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수리야 보날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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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수리야 보날리를 아시나요?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8.03.02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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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부터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기적의 여자 컬링 ‘팀킴’ 등 없던 애국심과 자부심도 솟아나게 만든 평창 동계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에서의 왕따 논란 같이 일부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대체로 성공적인 올림픽이었다는 평가인 듯 하다.

동계 올림픽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최다빈 선수가 김연아 선수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뒀고 남자 피겨 싱글의 차준환 선수도 첫 시니어 무대에 올라 역대 남자 싱글 최고 기록을 남기는 등 암울하게 보였던 한국 피겨의 전망을 밝게 해줬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어지간한 피겨 기술 이름 몇 가지 정도는 꿰고 있지만 김연아라는 역대급 천재가 나타나기 전에 한국은 피겨의 불모지였고 인기가 없는 피겨는 텔레비전이나 뉴스를 통해서도 접하기 어려운 스포츠였다. 동계 올림픽 기간이나 되어서야 그것도 시차 때문에 심야 시간에나 볼 수 있는 정도였다.

기자가 처음으로 피겨를 접한 것도 바로 어느 해인가의 올림픽 무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기자의 방에는 작고 낡은 텔레비전이 하나 있었다. 부모님 눈을 피해 심야의 일탈을 즐기던 어느 겨울밤, 프랑스의 흑진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검은 피부의 피겨 선수를 보게 됐다. 대부분의 선수가 백인이고 일본인 선수가 한두 명쯤 끼어 있는 수준의 당시 피겨 경기에서 수리야 보날리의 존재는 매우 이색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정작 기자가 수리야 보날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녀의 외모가 아니라 실력 때문이었다.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수리야 보날리의 실력은 그녀의 피부색 이상으로 두드러졌다. 빠른 속도의 스케이팅, 탄력과 힘이 넘치는 점프, 열정이 느껴지는 연기에 홀딱 빠져 들었다. 그런데 어린 기자의 눈에 가장 잘하는 선수였던 수리야 보날리는 번번히 1등을 놓쳤다. 기술 점수는 최고점을 받으면서도 늘 터무니 없는 예술점수를 받았다. 많은 이들이 수리야 보날리의 낮은 예술점수는 그녀의 검은 피부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고들 했다.

기자가 오랫동안 잊고 살던 수리야 보날리를 다시 떠올린 것은 이번 올림픽에서 최다빈 선수를 비롯한 아시아 선수들에 대한 점수가 지나치게 ‘짜다’는 기사 댓글들을 통해서였다.

유독 짠 예술점수와 싸워야 했던 수리야 보날리 선수는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 경기를 훌륭하게 치렀으나 또 다시 말도 안되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녀는 다음날 프리 경기에서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ISU가 금지시킨 기술이자 오직 그녀만이 실전에서 구사할 수 있었던 백플립을 성공시키고 당당히 은퇴를 했다.

피겨는 주관적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경기로 꼽힌다. 김연아 선수의 소치 올림픽 은메달 사건으로 대표될 수 있는 편파 판정 논란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기자가 수리야 보날리와 김연아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각종 공무원시험, 대입, 로스쿨 입시, 취업, 일부 자격시험 등에서까지 두루 중시되는 면접시험을 비롯한 주관적 평가의 효용성과 공정성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냉소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기자는 주관적 판단과 공정성은 도무지 만날 수 없는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면접시험의 경우 불과 몇 십분, 길어야 하루 이틀의 시간으로 한 인간의 인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하다. 지난해 면접에 탈락한 사람이 올해는 올바른 국가관과 공직관, 인성 등을 갖춰서 면접을 통과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결국 면접시험은 효용성도 없고 공정성을 확보하기도 매우 어려운 불합리한 평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사람을 걸려내기 위한 방어장치로서 최소한의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비슷한 실력을 갖춘 보통 사람들의 당락을 가를 수 있는 수단은 될 수 없다고 본다.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올림픽에서도 일어나는 편파 판정이 훨씬 숨기기 용이한 입시나 취업 등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편견이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불공정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찌 단정할 수 있나. 실제로 주관적 평가에서 이뤄지는 불공정의 문제는 대입을 위한 학종에서부터 각종 취업비리까지 이어지며 끝도 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일이다. 최근 블라인드 면접 등 공정한 선발을 위한 개선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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