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이야기 (6)-회복의 마법이 일어나는 대화의 자리
임수희  |  sooheelim2017@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3.22  13:57:26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여러분은 혹시, 일단 그 얘기가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이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하게 되는 그런 얘기가 있으신가요.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도 주변에 아는 사람 중에, 아! 그 사람은 그 얘기만 나오면 한 30분은 혼자 계속 그 얘기만 하더라, 끝날 때까지 다 들어 주지 않으면 얘기를 끊을 수가 없더라 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사람이 어떤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충격의 내용과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보통은 누군가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어지지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자꾸 반복해서 얘기하기도 하구요. 어떤 경험은 그 사람의 일생토록 되풀이해서 꺼내고 또 꺼내게도 됩니다.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저 어려서부터 고장난 카세트처럼 늘 하시던 얘기가 있었어요. 일제때 징용 끌려가셨다 기지를 발휘해 살아 돌아오신 얘기, 6․25때 장사하다가 사기 당해서 고생했던 얘기. 무슨 말씀을 하시다가도 나중에는 그 얘기들이 시작되곤 했지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까지 진짜 수백 번도 더 들었을 겁니다.

아마도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 자신의 생명이나 가족의 생존이 위협당할 수 있는 극한적인 공포에 직면해 있었던 트라우마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마치 할아버지의 뇌에 화석처럼 그 기억들이 각인되어 버린 것 같았어요. 그러다 무슨 계기만 주어지면 고장난 카세트테이프 버튼이 눌러져 돌아가듯이, 다시 시작하고 시작하는 스토리들이었지요.

경우에 따라서 어떤 트라우마틱한 경험은 스스로 말로 꺼내기는커녕, 자기 안에서 그 경험의 기억을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회피하거나 부인하고 때론 심한 마음의 병으로 되기까지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말로 꺼내고 반복해서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얘기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 이웃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에서 풀어내고 털어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만, 마음에 큰 상처나 병으로까지 되어 버린 경우에는 의사나 상담가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에 의해서야 비로소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된 상처를 발견하고 꺼내고 치료하는 것이 가능해 질 수 있지요.

이렇게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피해의 경험과 상처가 있고 때론 낫지 않은 채 끌어안고 사는 장해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피해의 경험과 상처를 극복하거나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경험을 말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 우리 말을 들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 말이 다 끝날 때까지 잠자코 끄덕이며 받아 줄 수 있는 우리 주변의 따뜻한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우리도 잘 모르거나 말하기 싫은 것들을 알게 하고 또 말할 수 있게 해서 마음을 가볍게 해 주실 수 있는 전문가 선생님들에게 말이죠.

프로이트가 <정신분석강의>에서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어란 원래 마법과 같은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고, 저주로 내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어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 사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다 라고 했던 말들이요!

지난 회 <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다섯번째 이야기 - 피해자가 재판에서 말한다는 것>에서 우리가 다룬 것은 바로,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이었는데요.

피해자의 사법절차적 기본권 중에 헌법에 명시해서 보장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말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피해자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렇듯 중요하고 또 그 권리가 헌법에까지 보장되어 있지만, 지난 회에서 보았듯이 우리의 현재 형사사법 시스템의 구조상 그러한 피해자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범죄로 인한 피해자는 자기 안에 범죄 결과로 인한 피해를 담지하고 있어 그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기에 당장 이를 해결하거나 극복해야 할 삶의 과제를 떠안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국가의 형사사법 시스템 내에서 단지 국가에 대해 가해자(피고인)의 행위를 보고하는 기능적 존재로써만 취급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은 헌법상 보장된 피해자의 사법절차적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논의인 것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할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만큼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있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에게 가장 강렬했던 어떤 감정들과 경험들을 두서없이 또는 장황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국가 사법시스템 안에서 증인으로 취급되는 피해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가해자(피고인) 간의 대립구도를 근간으로 하는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는 증인으로써 국가가 피고인을 처벌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효용을 다하는 것 외에는 가치가 없다는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죠.

오히려, 행여 라도 피해자의 과장된 감정이나 왜곡된 기억 등의 여과 없는 보고로 인해, 피고인에게 책임 원칙을 넘어선 형사처벌의 위험을 가하여 피고인의 인권을 침해하게 될까 저어하여, 일정한 선을 넘어선 피해자의 진술들은 철저히 배제되게 됩니다.

비록 피해자 내적으로 그것이 과장이든 왜곡된 것이든, 분명 범죄 피해의 결과로 잔존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 피해를 극복하거나 치유하기 위해서 그러한 경험담의 진술이 제한 없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해도 말입니다.

피해자 편에서 볼 때 필요한 말을 필요한 방식으로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구조의 대화는 과연 현재의 사법절차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요.

프로이트를 인용하며 보았듯이, 언어의 마법으로 연결과 치유, 반성과 책임이 가능하게 되는 대화는 사법절차 내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것일까요.

왜 그럴까요. 재판도 가만히 보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단지 오가는 말들뿐인데요.

사랑하는 가족끼리 사이에서 오고 가는 것, 내담자와 상담가 선생님 사이에서 오고 가는 것, 단지 말들뿐인 것처럼, 재판에서 판사와 검사, 피고인, 그리고 증인 사이에서 주고 받고 오가는 것 역시 말들뿐임에도, 어째서 저 말들은 연결과 치유가 일어나고, 이 말들은 도리어 더 마음을 굳게 하거나 화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더 상처를 주게도 되는 것일까요.

법정에서도 재판에서 흐르는 그 말들이 가능한 한 연결과 치유로 나아가게 할 수는 없을까요.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상담하고 치료해 주시는 상담가나 의사 선생님은 피해자의 말을 수용하며 공감적으로 들어 주지만, 법정에서 피해자가 말을 할 때 그 말을 듣는 판사는, 과연 저 말이 맞는가 틀린가 판단하고 검증하며 듣고, 피고인은 한술 더 떠서 그 말에 혹시 허점이 없나 공격할 꺼리가 없나를 찾으며 듣지요.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말할 때 과연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말하고 싶을까요.

현재의 국가 vs. 피고인 대립 구도의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에게 ‘공감적 경청과 연결의 대화’를 찾아 준다는 것은 애당초 미션 임파서블은 아닐까요.

네, 참 답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가보고 있는 이 여정에서 앞으로 같이 그 해답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가 잠깐, 이 답답한 사법절차 밖으로 나가서 그러한 대화의 자리가 과연 어떤 것인지, 사회 내에서 사법절차 밖에서는 어떤 형태로 있는지, 우리 공동체에 과연 그런 대화의 자리가 있기는 한 것인지, 한번 둘러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런, 벌써 지면이 다 했군요. 제가 얼마 전에 가 보았던 <공동체 대화 모임>을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했는데요. 아쉽지만 다음 회에서 계속 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그 <공동체 대화 모임>에서 만났던 좋은 선생님들을 소개해 드리고, 학교폭력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한 청년이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공감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제가 만난 아름다운 분들 이야기를 다음 회에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임수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공감 2018-03-23 08:51:01

    우리 학교들이 성적에만 성과를 내려고 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공동체 감각을 키우는 훈련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신고 | 삭제

    최근인기기사
    법률저널 인기검색어
    댓글 많은 기사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법률저널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2001~2013 LEC.co.kr. All rights reserved.
    제호: 법률저널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상연  |  발행인: (주)법률저널 이향준  |  편집인: 이상연  |  등록번호: 서울, 아03999  |  발행일: 1998년 5월 11일  |  등록일: 2015년 11월 26일
    주소 : 서울시 관악구 복은4길 50 법률저널 (우)151-856  |  영문주소 : 50, Bogeun 4-gil, Gwanak-gu, Seoul  |  Tel : 02-874-1144  |  Fax : 02-876-4312  |  E-mail :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