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예측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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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예측하기
  • 신희섭
  • 승인 2018.03.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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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

첫째 아이가 5살 정도 되었을 때다. 어린이 집으로 가는 길의 자동차 안. 첫째 아이는 아빠와 있기를 좋아해서 어린이 집에 갈 때 살갑게 이야기를 많이 했다. 친구 이야기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날도 첫째 아이는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종알거리고 있었다.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아이의 종알거림을 그저 지나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이가 운전석 뒷자리를 발로 콩콩 찼다. “어 왜?” 아이에게 신경을 돌려 물어보니 딸의 답변. “아빠!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라.”

순간 충격. 그래 맞아. 니 말을 무시할 것이 아니지. 맞아 사람이니까.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 일은 나에게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누군가를 그저 쉽게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어린 아이라고 해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는 것.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인정하는 것. 인정을 위해 상대방의 주체성을 받아들인다는 것.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어릴 수도 있고 정보가 부족해서 생각의 근거가 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교수가 아니다. 일방이 타방을 향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상대를 무시한다는 것에 있지 않다. 주체간의 대등성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고려해야 할 것들을 빠트리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상대방을 무시해 낭패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과신해 낭패를 보게 한다. 열등감이 우월감과 쌍을 이루듯이 무시는 과신과 쌍을 이룬다.

그런데 비슷한 일을 또 경험했다. 지난 2월 27일 한국군사문제연구원(KIMA)이 주관하는 포럼에 초청을 받아 토론을 하는 때였다. ‘미국의 군사전략과 한국의 안보’라는 주제를 다루는 포럼에서는 평창올림픽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도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날카로운 논평들이 있었다.

토론자로서 나는 평창올림픽이후 한반도 문제를 고려할 때 3가지 요인을 강조하였다. 첫 번째는 미국 측 요인이었다. 미국의 11월 중간선거와 이 선거를 위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때 눈여겨보아야 중요한 점은 패권국가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받으면서 힘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을 때 언급했던 ‘투키디데스 함정’이 적용되는 대목이다. 쇠퇴하는 패권국가가 힘의 쇠퇴를 두려워하면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은 최근 그래함 앨리슨의 『Destined For War』(한국 번역 서명 예정된 전쟁)에서 잘 보여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투티키디데스가 투쟁을 하는 인간을 묘사한 부분이다. 그는 인간이 갈등하는 것은 ‘공포, 명예, 이익’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때 주목할 것이 명예심이다. 100년간 패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로서 가지는 미국인들의 명예심과 트럼프대통령이 강조하고 싶은 미국우선주의와 평판추구적인 성향이 핵심이다. 명예심은 왜 강대국이 갈등할 것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강경 조치를 취하려 하는 지를 설명한다. 힘의 변화와 명예를 지키고 그 평판을 유지하고 싶은 심리는 군사행동과 같은 강경한 조치를 취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한반도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두 번째 요인은 한국이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국의 정치 환경이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남북한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GM 사태와 가중되는 미국의 무역압력과 최저임금제 도입에 따른 갈등과 같이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과의 긴장완화는 지방선거의 필승카드이다. 미국의 압력을 조정하면서 북한을 끌어들여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한반도 운전대론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세 번째 요인은 일본이다. 일본은 2015년 안보법을 제정하고 독자적인 군사능력을 키우면서 보통국가로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 2017년을 개헌을 위한 해로 잡았으나 실패했다. 아베 총리는 2018년 올해 개헌을 반드시 성취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트럼프라는 미국 지도자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고 그를 움직이는 데 북한이라는 카드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북한의 미국에 대한 위협강화는 자연스럽게 일본에 있는 주일미군을 보호해야 하며 이는 일본 본토에 대한 위협대비가 중요하다는 논리가 된다.

평창이후 한반도에 대한 전체적인 예상은 미국이 핸들을 쥐고 있고 한국과 일본이 부수적으로 속도와 방향을 조정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운전석 뒤쪽을 차면서 “이봐! 내말을 좀 들어봐”라고 한다. 바로 북한이다.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대북 특사가 3월 5일 방북을 했다. 그리고는 3차 남북정상회담개최와 남북간 핫라인설치와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미국과의 대화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국제무대에 깜짝 데뷔를 할 판을 열었다. 그동안 ICBM급 미사일로 위협을 가하면서 미국을 끌어 들여 불안을 만든 것과 목함 지뢰도발과 같은 대남 도발은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군사적 도발에서 정상회담으로의 극단적인 선회. 여동생 김여정과 부인 이설주를 동반하는 가족적인 스타일로의 변화. 시원시원한 일정 진행으로 보여주는 통 큰 스타일의 과시. 강력한 국제적 제재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 여유로운 자세.

뒷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북한은 존재감을 강력하게 드러내면서 이 판의 운전대를 쥐고자 한다. 난 왜 북한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신년사에서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꾸었을 때부터 이미 계산된 이 과정에서 왜 북한을 빼고 판을 계산한 것일까? 북한을 무시한 것일까? 한국을 과신한 것일까? 아니면 북한에 무지해서 계산에 넣을 수 없었던 것일까?

북한이 판을 주도하면서 북한을 예상하던 우리가 어렵게 되었다. 뒷자리 승객을 크게 신경써본 적이 없으니 태도변화의 진의를 알아내는 것부터 꼬이게 된 것이다. 대북 제재를 피하기 위한 시간벌기전략과 압박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풍선의 바람을 빼기 위한 전략이기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 한국전쟁이전부터 보여주었던 양면전술에 따른 기만책일 수 있다는 부정론. 새로운 스타일의 김정은이라는 지도자의 결단에 주목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대미접근에 대한 낙관론. 어지러운 충돌들.

한 걸음 더 나가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앞으로 한반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주도권을 쥐고자 한 북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의 임기제한을 폐지와 권력 강화. 푸틴의 북한에 대한 개입. 한반도를 둘러싼 방정식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될 것인가?

복잡한 상황을 헤쳐가려면 단순화가 필요하다. 두 가지로 단순화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상황요인이고 둘째는 인간요인이다. 북한을 둘러싼 상황요인이 김정은이라는 지도자의 요인보다 중요해지는가 아니면 지도자라는 요인이 이런 상황을 넘어서는 기개를 발휘할 수 있는가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반도 문제는 상황요인의 결정력이 더 크게 작동하고 있다. 북한에게 핵이 가지는 의미를 해석하는 김정은이라는 지도자의 성향은 이 압력을 부분적으로 조율하면서 1993년 시작된 핵문제의 시한을 연장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이것을 막을 수는 없다. 제재가 강하면 체제가 기울기 마련이다. 이것도 막을 수는 없다. 언제 겨울 외투를 벋고 봄 외투로 갈아입을 것인지를 정하는지만 남는다. 긴 역사적 시간에서 보면 북한의 핵문제와 북한의 위협을 해결하는 것도 결국은 ‘언제’의 문제로 귀결된다. 예측이 어려운 현재 시점에서 간만의 불어오는 한반도 훈풍이 한반도의 봄을 알리는 전령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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