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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혁신' 그 자체인 법조계 스티브 잡스, 강민구 법원도서관장
김주미 기자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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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8  10: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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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정보화ㆍ선진화의 주역, 개척자 면모 '뚜렷'
법관 30년, 삶의 철학 담은 신간 <인생의 밀도>
조회수 170만 돌파한 유튜브 IT 강연, '스타덤'
'예술법정' 구현에도 앞장, "따뜻한 법원 돼야"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그는 이제 엄연히 법조계 '혁신 아이콘'이다. 1988년 판사로 임관하여 법관 인생 30년을 걸어 온 강민구 법원도서관장. 지난 12월에 환갑을 맞은 그는 같은 날 선물처럼 그의 저서 <인생의 밀도>를 탈고하게 됐다.

옹골찬 나이테를 표지로 한 <인생의 밀도>는, 그의 혁신적 인생 철학과 발자취를 잘 정제된 언어로 풀어낸 수작(秀作)이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제2의 두뇌로 활용하는 어느 법관이 유튜브 강연으로 첨단 IT 기술들을 직접 선보이자, 수많은 대중은 놀라면서 또한 열광했다.

그가 제작한 여러 개의 유튜브 강연들은 현재 누적 조회수 170만을 기록, 강민구 관장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인생의 밀도>는 이 강연들의 해설서적 성격도 띠고 있다.

사투리 섞인 친근한 말투를 가진 그가 말했다. "꿈같지요. 꿈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우리 국민들이 디지털 시대에 다가올 변화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강연 영상들을) 만들어 올렸죠. 시청자들이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많이 하면서, 책으로는 왜 안 나오냐는 문의들을 했죠."

그런데 이 책이 나온 과정 또한 범상치가 않다. 강 관장이 말했다. "에버노트(음성을 텍스트로 바꿔주는 기능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어플, 문서, 메모노트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니까, 보통의 집필 작업에 드는 노력의 3분의 1정도 수고만으로 다섯 배에서 열 배의 생산성을 발휘할 수가 있어요."

기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겠다며 에버노트 앱을 켠 그는 스마트폰을 턱 밑에 가져갔다. 하얗게 비어 있던 화면은, 곧 그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글자들로 속속 채워져 갔다. 이 똑똑한 에버노트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거의 동시에 활자로 변환하여 화면에 송출하는 것이다.

강민구 관장이 흡족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거 보세요. 이렇게 바로 저장이 되니까 이것들을 이메일로 보내도 되고. 나는 이렇게 저장된 글이 1만 꼭지가 넘어요. 음성인식은 범용 모둘이라 문자자판만 나오는 앱에서는 다 쓸 수 있어요."

 

   
▲ 강민구 법원도서관장이 자신의 좌우명이 새겨진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켓 개발자가 꿈이던 소년,
컴퓨터를 만나기까지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69년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를 비롯한 모든 동네 사람이 모여 마을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흑백 TV 앞에 숨을 죽이고 앉았다.

강 관장은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폴로 11호가 우주를 가로지르는 걸 온 면민이 다 같이 봤어요. 사람이 최초로 달에 간 역사적인 날이죠. 그때부터 저의 꿈이 로켓 개발자였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그는 어릴 때부터 시계나 라디오를 분해하고 조립하며 로켓 개발자에 어울리는 면모를 곧잘 드러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이공계 과목에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표현대로라면 '어찌어찌하다가' 법대에 진학하여 법관이 된 그는, 고스란히 내재해 있는 이과 적성 때문인지 '법조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명성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에게는 하늘마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걸까. 그는 군부대가 아닌 육군사관학교 교수부로 발령이 나 군복무를 했는데, 강 관장은 그것을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했다.

"더미터미널이라고, '멍텅구리 컴퓨터'라고도 하지요. 화면하고 키보드만 있는 단말기인데, 거기서 그걸 봤어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본 그 컴퓨터가 너무 신기한 거예요. 3년 있으면서 파스칼, 포트란 같은 코딩 언어를 공부하고, 모르는 건 전산 장교한테 물어보며 배웠죠. 육사로 발령받은 게 지금 생각해도 큰 행운입니다."

1988년에 전역하면서, 그는 당시 중고 자동차 한대 값에 맞먹던 컴퓨터 한대를 과감하게 샀다. 그런데 그가 근무하던 의정부 지원에서는 얼마 안 있어 18명의 판사들이 그를 따라 컴퓨터를 구매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박시환 전 대법관, 이진성 헌법재판소장도 강 관장을 따라 컴퓨터를 구매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강 관장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호프만식 계산법을 따르기 때문에 공무원들 손해배상금을 산출할 때 호봉을 반영합니다. 근데 그땐 엑셀이 없으니까 일일이 판사들이 손으로 계산했습니다. 판사가 계산하고, (법원) 직원이 계산하고, 아내가 계산하고, 이 계산한 값이 다 똑같아야 판결이 나오니까 판사들이 아주 고생을 했어요. 이 계산 만해도 일주일이 걸렸죠. 그런데 컴퓨터를 가진 저는 이걸 뚝딱 30분 만에 한단 말예요. 그걸 본 18명의 법관들이 다 저를 따라 컴퓨터를 샀죠(웃음)."

그가 기반 다진 한국의 전자법정

현재 우리나라 전자소송 이용률은 행정소송의 경우 100퍼센트에 가깝고 민사는 60퍼센트를 넘어섰다. 형사 또한 약식사건 가운데 일부가 전자화됐다.

이처럼 한국의 사법정보화 수준이 사실상 '세계 1등'의 경지에까지 올라 있는 것은 일찍부터 우리 법원이 가야할 길이 '전자법정'이라 믿고 노력한 강민구 관장의 공로가 크다.

1990년대 중반, 이미 그는 법원 내 '컴퓨터 전문가'로 이름이 난 상태였다. 강 관장은 천리안 PC 통신 법관 동아리인 '주리스트(Jurist)'에 소속, 컴퓨터에 조예가 깊은 여러 법관들과 교류하며 IT를 사법행정에 접목하는 구상을 구체화해 나갔다.

1998년 9월 개통돼 훗날 전자법정의 초석이 된 한국 초유의 본격적인 클라이언트 서버(C/S) 기반 법률정보 DB '종합법률정보 1.0'은, 그의 절대적인 기여가 성공을 견인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국민들이 이걸 잘 몰라요. 강연을 나가면 국민들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앱부터 소개합니다. 나홀로 소송할 때 이것만큼 좋은 게 어딨어요. 관련 판례와 법령을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법률정보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춘 의미가 있는데 언론이 잘 안 다뤄줍니다."

한편 강 관장은 중요한 경험 하나를 더 소개했다. 1999년에 미국 국립주법원행정센터(NCSC)로 사법정보화 과정 연수를 가게 된 게 또 하나의 큰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화상재판, 전자법정, 전자파일링 등 시대상황상 '혁신'으로 분류되는 주제들을 고민하던 그는, 때마침 얻은 미국 연수 기회를 통해 선진 시스템을 익힐 수 있었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서 이걸 정리하고 싶었어요. 문익점이 된 기분이었죠. 2000년도에 귀국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250쪽 분량 보고서와 650MB의 자료집 CD를 묶어 대법원에 보고했어요. 그 보고서에 원격영상재판과 자동번역 프로그램, 음악법정 등 이후 제가 법정에 도입한 각종 실험들이 다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덕에 2003년, 그는 '한국사법부의 전자법정과 전자소송의 기초 설계도'라고 평가받는 단행본 <함께하는 법정>을 출간할 수 있었다. <함께하는 법정>이 신간 <인생의 밀도>의 중요한 선행기록이 됐음은 물론이다.

 

   
 


한국 사법정보화의 도약 위해서는...

"2016년에 중국 상하이 인근 우전에서 열린 제3차 세계인터넷대회 사법정보화분과 법관회의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어요. 중국 법원이 어느새 독자적인 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해 음성인식기가 법정 재판기록을 하고, 속기사는 그 기록에서 오,탈자만 잡고 있더군요."

아직은 제한적인 운영에 불과하지만, 강 관장은 중국 23개 성 모두가 이 시스템을 이식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고 봤다. 인터넷을 통한 재판과정과 판결문 공개 또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0년간 우리 법원에 자국 법관들을 보내 한국 법정의 IT를 배워가던 중국의 이 같은 맹추격은 그에게 큰 위화감을 안겨 줬다.

"공산당 특유의 중앙집권적인 추진력과 그에 따른 과감한 투자가 이 같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도 많은 법관들이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써야 하는 동시에 정부의 전폭적인 경제적 지원도 뒤따라야 합니다."

강 관장은 우리의 사법정보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판사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이라고 했다. 인구가 많은 중국은 15만 명의 판사가 1인당 9천명의 국민을 감당하는데 비하여 우리는 3천 명의 판사가 1인당 1만 7천여 명을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 관장은 업무 부담 경감의 첫 단추가 '중국과 같이 음성인식 모듈을 도입하여 판사들이 타이핑 부담에서 해방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판사들은 '판단'이라는 고도의 정신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더욱 확보하게 되고, 이는 곧 양질의 재판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 그는 "사법부가 앞장서서 시민을 위한 법률 콘텐츠를 정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변호사 수 증가와 디지털 기술 발전에 발 맞춰 다양한 법률 서비스가 나오고 있는 만큼, 사법부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 대한민국 사법정보화 수준의 세계적 위상 변화를 나타내는 표를 보여주고 있는 강민구 관장.


그가 꿈꾸는 법정-
가슴이 따뜻한, 감성 있는 법정


예술 법정이 필요하다는 데 대한 그의 견해는 확고했다. 법원의 합리적인 업무 처리만으로는 채워줄 수 없는 국민의 마음을 다독이는 '감성 있는 법정'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법정에 창문이 하나 없어요. 삭막한 법원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쭈뼛거리면서 들어오는 시민, 억울함과 스트레스로 잔뜩 어두워져 있는 당사자들의 안색 등이 곧 법원의 이미지예요. 그런 법원을 생각하면 참 답답했지요. 예술이 사람 감성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커요. 벽면에 미술품이 걸려 있고, 곳곳에 예술품이 놓여 있고, 오전 재판 시작 전 음악이 잔잔히 흘러서 장내를 저절로 정리하는, 법정이 그렇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법정'으로 국민들께 다가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느새 스마트폰으로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을 검색한 그는, 기자들에게 그 검색된 이미지들을 빠르게 넘겨 가며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거 봐요. 내가 노르웨이에 직무 출장을 갔다가 이걸 보고 넋을 잃었다니까요. 큰 박물관이나 다름없어요. 온통 예술품이야. 미술품과 음악은 재판 당사자뿐만 아니라 법원 구성원들에게도 말로 다할 수 없는 긍정적인 효과를 줍니다. 제가 경험한 사례만도 상당하고요. 법원이 이를 전향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한편 강민구 법원도서관장은 이번 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원대복귀'한다. 법원도서관장으로서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며 사법부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던 그는, 한동안은 재판을 잘 하는 것에만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혁신' 그 자체의 삶을 살며 늘 깊이 있는 사유를 멈추지 않는 강민구 관장은, 언제든 다시 사법부 발전의 주역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조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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