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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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20)
  • 박준연
  • 승인 2018.02.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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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언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2학년때이다. 수험 생활을 드디어 마쳤다는 해방감을 만끽했던 1학년을 마치고, 전공인 정치학 공부를 좀더 진지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이기도 했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 교수의 논문집을 읽다가 존재와 행동의 차이, 민법과 헌법의 권리 구제 방식을 논하는 부분에서 이 문구를 접했다. 논문의 내용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 문구는 인상이 깊어 노트에 메모를 해두었다.

이 연재를 시작하고, 평소에는 들을 기회가 없는 질문도 연재를 계기로 독자분들께 가끔 받곤 한다. 얼마 전에는 좋은 변호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하는 질문을 받았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종사해도 좀처럼 생각해볼 기회가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에 한해서라면, 좋은 회사원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자질과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성실하게 일하고, 같은 팀의 팀원들과 의사소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직급과 관계없이 팀원들을 존증하는 등의 지극히 상식적이고 어느 직업에서도 통용되지만 또 중요한 자질이다.

하지만 변호사는 직업(job)인 동시에 전문직(profession)이기도 하다. 전문직으로서의 변호사 업무가 갖는 특징을 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권리에 대한 민감성은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클라이언트의 권리 위에 잠자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지 자질뿐만이 아니고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법적인 측면의 공부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클라이언트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로펌, 특히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들이 흔히 듣는 이야기, 듣지는 않아도 많이들 하는 생각은 대형 로펌은 결국 대기업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공익 (프로 보노) 업무 이외의 업무에서는 대부분 기업, 그것도 대기업을 주로 대리하게 된다.

로스쿨 교수님 중 한분은 라디오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다. 로스쿨 수업마다 옷을 갖춰입고 가면 동료 교수들이 왜 늘 옷을 포멀하게 입는디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그 교수님은 로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직무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는데, 그때마다 결국 그 학생들 대부분이 대형 로펌에 취직하여 대기업을 대리하면서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 것이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교수님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법은 인권을 향상시키는 주요한 도구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로펌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의 업무 이야기로 돌아오면, 대기업을 대리한다는 사실 자체는 사회 정의나 진보에 직접적으로 기여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건별로 복잡다단하게 상이한 사실관계를 보고, 기업에 속한 개인이 받을 수 있는 불이익, 침해받을 수 있는 권리를 고려해야만 변호사의 업무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국법과 관련된 절차에 의도하지 않게 노출된 기업과 그 구성원을 대리하는 업무를 하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절차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고, 변호사로서 그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권리를 최대한 행사할 수 있게 돕는 데에서 보람을 느낄 뿐 아니라 미미하게나마 법 집행 시스템에도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갖는다.

매일매일을 바쁘게 보내다보면,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찰해볼 여유 없이 그날의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빴던 일이 잠시 조용해지면서 문득 생각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라는 문구에 문득, 생각이 많아졌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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