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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5)- 피해자가 재판에서 말한다는 것
임수희  |  sooheelim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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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8  15: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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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신 적이 있으시죠. 형사재판정에서 증인이 들고서 엄숙히 낭독하는 선서서입니다. 왠지 모를 비장감마저 드는 멋진 표현이지만, 영화나 드라마 작가들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157조 제2항에 못박아 둔 선서서 문구입니다. 그 내용 그대로, 증인이 선서하고 하는 증언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위증죄는 증인 선서의 효과인 셈이지요.

범죄 피해의 당사자임에도 피해자는 범죄 수사와 공판에서 주체적 지위에 있지 못하고, 범죄자와 국가 사이의 대립 구도에 밀려서 단순히 증인(공판단계, 수사단계에서는 참고인)이라는 증거방법에 불과한 지위에 있게 됩니다. 이러한 피해자의 형사소송상 지위의 한계와 관련해서 앞선 연재 글 1회부터 4회까지에서 함께 말씀 나누었는데요.

증인으로 법정에 선다는 것은, 그 선서서의 문구마저도 명확히 법에 규정해 놓은 것에서 보듯이 매우 엄격한 증거조사의 절차와 방식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피고인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설계 하에서 말이지요.

즉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의 유죄 입증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위주로 신문되고, 그 외에는 설령 피해자가 하고 싶은 말이라 하더라도 부수적이거나 무용한 것으로 취급되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피고인에게는 피해자를 반대신문할 기회를 주게 되지요. 피해자의 진술을 반대신문으로 탄핵해서 그 신빙성을 흔들어 놓음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을 행사하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팅 하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충분히 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우리 헌법은 제27조 제5항에서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고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비로소 들어왔어요. 19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적어도 우리 헌법은 피해자를 단순히 증거방법이나 조사대상․객체로 보는 시각을 명시적으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지요. 피해자에게도 사법절차적 권리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했다는 것은 차원을 달리한 진전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서두에 증인 선서 얘기를 꺼내면서, 피해자가 마치 증인의 지위에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얘기했을까요.

헌법이 비록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의 근거를 명료하게 마련했지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하도록 그 실질적 구현을 법률로 넘겼는데요. 막상 그 법률인 형사소송법을 1987년 개정할 당시 신설한 제294조의 2에서는, 범죄 피해자의 신청이 있는 때에 그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한다’라고 정함으로써, 피해자가 재판절차에서 진술하는 원칙적인 방식을 ‘증인신문’ 방식으로 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증인신문 방식으로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때 ‘당해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도록(제294조의 2 제2항) 하였습니다만, 피해자가 이미 당해 사건에 관하여 공판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하여 다시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제294조의 2 제1항 제2호)와 피해자의 진술로 공판절차가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가 있는 경우(제294조의 2 제1항 제3호)는 진술 기회를 주지 않아도 되도록 예외규정을 두고 있고, 동일한 범죄사실에서 신청인이 여러 명인 경우에도 진술자의 수를 제한할 수 있도록(제294조의 2 제3항)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다행히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제294조의 2 제2항은 피해자가 ‘피해의 정도 및 결과,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 그 밖에 당해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도록 개정되었습니다만, 현재까지도 여전히 증인신문의 방식은 피해자 진술방식의 원칙으로 고수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피해자가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실현할 법률인 형사소송법에서는 단지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도록 하면서 증인신문절차 내에서 의견을 진술할 수 있게만 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연 타당한 입법일까요?

앞서 제가 말씀드린 피해자의 증인 내지 증거조사 객체의 지위에서 적어도 1987년 헌법이 끌어올린 바, 형사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는, 참여적이고 주체적인 사법절차적 지위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헌법이 규정한 피해자의 권리를 제대로 충분히 실현하고 있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법원은 입법기관이 아니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피해자의 재판절차에서의 권리를 헌법의 취지에 맞게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형사소송규칙을 개정하여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충실히 보장하고자 하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형사소송규칙이라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하위 규범인데요. 법적성질은 대법원규칙으로서 법원이 자체적으로 정한 소송절차에 관한 규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법원이 임의로 정한 것은 아니고, 헌법에 규정된 대법원 규칙제정권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지요. 제108조에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2015년 형사소송규칙의 개정으로 신설된 제134조의 10에서는, 피해자가 신청한 경우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법원 직권으로도’ 피해자에게 진술할 기회를 줄 수 있고, 형사소송법 제294조의 2 제2항에 정한 사항으로서 범죄사실의 인정에 해당하지 않는 사항에 관하여 ‘증인신문에 의하지 아니하고도’ 의견을 진술하게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피해자는 원하는 경우 형사재판에서 자신의 피해의 정도와 결과,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 그 밖에 그 사건에 관한 의견을 증인신문 또는 증인신문 외의 방식으로 법정에서 진술할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비록 형사소송규칙에 의하여서나마 구체적으로 보장되게 된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의 내용입니다.

어떠신가요. 이 정도면 피해자에게 충분한 재판 진술권이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직 많이 부족할까요. 혹은 형사소송규칙은 대법원규칙에 불과한데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한 범위 내에서 규율해야 함에도 상위법인 형사소송법 보다 일견 넓게 규정한 것이니 위법한 규칙인 걸까요. 아니면 오히려 더 상위법인 헌법에 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헌법의 취지를 잘 살린 것이니 위법의 문제는 없고 오히려 형사소송법이 헌법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개정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이슈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토론 및 연구의 필요성도 크며 향후 법제도적으로 절차를 개선해 나가야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요.

예컨대 만약 성폭력 등 민감한 사안의 재판에서 재판부가 위 형사소송규칙 규정에 따라 직권으로 피해자에게 증인신문 방식에 의하지 아니한 진술 기회를 주었다고 상상해 보십시다. 그 피해자가 막상 법정에 나와서는 너무나 생생하게 당시의 피해 상황과 그 결과, 잔존하고 지속되고 있는 고통에 대해 절절이 진술을 하면서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간곡한 탄원을 하였다고 칩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양형에 반영되어 결국 피고인이 상당한 중형을 선고받게 되었다고 합시다.

만약 그 피고인이 위와 같이 피해자가 신청도 하지 않았고 법정에서 증인신문 방식에 의하지도 아니한 진술 절차가 형사소송법에 근거가 없으므로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또한 피고인에게는 피해자 의견 진술 과정에서 증인신문에서와 같은 반대신문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의 정당한 방어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위법한 절차에 의한 재판결과가 반영된 중한 양형 역시 위법하므로 1심 판결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항소한다면, 그 항소는 받아들여져야 할까요. 아닐까요.

피해자도 재판에서 진술할 기회를 보장받을 헌법상 권리가 충분히 실현되어야 한다는 과제,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유죄 여부와 양형을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정하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당하거나 행위책임 원칙을 넘는 형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 이 양자를 조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다는 것을 여러분도 느끼셨으리라 봅니다.

현재 우리 사회와 국가가 그 두 과제를 조화롭게 모두 성취해 나가기 위한 여정에 있다는 것도 아실 수 있으시리라 보고요. 아울러 그 큰 두 가지 과제를 이루기 위해 해결해야 할 하위 과제들과 문제들이 많다는 것도요.

그런데, 여러분, 피해자가 재판에서 말해야 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 또 이미 헌법상 권리로까지 선언되었음에도, 그 구체적 실현이 쉽지 않고 고려해야 할 요소나 쟁점이 많은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피해자가 ‘말하는’ 장(場)인 ‘재판’이라는 것의 본질과 목적이 결국은 피고인을 처벌할 것인가, 얼마나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를 정하기 위한 절차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피해자가 재판이라는 절차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하더라도 결국 그 귀결은, 그래서 피고인을 처벌할 것인가, 중하게 처벌할 것인가, 약하게 처벌할 것인가 라는 결론 외에는 도달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 혹시 우리는 재판의 목적과 기능을 달리 설정하여 피해자가 ‘말하는’ 것을 단지 피고인에 대한 처벌 유무 및 형의 양정의 자료로 삼기 위함이 아니라, 피해자가 말하는 자체로써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될 기회를 주고 피해를 가한 당사자인 피고인 자신이 피해자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즉 탄핵과 반대신문을 위한 듣기가 아니라 진정으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한 경청을 함으로써 피해를 회복케 하고 자발적 책임으로 나아가는 어떤 다른 종류의 공간으로 재판절차를 열어갈 수는 없을까요. 다음 회에 계속 이어서 함께 이야기해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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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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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우 2018-03-10 11:01:49

    이렇게 좋은글을 보면... 재판에 AI가 도입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게 보입니다.재판에서단지 기계적으로 양형을 정하는건 정말 아니라고 봐요.재판장님들은 정말 치열한 고민을 하시는거 같아요신고 | 삭제

    • 독자 2018-03-09 11:29:00

      재판이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더네요. 너무 복잡한 재판 쉽게 할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신고 | 삭제

      • 공감 2018-03-09 00:49:12

        다음호도 기대됩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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