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속도전의 정상회담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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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속도전의 정상회담 관전 포인트
  • 신희섭
  • 승인 2018.03.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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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속도전.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전시 상황의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 3월 5일 대북특사단의 방북. 3월 6일 3차 남북정상회담 4월말 개최 발표. 3월 8일 대북특사단의 미국으로 출국. 3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의 장상회담 제안 수락. 로켓처럼 달린 3월 두 번째 주.

다음 주. 3월 12일에 정의용 실장 중국 시진핑 주석 면담. 13일 정실장 러시아 방문. 3월 13일 서훈원장 일본 아베 총리면담. 3월 14일 트럼프 대통령 틸러슨 국무장관 전격 경질. 같은 날 스티브 골드스타인 공공외교·공공정책 담당 차관도 파면. 미국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CIA국장 임명.

북한의 속도전에 대해 미국도 속도전으로 응수하고 있다. 모험가 스타일의 트럼프대통령도 이 상황에서 북한에 주도권을 넘겨줄 생각은 없는 듯하다. 상대파트너 김정은의 통 큰 제스처와 이미지 주도권 싸움에서 트럼프는 자신의 승부사 기질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사업가로 산전수전을 경험한 트럼프에게 김정은은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도 패를 이미 다 까 보인.

속도전에 온통 관심이 쏠려서 명확히 안 드러날지 모르지만 북한의 외교는 상당히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빨리 지나치는 기차 옆의 나무들은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 보이는 산은 그저 묵묵히 있는 것처럼.

상황이 복잡할수록 일관성의 차원에서 북한을 들여다보는 것이 유용하다. 북한이 흔든다고 우리도 따라서 흔들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명운의 운전대를 쥔 대한민국이 그저 운전기사처럼 뒤 자리에 탄 승객들이 가자는 대로만 가도록 휘둘리지 않는 ‘중재자’가 되려면 특히 그렇다.

원론으로 돌아가 보자. 북한에게 외교는 무엇인가? 북한은 외교를 군사전략으로 이해한다. 서방세계에서 만들어진 외교(diplomacy)는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서신을 주고받는 행위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들은 흥정과 양보를 거쳐 타협을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노선에서 외교를 해온 북한은 이런 방식으로 외교를 이해하지 않는다. 지도교수님이신 강성학 교수님의 지론처럼 북한의 외교는 ‘수단을 달리 한 전쟁의 연속’이다. 전쟁을 수단을 달리한 정치의 연속이라고 보았던 클라우제비츠의 변형판인 것이다.

북한에게 외교는 전쟁의 다른 이름이기에 여기에는 오로지 승리와 패배만이 남는다. 승리를 위해 전략적 타협은 없다. 다만 전술적 타협이 있을 뿐이다. 그 동안의 북한 외교행위 패턴을 보면 북한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큰 틀의 전략(strategy)은 변화시키지 않았고 기회주의적으로 전술(tactics)만을 바꿔왔다. 필요하면 '시간 벌기 전술'로 가고 어떤 경우에는 '미소(smile)전술‘을 쓰면서도 군사적 도발을 병행하는 양동전술을 사용해왔다. 1950년 한국전쟁직전에도 그랬고 1960년대 제 3세계 외교를 수행하면서도 대남도발을 일삼아왔다. 2002년을 생각해보라. 북한은 동해바다에서 금강산관광 크루즈선이 운항할 때 서해에서는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이 지점에서 북한의 행동패턴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개념이 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그람시가 말한 기동전과 진지전 전략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사회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동전과 진지전의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실제 삶의 영역인 경제영역에서는 노동자를 규합하고 체제를 붕괴하기 위한 파업과 혁명을 발 빠르게 조직하는 기동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믿고 있는 세상질서 원리와 규범들의 관념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그냥 뒤집어 없어버리는 기동전으로만 해결되지 않고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장기적인 세뇌(brainwash)작업이 필요하다. 이 지난한 과정은 이념을 강화해가는 오랜 전략인 진지전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탈냉전과 함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사라지고 진영의 논리가 붕괴한 이후 북한은 진지전전략과 기동전 전략을 병행해왔다. 그람시의 논리와는 매우 다르게. 변혁과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버티기를 위해서.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진 ‘가족정권체제(family regime)’를 보장받고 남한 적화통일이라는 오래된 구호를 내세우면서 주적인 미국과 그 괴뢰인 남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서 핵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한 가지 증거를 보자. 1960년대 김일성의 ‘경제국방병진정책’과 1998년 김정일의 ‘선군경제건설노선’을 이은 현재 김정은의 ‘경제건설-핵무력병진노선.’ 김일성의 3.0버전이다. 1960년대에서부터 지난 60여 년간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룬 대한민국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굳건히 과거 논리로 버티는지를 알 수 있다.

북한은 ‘그럭저럭 버티기(muddle through)전략’이 어려워지면 전술적으로 기동전 전략을 사용한다. 미사일을 발사하여 미국을 위협하고 돈을 뜯어낸다. 또한 국제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여러 국가들로부터 경제 지원을 받는다. ‘위협구사와 대가 챙기기’의 병행전략을 발 빠르게 해왔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이야기하신 대로 현재 이 문제를 낙관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지만 비관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대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이 판을 열었으니 기회 역시 만들었고 그 책임도 우리가 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미래를 명확히 비춰 볼 점술가의 수정구슬은 없다. 다만 부족하나마 역사를 보는 시각과 현재를 읽어낼 수 있는 지력은 있다.

2018년이 되었다고 지도자로서 김정은 개인에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후계자 수업 없이 지도자가 되었기에 김정은의 통치는 다를 것이라는 예측은 2011년 이후 통치를 보았을 때 틀렸다. 과거 진지전식 버티기를 계속할 뿐 아니라 핵능력을 오히려 증대시켰다. 게다가 인도, 파키스탄, 이란도 하지 않는 미국에 대한 ICBM 위협까지 현실화시켰다. 그러니 개인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속도전식 변화는 북한을 둘러싼 상황의 변화가 그 원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4월과 5월에 만나게 될 정상간 회담까지 북한이 그간 지켜오던 체제유지라는 목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에 나온 북한의 목표는 명확해질 것이다. 시간을 벌기위한 기동전 전술이 될 것이다.

BBC방송사가 본 대로 한반도를 무대로 정상회담이라는 엄청남 도박(gamble)판이 열렸다. 북한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어떤 칼자루를 쥐고 흔들거나 낭패를 볼 일이 없다. 미국이 북한 태도를 문제 삼아 강경정책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트럼프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런데 북한이 미국 핑계를 대고 판을 발로 차면 그때는 승자 같겠지만 단기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받거나 장기적으로는 말라죽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정상회담장에서는 큰 선물을 트럼프와 주고받을 것이다. 그리고는 세부적인 사안들을 풀어가는 몇 년의 과정들에서 숨 쉴 틈을 찾고 버티기를 위한 관리를 할 것이다. 판이 틀어졌을 때 한국이 손해를 가장 많이 볼 것이다. 큰 기대에 따른 큰 실망과 날아올 책임 청구서들.

그러니 이제 준비할 것은 이 도박판에서 북한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핵심은 북한이 빠져나가지 못한 논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북한이 비핵화를 받아들이고도 가족정권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보장자’를 찾아야 한다. 1994년 부다페스트 협정에서 미국이 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사이의 보장자 바로 그 역할의 국가. 물론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으로 보장자의 역할은 실패 했으니 이 전철을 밟지 않아야겠고. 또한 한국은 이런 보장자와 보조를 맞추면서도 오랜 친구인 미국과 한미동맹의 틀을 유지해가는 중재자가 될 길을 찾아야 한다. 속도전에 맞서는 우리의 속도전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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