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에 드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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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에 드시면’
  • 엄상익
  • 승인 2018.02.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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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소설가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 근처의 마요 광장의 벤치에 앉아 있을 때였다. 인디오 출신의 뚱뚱한 남자 둘이서 대나무로 된 남미 고유의 악기를 불고 있었다. 광장 주변에는 길거리에 작은 의자와 이젤을 펴 놓고 그림을 파는 화가들이 많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자신이 그린 작은 그림들을 철사 줄에 걸어놓고 그 앞에서 따뜻한 햇볕을 쪼이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삼십대 말쯤의 호리호리한 백인 남자였다.

“웨어 디드유 캄 프럼?”

그가 영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코리아?”

그가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는 갑자기 어눌한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

“내 그림이 마음에 드시면 사가세요”

문장이 되는 우리말이었다. 거리의 화가는 나를 보면서 함빡 미소를 지었다. 그의 그림 중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화려한 색조에 그만의 독특한 구도가 얼핏 마음에 와서 닿지가 않았다.

그가 그림을 팔기 위해 무심히 던진 말인데도 의외로 어떤 울림이 내면을 향해 밀려왔다. 그는 자기의 그림을 자랑하면서 사가라는 게 아니었다. ‘마음에 드시면’이라고 전제했다. 그 ‘마음에 드시면’이라는 말이 계속 가슴속에 들어와 먼 북소리처럼 나의 영혼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삼십대 중반부터 육십대 중반인 지금까지 나는 개인법률사무소를 해 왔다. 화가들이 작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려 팔듯이 나는 나의 작은 방에서 법률서류를 써 주고 법정에 가서 변론을 하고 살았다. 변호사 역시 자리에 앉아 나를 사 줄 손님을 기다리는 입장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했던가. 어떤 고민이나 문제를 가지고 나의 사무실을 들어섰을 때 나는 나의 잣대로 그들을 재고 그들의 문제를 재단했다.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 온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긴 인생에서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하고 속으로 시큰둥했다. 그들이 아파하고 신음해도 그 물결이 나의 영혼에 와 닿지가 않았다. 근본적으로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는 면이 많았다.

엊그저께는 아들이 이혼소송을 당한 부모의 호소를 들었다. 이혼소송의 소장에 적혀 보내진 내용을 보고 부모와 아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 내면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 대응하는 법률서류인 답변서를 써서 부모와 자식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의 아픔이나 정서와 주파수가 맞는 것인지 차이가 나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부내용이 있었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조그만 자극에도 민감했다. 나는 한발 물러서서 그들의 세심한 요구를 들어주려고 애썼다.

아무리 법률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크게 잘못된 방향이 아니라면 내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만큼 실력이 있는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상대방이 선택해 주지 않으면 그는 실패한 인생이다. ‘마음에 드시면’ 사가라고 했던 거리의 화가에게서 나보다 상대방 자의 눈금을 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 엄상익 변호사의 블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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