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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대왕 세종의 마음, 문재인 대통령의 단순한 진실성
오시영  |  sunwhis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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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9  15: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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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훈민정음 서문”은 백성을 향한 대왕 세종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 지 그리고 애절한 지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위대한 정치지도자의 애민(哀愍)과 애민(愛民)의 마음이 어찌 저리 순결할 수 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를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할 배 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 내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믈여덟자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쉬비니겨 날로 쓰매 편안케 하고저 할 따라미니라”는 훈민정음 서문의 창제의 정신이 가슴에 내내 와 닿는 한 주였다. 학창시절 대학 입시를 위해 열심히 훈민정음 서문을 공부하던 당시에 깊이 느끼지 못했던 세종의 마음이 유독 강하게 느껴져 온다. 약간의 고즈녁한 운치를 뽐내는 한식당 같은 곳에 벽 장식용으로 도배되어 있거나 휘호 등으로나 걸려 있는 훈민정음 서문은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세종의 마음이 느껴져 오고는 했다.

첫 문장을 요샛말로 해석하면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라.”라 할 수 있다. 백성들이 구어로 말하는 우리말과 문장에 사용하는 중국어가 서로 달라 중국어를 깊이 있게 배우지 않으면 첫째 백성들이 책을 읽을 수 없으니 학문을 익힐 수 없고, 둘째,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어 사상을 전파하거나 소식을 멀리 전할 수 없고, 셋째, 그런 까닭에 의사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해 어리석고 무지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백성들이 쉽게 자신의 뜻을 능히 펼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다는 세종의 마음은 백성 사랑의 마음이다. 백성의 일차적 문제라 할 수 있는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을 뛰어넘어, 백성의 마음을 읽고, 백성의 생각을 읽고, 문화 백성을 만들어 소통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의 마음이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더욱 세종의 마음이 절절해진다. “내 이를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라고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의 정신이 애민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백성의 정신을 읽는 지도자야말로 진정한 정치 지도자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정치권력을 행사해온 탐욕의 정치인, 국민을 피흘리게 하는 독재정치인, 무지한 정치인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청아한 정치 지도자의 마음”이다. 세종이 위대한 까닭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농지를 개간하고, 농서를 만들어 농사기술을 전파하고, 세법을 정비하여 어떻게든 백성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오직 한 마음 노력한 것을 뛰어 넘어 “백성의 정신세계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어야겠다는 한 차원 높은 “문화적 선각자”였다는 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당시 중국 사대에 찌들어 있는 소위 식자층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현전 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진력하였던 것이다.

최만리 등 주요 대신들은 한글을 상스러운 글자라며 언문(諺文)이라고 부르거나, 소리를 나타내는 방법이 절반 밖에 안 된다며 반절이라고 칭하거나 부녀자들이나 배울 글이라거나 선비들이 배울 글이 아니라며 암글이라고 비하하였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과 합세하여 “갑자(1444년) 상소”를 통해 “언문의 제작은 지극히 신묘해 만물을 창조하고 지혜를 운행함이 천고에 뛰어나지만 의심되는 측면이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만리가 내세운 의심은 첫째, 중국 사대주의를 통해 중화제도를 따르는 조선에서 언문을 만들면 중화를 사모하는데 부끄럽고, 둘째, 몽골, 서하, 여진, 일본 등이 각기 글자가 있는데, 조선마저 이를 만들면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가 되려는 것이고, 셋째, 백성들은 이두문자로도 어느 정도 의사를 표시할 수 있으므로 언문으로 출세하게 되면 중국어로 되어 있는 성리학을 공부하지 않게 되어 부당하고, 넷째, 형옥(형벌과 옥사)를 공평하게 하려는 목적(문자를 통한 형벌 조항 교육)이라지만 그것은 문자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형리의 자질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다섯째, 중요한 일을 성급히 추진할 것이 아니므로 심사숙고해야 하고, 여섯째, 동궁이 성학(주자학)에 집중해야 하는데 언문에 신경 쓰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갑자상소문의 주요내용은 “당시 세계 강국인 중국(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중국의 학문인 성리학”에 매진해야 하므로 백성들이 일반적으로 한글을 배워 지혜자가 되면 이러한 사대주의와 중국의 지배철학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이 무시될 수 있으므로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최만리는 1419년 생원으로 중광문과에 급제하고, 1427년 교리로서 문과중시에 급제한 조선의 엘리트이다. 홍문관과 집현전에서 학문에 매진하였고, 강원도관찰사로서 조선의 청백리로 손꼽힌다. 그럼에도 그의 사상은 성리학과 중국사대주의에 갇혀 진정한 애민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백성이 문자 습득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문화인식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당시 지식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획기적 사건이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였던 것이다.

위대한 정치가는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환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멍청한 정치가는 쉬운 세상을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게 만든다.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사심, 즉 사욕이 없어야 한다.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멍청한 정치인은, 문제를 얽힌 실타래처럼 자꾸 꼬이게 만들고 복잡하게 만들어 스스로 자신이 만든 미로에 갇혀 허우적거린다. 그러니 문제가 풀리지 않고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 까닭은 “자신의 지성을 지나치게 과신하거나 사리사욕을 취하기 위해 잔머리를 복잡하게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했을 때 손해가 무엇이고, 저렇게 했을 때 떨어지는 떡고물이 뭐가 있지 계산하기에 바쁜 까닭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범죄행위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공직 인사에도 뇌물을 받고, 해외자원외교에도 이권이 얽히고, 4대강 살리기 사업에도 부조리가 있고, 퇴임 후 자신의 사저 건설에마저 불법이 자행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의 검찰 소환이 3월 14일로 통보되었다.

남북간에, 북미간에, 북일간에 얽힌 실타래는 핵무기 등 아주 복잡해 보이지만 아주 단순할 수도 있다. 필자가 그 동안 수없이 주장해 왔던 것처럼, 그냥 아주 쉽게 남북간에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상호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북미간에 국교를 수립하여 미국이 북한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체제를 보장함으로써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를 폐기하고, 북일간에 국교를 수립하면서 일본이 북한 강점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배상금을 합리적으로 책정하여 북한에 지급하면 된다. 그러면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지급받은 돈으로 국내 산업을 개발하고, 미국도 개발원조금을 보조하고, 우리 정부도 대륙간 철도연계를 위한 철도를 북한에 개설하거나 도로를 개설하고,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을 송유관으로 지속적,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송유관개설공사를 함으로써 북한을 도우면서 남한 경제를 튼튼하게 하는 일거양득의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북한의 개방을 촉진하여 관광산업을 진흥시켜 북한이 외화소득을 손쉽게 올릴 수 있도록 돕고, 상호간에 군축합의를 통해 지나치게 과다하게 지출되고 있는 국방비를 어느 정도에서 동결하는 등 국가 예산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면 남과 북에 모두 이익이 될 수도 있다.

그게 쉽냐고? 뭐가 어려운가? 그냥 정치지도자들이 허심탄회하게 모여 “우리 한 번 현안을 단순화해 봅시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봅시다.”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 과정 속에 복잡한 생각들, 저 조선의 최만리가 생각했던 중화사상이 어떻고, 중화사대가 어떻고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쓸데없는 걱정과 의심을 그냥 버리고, 상대방을 믿어버리면 된다. 믿음이라는 것이 묘해서 그냥 믿으면 믿어지는 것이다. 못 믿으면 절대로 믿을 수 없지만, 믿으면 절대로 믿게 된다. 상대방이 믿는다는데, 그리고 자신을 믿어달라는데 믿지 않겠다고 우기거나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다. 바로 조선 최고의 똑똑한 사람, 최만리다. 하지만 그가 오늘 바라보니 얼마나 바보인가? 이처럼 위대하고 편리한 한글을 저렇게 말도 되지 않는 소리로 핑계를 대며 반대했으니 말이다. 당신을 믿겠다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혜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속이려드는 상대방은 없다. 사리사욕이 있어 내 마음이 혼탁할 때는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역시 혼탁한 마음으로 나를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맑고 투명하게 신뢰를 보내면 상대방도 역시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진심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세종의 마음이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백성과 소통하고 백성들이 손쉽게 학문을 접해 지혜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애민사상을 가졌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 역시 남북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남북한 8천만 동포가 상호 윈윈하자는 애민애국의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이 읽히고 있다. 그 단순하고 진실한 마음이 트럼프 미국대통령을 감동시키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막말을 쏟아놓고 무역과 관련하여 신고립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트럼프의 장점을 꼽으라면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의 단순성은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서로 속이고 속아온, 그래서 복잡함과 권모술수에 익숙한 기존의 국제외교무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단아이지만, 트럼프의 정신은 아주 단순하다. 무역에서 미국이 손해보고 있으니 앞으로 손해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국 수입품에 상응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너희가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 본토 공격을 위협한다면 미국도 북한을 직접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강력한 무력경고메시지를 통해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단순한 정책을 줄곧 추진했고, 그 사이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종국적으로 북한은 중간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끈질긴 진심어린 설득으로 북미대화에 나서겠다고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세종의 마음은 단순하다. 왜 양반들만 어려운 한자를 사용해 유식자인 척 하며 상민들의 학문적 접근을 막느냐, 그것은 부당하다, 그러므로 백성들을 위해 말과 글이 일치하는 문자를 만들겠다는 애민사상에서 그냥 출발한 것이 훈민정음의 창제라는 놀라운 결과이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글은 그렇게 창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 역시 단순하다. 한 민족인 남북이 왜 싸우느냐? 왜 국민의 복지를 위해 쓸 수 있는 아까운 돈을 무기 구입에 낭비하며 서로 죽이겠다고 으르렁거리느냐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 서로 만나자, 만나기 위해 나는 당신을 믿고, 그 진심으로 당신을 대할 테니 당신도 나를 믿어달라는 것이다. 그 진실한 마음을, 결코 움직일 것 같지 않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믿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특사 김여정이 다녀가고, 남한의 특사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대북방문이자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동의였던 것이다.

이미 미국과 공유된 정보이지만 정의용 특사 일행은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만날 것이고, 폼페이오 CIA 국장을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미북대화를 주선할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한의 태도변화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모든 해결의 출발점은 단순성에 있다. 복잡한 사건을 단순하게 보고, 오직 애국애민의 정신, 통일한국을 이룩해야겠다는 미래를 읽는 단순성, 서로 싸우지 말고, 으르렁거리지 말고 사이좋게 더불어 번영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단순한 정신에서 시작된다. 아직도 훈민정음 창제의 정신을 깨닫지 못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말도 되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은 현대판 최만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시간이 좀 흐르고, 최만리처럼 많이도 아니고 조금 흐른 뒤 문재인 대통령의 사리사욕 없는 단순한 진실성이 만들어낸 남북한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 내가 믿으면 상대방도 믿는다. 내가 신뢰를 보내면 상대방도 신뢰를 보낸다. 내가 너를 진심으로 믿는데, 너도 나 믿지? 거짓은 가라, 아주 멀리 가라, 그리고 역사에서 사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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