은 회사 회계연도의 연말이기도 하다. 로스쿨에서는 봄학기의 딱 중간쯤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로스쿨에서의 봄 하면 로스쿨 건물 정원의 자목련이 생각난다. 목련은 서울에서도 많이 봤지만, 로스쿨 밴더빌트 홀 앞의 목련은 처음 보는 종류의 목련이었다. 금세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다른 봄꽃과는 다르게, 이 목련은 길게 화려한 개화가 계속되었다.

좁은 뜰 외에는 학교의 캠퍼스가 따로 없었지만, 길을 건너면 공원이 있었다. 단골 카페에서는 얼굴만 보고 늘 아이스커피를 내밀었다. 한국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하는 질문을 몇 번 할 정도로 다른 신상은 기억 못하면서 아이스커피를 자주 마신다는 사실은 절대로 잊지 않던 점원 청년은 옆 레스토랑의 점원 아가씨가 여자친구라고 했다.

커피를 받아들고 공원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날씨가 좋고 여유가 조금 있으면, 워싱턴 뮤즈(Washington Mews)나 미네타 레인(Minetta Lane) 같은 옛날 뉴욕 분위기가 나는 뒷길을 걷기도 했다. 나 빼고 주변 사람들은 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근처에서 사는 사람, 관광객들이 햇볕을 쬐고 있었다. 뉴욕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인 웨스트 빌리지에서 로스쿨을 다닌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해도 동네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외로움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동네에 놀러온 사람들이 많고, 학교 공부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으면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또 이 계절에는 심한 일교차로 감기 기운에 시달리기도 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딱히 우리나라 음식이 없어도 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자부하던 나도, 감기에 걸리면 동네에 딱 한 개 있는 한국 식당으로 향해서 뜨겁고 매운 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뉴욕에서 로스쿨에 다니던 그때나, 도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나,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봄을 맞는 것은 조국에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것과는 또다른 체험이다. 우리나라에서 당연하게 느껴졌던 자연의 변화도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고, 또 지금 생활하고 있는 터전에서 경험하는 계절의 변화도 하나하나 새삼스럽게 경이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번주 초에는 오후에 두세 시간 일을 쉬고, 근처에 있는 큰 공원에 꽃을 보러 다녀왔다. 잠시 산책을 한다고 해서 성격이 급하고 걱정도 많은 내 성격이 갑자기 여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벚꽃, 유채꽃, 또 몇백 년 수령의 소나무를 보며 조금 걷다 보니 짧게나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공원을 나와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바리스타분이 아이스커피와 함께 새로 로스팅한 원두인데 맛보세요, 하고 작은 종이컵을 내밀었다. 공원에서 찾은 마음의 평화도 잠시, 나는 허둥지둥 커피 두 잔을 집어들고 빠른 말투로 감사 인사를 했다. 바리스타분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천천히, 맛있게 드세요.

연말, 연초, 그리고 음력 설에도 새로 시작한다는 감상에 젖었지만, 회계연도의 끝과 시작에도 비슷한 감상에 빠진다. 일이든 개인적인 고민이든, 생각할 시간을 정해서 깊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짧게나마 마음의 여유를 회복할 때이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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