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변호사의 업종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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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변호사의 업종변경
  • 엄상익
  • 승인 2018.03.23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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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소설가

오늘 아침에 공직시절 내가 보좌관으로 모셨던 칠십대 후반의 선배변호사와 핸드폰으로 통화를 나누었다. 그는 예순 다섯 살에 변호사를 그만두고 은자 같은 생활로 돌아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제 남은 수명을 오년 정도로 보네. 그동안 남에게 폐를 안 끼치면서 조심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네. 마지막까지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기로 했네.”

은퇴 후 논어에 전념했던 그는 눈이 침침해 진 지금까지도 책을 읽고 있다. 죽기까지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분이었다. 훌륭한 선배들의 생각과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은 행운이다. 오전 열시 삼십 분경 이웃의 오윤덕 변호사님사무실에서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칠십대 중반을 넘긴 오윤덕 변호사 부부는 어린아이 같이 맑고 투명한 영혼을 가진 것 같다. 남편은 변호사이고 부인은 지금 그 밑에서 실장이라는 이름으로 내조를 한다. 모임이라고 할 것도 없다. 오 변호사 부부와 박연철 변호사 그리고 서울역노숙자센터와 탑골공원 뒤에서 거리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김수경 변호사와 차를 마시면서 삶과 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는 시간이다. 독특한 환경에서 남다른 삶의 여정을 거쳐 온 변호사들이 세대별로 모인 셈이다. 좁은 사무실의 벽에 붙였던 탁자를 빼내 간신히 끼어 앉는다. 의자와 탁자 사이에 튀어나온 나의 배가 닿는 것 같다. 좌장격인 오 변호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요즈음은 우리부부가 앨범을 정리해요. 우리가 죽으면 아무도 보지 않는 그걸 아이들이 처리하기 곤란할 거 아니 예요. 그래서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이 있는 사진은 제외하고 우리부부만 찍은 사진들은 없애고 있어요. 사진은 그런데 그동안 내가 써서 발표한 논문들도 많이 있어. 그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보면 괜찮은 분들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마음 정리와 함께 생활주변도 깨끗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죽은 후 보다 살아 있을 때 미리 선물들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아끼던 물건들을 보면 거의 사용하지 않고 새것인 채로 귀하게 모셔두었던 사실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 변호사 부부는 돈도 정리했다. 먹고 살 것만 남기고 나머지 돈은 학교나 종교단체에 기부도 하고 지금은 5억원을 내어 아주 작은 사랑샘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가난하고 힘든 변호사들을 지원하면서 그들이 공익을 위해 뛰어보게 하는 것이다. 젊은 김 변호사도 그 돈을 지원받으면서 지금 잠시 거리의 변호사가 되어 노숙자 단체에 나가 활동하는 것이다. 사랑샘 재단은 악마변호사가 판치는 업계에서 작은 천사를 키워내려는 노력의 일환인지도 모른다. 드러나지 않고 노부부가 조용히 일을 처리해 나간다. 현장을 다녀본 내가 한마디 의견을 냈다.

“탑골공원뒤쪽의 노인들이나 서울역 앞 노숙자들을 위해 젊은 변호사가 그곳에 간다는 것은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이 실패하고 절망한 인생의 얘기들을 들어주는 건데 그건 젊은 변호사가 아니라 늙은 변호사를 재활용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늙어서 무료한 변호사들이 가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도 큰 위로 가 될 것 같던데요. 할 일이 없이 사무실로 나와 바둑이나 마작으로 시간을 보내는 늙은 변호사들을 재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들을 위해서 탄원서 한 장이나 관공서의 신청서들은 얼마든지 잘 써 줄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오 변호사의 사무실 건물 지하에 있는 작은 밥집에서 밥을 먹고 나의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따뜻한 봄볕이 거리에 쏟아지고 있었다. 길에서 낯이 익은 내 또래의 변호사를 마주쳤다.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 위인 것 같기도 하다. 함께 밥을 먹거나 대화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가 반갑다는 표시로 나의 손을 꽉 잡는다. 손바닥에서 정과정이 통하는 느낌이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세요?” 내가 안부를 물었다. “변호사가 할 게 뭐 있겠어요? 아직도 일을 하죠. 지금도 법정으로 가는 길이예요.” “수십 년 변호사를 하셨으면 이제 업종을 변경해서 일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요?” “어떤 업종으로?” 그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같은 ‘사’짜 돌림인데 천사가 되어보면 어떻겠어요?” “어떻게 하면 천사가 되는데요?” “돈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일해주면 천사 비슷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돈님을 섬기니까 ‘데블 에드버키트’들이 되잖아요?” “내가 오늘 이 소리를 들으려고 이렇게 길에서 만났구나”

그의 얼굴에서 주름들이 기쁨으로 활짝 펴지는 것 같았다. 무심코 내뱉은 그 말은 내가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내면에서 어떤 다른 존재가 내 입술을 빌려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 엄상익 변호사의 블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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