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마음으로 다가온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여행기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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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마음으로 다가온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여행기➁
  • 제임스리
  • 승인 2018.03.07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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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리(Rhee James)
호주 사법연수과정(SAB), 시드니법대 대학원 수료
호주 GIBSONS 법무법인 컨설턴트 역임
전 KOTRA 법률전문위원
전 충남·북도, 대전광역시 외국인 투자유치 위원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고객위원
저서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 (KOTRA 발간, 2004)
‘불법체류자’ (꿈과 비전 발간, 2017)
현재 100여개국 해외여행 경험으로 공공기관 및 대학 등에서 강연

전편에 이어...

여행 둘째 날

모스크에서 새벽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흘러나오자 나는 잠시 눈이 떨어 졌으나, 이내 깊은 잠에 다시 빠져버려 아침에 동이 훤하게 터서야 잠이 깼다. 시계가 없어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일단 일어나 서둘러 샤워를 하고, 가져간 비상식량인 컵라면을 먹은 후, 호텔에서 ‘거주지 등록증’을 받았다.

▲ 우즈베키스탄의 영웅 아미르 티무르 동상 모습

여행자들은 러시아나 독립국가연합(CIS)에서는 숙소에서 반드시 ‘거주지 등록’을 해야 하는데, 거주지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면 최고 미화 $ 2,000불까지 벌금이 부과되는 통제국가라, 귀찮아도 반드시 ‘거주지 등록증’을 일일이 챙겨야 한다.

이곳에서는 길거리에 잠복해있는 사복경찰까지 포함하면 상당한 숫자의 경찰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몇몇 중동국가를 여행했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 나라의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저렇게 많은 경찰과 거주지 등록 등을 통해 국민들을 통제하고 있구나’하고 다시 느끼게 되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이곳에서 길거리의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때에는 유럽 몇몇 도시들처럼 화장실 사용료를 받기에, 항상 동전이나 잔돈을 가지고 다녀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이번 여행의 백미인 레기스탄 전경

‘타슈켄트 중앙역’에서 다음 여행지인 ‘사마르칸트’로 출발하는 아침7시발 기차를 타기 위해 나는 부랴부랴 호텔을 나섰다. 호텔에서 걸어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타슈켄트 중앙역’에 도착하니 시계는 벌써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침 현지 돈인 ’숨’을 환전하지 않아 미화로 결제하려고 하자 ‘안 된다’고 해서 일말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는 역무원에게 사정사정하여 미화로 기차표 결제를 마치고 난 후 매표소에서 건물을 돌아서니, 기차가 막 출발하려고 했다. 나는 어릴 적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하여 내달린 끝에 출발 약 1분전에 겨우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 이슬람 문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건축물 모습

그런데 일단 기차역에 들어서면 인도 ‘뉴델리 기차역’에서 겪었던 것처럼 기차표 검사부터 시작해서 수하물 보안검사, 여권검사 등을 까다롭게 실시하기에 여행객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부리나케 기차를 잡으려고 뛰어가는 모습을 이곳 역무원들이 이해를 했는지, 아무런 제지없이 기차에 승차할 수 있었다.

기차는 2등석으로서 6인이 한 객실을 같이 쓰는 구조로, 객실마다 별도의 문이 있고 옆에는 좁은 복도가 있는, 영화에서 가끔 보는 그러한 스타일의 기차였다. 바깥기온이 낮에는 약 30도를 오르내려서 기차내부에 에어컨을 세게 틀어, 나는 오히려 추위를 느껴 객실차장에게 ‘에어컨을 꺼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였다.

▲ 건축물 내부 천장모습

마침 옆자리에는 ‘타슈켄트 은행’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마르칸트’가 고향인 청년이 기차객실에서 나와 같이 합석을 했다. 그는 영어를 제법 구사해서 나는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4시간 반 걸려 ‘사마르칸트 중앙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사마르칸트’는 옛 ‘티무르 제국’의 수도이자 현직 대통령의 고향이어서 그런지 도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나는 일단 역에서 빠져 나와 택시기사와 요금을 협상한 후, 택시를 타고 ‘유적지에서 제일 가까운 저렴한 호텔로 가자!’고 말했다.

약 15분 정도 달려 유적지 근처에 저렴한 호텔을 잡게 되었다. 마침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호텔주인도 한국에서 외국인근로자로 수년간 일을 했었고, 또한 지금도 지속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현지인이었다. 그가 한국말을 제법 능숙하게 구사하는 바람에 나는 언어소통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사마르칸트’의 백미는 역시 ‘레기스탄’이라는 장소인데, 우즈베키스탄을 대표적으로 소개할 때 TV화면 등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곳이었다. 흔히 중동국가에서 보통 볼 수 있는 통상적인 이슬람 건축양식과는 좀 다르게 이곳은 푸른 계통의 타일형식을 빌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1600년대에 건축된 거대한 건축물 모습들을 보면서, 비록 이곳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좀 있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 현지 TV 방송국에서 현장 취재 중 인터뷰에 응하였다.

나는 현지 돈인 ‘숨’이 필요하여 매표소에 있는 기념품가게에서 미화 $100불을 ‘숨’으로 환전했다. 한 무더기 돈 뭉치의 부피인지라 가져간 가방이 불룩할 정도였다. ‘아프리카 어느 국가에서 미화 $100을 환전하니까 트럭으로 한가득 바꿔주어 매우 당황했다’는 미국인을 오래 전에 여행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나도 오늘은 불룩한 가방을 만지니 금방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이곳 현지인들은 은행에 돈을 맡길 때에는 오히려 수수료를 내고 맡겨야 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돈을 찾을 때에도 인출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보통 현찰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집에 보관하거나 암시장을 통해 미화로 바꾸곤 한다. 이 때 환율을 아주 후하게 쳐준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미화 $100을 은행에서 환전하면 현지 통화로 약 170,000 ’숨’으로 바꿔주는데 반해, 암시장에서는 보통 240,000 ‘숨’으로 바꿔주는 식이다.

나는 환전한 현지 돈인 ‘숨’으로 ‘레기스탄’ 입장료를 지불하고는 하나씩 차례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정교한 이슬람 건축미가 시종일관 나를 압도했다.

나는 모스크 안에서는 열심히 기도하는 무슬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서로 어깨를 바짝 붙이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왜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 어깨를 바짝 붙이고 예배를 드립니까?’라고 내가 관리인에게 묻자, 그는 ‘서로 간의 간격이 떨어져 있으면 그 틈으로 악마가 들어온다고 해서 저렇게 서로 바짝 붙어서 예배를 드린다’고 설명해주었다.

▲ 시장의 현지 아낙네들 모습

한 가지 에피소드는, 나는 근처 공원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마침 우즈베키스탄 국영방송국에서 현지인 여성들과 TV 인터뷰를 하다가 마침방송국 PD가 길을 지나는 나를 발견하여 인터뷰 요청을 했다. 덕분에 현지 TV인터뷰도 하고 그 여성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 호사도 누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찾은 곳은 길거리에서 야채 등을 파는 현지 아낙네들의 삶의 현장 모습과 향신료로 가득한 재래시장이었다. 이런 곳은 찾을 때마다 한국의 재래시장을 찾는 것과 같이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더군다나 싼 물가 때문에 수박보다 큰 멜론도 손쉽게 먹을 수 있어서, 여행하면서 놓치기 쉬운 식사 대신에 풍성한 과일로 어렵지 않게 대체할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더위를 먹었는지 더 이상 걷기에는 무리이다 싶어 모처럼 숙소로 일찍 들어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여행일정을 점검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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