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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97)- 양형기준
신종범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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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9  14: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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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가천대 겸임교수
http://nulimlaw.com/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사무실을 찾아온 A의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잔뜩 웅크리고 있어 작은 체구가 더 왜소해보였다. 구속되어 있는 A의 변호인 선임을 위해 필자를 찾아 온 것이었지만,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변호사인 나에게 조차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따뜻한 차를 권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A는 금은방에서 물건을 훔친 혐의로 구속되어 있다고 했다. A가 갑작스레 직장을 잃게 되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면서 이제껏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고 자라온 아들이었는데, 직장을 잃고 얼마나 생활이 힘들었으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대었겠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인 자신은 정작 아들이 실직을 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다음날 구치소로 A의 접견을 갔다. 두 아이의 아빠라고 들었는데, 조금은 어려 보였다. 한 눈에 봐도 범죄를 저지를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안타까움이 더 해졌다. A는 고객으로부터 불만이 접수된 사실로 인하여 사직을 강요 받고 갑자기 회사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실직한 사실을 부모에게도 말을 못했고, 어린 두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는 아내에게는 더욱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출근한다고 집을 나가 일자리를 알아 보았지만, 쉽게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았고, 생활비를 대느라 대출은 늘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못 이루고 새벽에 깨어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금은방 앞을 지나가게 되었고, 몇 시간 주변을 방황하다가 결국, 금은방 유리를 부수고 들어가 목걸이 등을 훔쳐 나왔다고 했다. 그마저 경보음에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많은 물건은 놓치고 말았고 그가 가지고 온 물건은 대략 1,000만원 상당쯤 되었다.

공소사실은 크게 다툴 것이 없었고, 양형만이 문제되었다. 절도죄의 양형기준을 살펴 보았다. 야간에, 손괴 후 건조물에 침입하여 절도를 범하는 등 가중 요소가 있었지만, 생계형 범죄에 해당하고, 초범이며,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이 감경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참작을 받으려면 피해자와의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두 아이를 길러야 하는데다 가장의 구속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A의 아내를 대신하여 A의 아버지가 합의에 나섰다. 하지만, 피해자의 과도한 합의금 요구에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한 채 첫 기일을 맞았다. 증거조사까지 마치고 판사가 합의는 되었느냐고 묻는데, 합의가 안되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곧 합의가 될 것 같으니 한 기일 더 잡아 달라고 하였다. 다음 기일까지는 합의가 되어야 했기에 마음이 다급했는데 다행히 합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A의 아내가 두 아이까지 데리고 가 피해자에게 눈물로 호소하여 요구했던 합의금을 조금 내려 합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합의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A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A사건이 떠오른 건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집행유예 판결 때문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 말이다. 판결 거의 전체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지만, 법조인들 사이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유죄로 인정한 사실만 보더라도 집행유예 판결이 적정했느냐 하는 것이다. 공소사실 중 극히 일부지만, 뇌물공여 및 횡령으로 인정된 액수가 36억원이 넘었고, 범죄수익은닉 및 국회위증에 대하여도 일부 유죄가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A사건에서 어럽게 집행유예 판결을 얻었듯 대법원에서 양형기준을 마련한 이후에는 양형이 엄격해지면서 정해진 사유를 갖추지 못하면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뇌물공여죄에 대한 양형기준만 보더라도, 뇌물액이 1억원 이상이면 가장 처벌이 중한 유형에 해당하고, 뇌물액이 5,000만원 이상이거나, 청탁내용이 부정한 업무집행과 관련된 경우 등은 집행유예를 해서는 안되는 주요 사유에 해당하게 된다. 한편, 수뢰자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 피고인의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거나 피고인의 구금이 부양가족에게 과도한 곤경을 수반하는 경우 등은 집행유예 판결에 긍적적 사유가 된다. 과연, 이 부회장 사건에서 항소심이 유죄로 인정한 사실만 가지고 판단해보더라도 집행유예 판결이 양형기준에 맞는 판결인가?

재벌양형기준이란 것이 있었다. 3-5 법칙이라고도 불렸는데, 재벌들은 중한 범죄에 해당하더라도 대부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는 것을 빗댄 표현이었다. 이 재벌양형기준이 대법원에서 양형기준을 만든 이후 없어진 줄 알았는데, 우리는 알 수 없는 양형기준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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