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무부의 기계적 상소 관행은 국가공권력 남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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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무부의 기계적 상소 관행은 국가공권력 남용이다
  • 법률저널
  • 승인 2018.02.27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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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체류 도중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인 불법체류자에 대해 법원이 이란으로 돌아갈 경우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월 13일 수원지법 행정5부(박형순 부장판사)는 이란인 A씨가 화성외국인보호소를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 화성외국인보호소의 난민불인정결정을 취소했다. A씨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된 이란인 친구로부터 B교회를 알게 돼 2006년 이 교회 교인으로 등록하고 2010년에는 세례를 받는 등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그러나 2016년 8월 불법체류 혐의로 적발돼 강제퇴거명령을 받았다. 이에 A씨는 강제퇴거명령을 받고 화성외국인보호소에 머물면서 “한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이슬람 국가인 이란으로 돌아가면 종교적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며 난민 신청을 했다.

그러나 화성외국인보호소는 “불법체류자로 적발된 이후에야 난민 신청을 했고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전도활동을 하지 않은 데다 이란에서도 박해라고 부를 만한 차별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법무부에 낸 이의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공익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행정소송을 냈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내가 전도해 세례를 받았던 지인도 이란으로 강제퇴거된 후 경찰당국의 구타로 숨졌다. 또 한국에서 전도한 이란인 일가족이 이란으로 돌아간 이후 신앙생활이 불가능해 터키로 피신했다. 이란으로 돌아갈 경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며 난민으로 인정해 줄 것을 호소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는 상당한 기간 교회에 다녔고 다수의 이란인을 교회로 데려오는 등 적극적인 종교활동을 했으며 지난해 이 교회의 회지 가을호에 인터뷰와 사진이 수록되는 등 원고의 신앙생활이 객관적으로 공표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의 보고서와 법무부의 이란에 대한 국가정황자료집 등에 따르면 이란인이 단순히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포교활동까지 할 경우 이란 정부에 의해 임의적인 체포와 심문을 당할 우려가 있고 신체적·정신적 고문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원고의 경우 적극적인 기독교 포교활동을 했고 이 활동이 외부적으로 상당히 공개됐으므로 이란으로 강제퇴거되면 신체적·정신적 위해에 노출될 위험에 직면할 것으로 보여 원고의 청구는 이유가 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이같은 1심 판결에 법무부는 지난 2월 26일 항소를 결정했다. 대한민국은 해외에 비춰지는 ‘인권 국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인색한 난민 인정률로도 주목받는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3~4% 수준으로 전 세계 난민 인정률 38%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 정부의 난민 인정이 얼마나 인색하게 이루어져왔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도 법무부는 여전히 난민 인정을 막겠다면 상소(항소·상고)를 남용하고 있다. 앞서 법무부는 국가나 행정청의 기계적 상소 관행으로 국민 불편이 가중되고, 국가 인력과 재정이 낭비되고 나아가 신속한 피해 구제를 방해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상소권 행사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책임 회피를 위한 관행적 상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 역시 정부가 패소한 판결에 항소를 남발하는 일을 자제하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법부무는 겉 다르고 속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가 이번 난민 인정 판결에 따르지 않고 아무 힘없는 난민 신청자를 대상으로 항소를 남발한 것은 스스로 내세웠던 방침과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가공권력의 남용이다. 나아가 문 대통령이 강조한 기조와도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된 현재의 난민 신청자가 겪는 생계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법무부가 이런 절박한 난민 신청자에 대한 인권보호는 못할망정 비용이 들더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관행적인 항소를 남발하는 것은 ‘양을 탈을 쓴 악덕 정부’나 다름없다. 법무부는 원고의 고통을 더 이상 가중시키지 않도록 이번 난민 인정 판결을 겸허히 수용하여 정당성 없고 불필요한 항소를 즉시 취하하는 게 옳다. 나아가 원고에 대하여 정당한 절차에 따라 조속히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격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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